‘키 커지는 수술’ 받다 죽은 아들
‘키 커지는 수술’ 받다 죽은 아들
  • 황기현 기자
  • 입력 2019-09-06 15:45
  • 승인 2019.09.06 18:04
  • 호수 1323
  • 2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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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 외로운 싸움 시작한 아버지
[사진 제공=김 씨 아버지]
[사진 제공=김 씨 아버지]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대한민국 통계에서 드러나는 ‘평균 키’는 남성이 170cm 초반 수준이다. 그러나 ‘평균’ 수준임에도 스스로 ‘작은 키’라고 느끼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잘생긴 얼굴과 큰 키 등 외모는 언제나 사회적인 평가 기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키 크는데 좋다는 음식과 영양제는 언제나 큰 인기를 끈다. 사회적인 시선을 무시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키를 자라게 하려 노력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몇 년 전부터는 ‘사지연장술’이라는 수술까지 등장했다. 사지연장술은 외과적 수술을 통해 인위적으로 키를 늘리는 수술이다. 철심 등을 이용해 다리 뼈를 골절시킨 뒤 나사를 하루에 1mm정도 돌려 골절 부위의 간격을 벌어지게 한다. 골절 부위의 빈틈으로 뼈가 차오르면 키가 커지게 된다. 인위적 골절이라는 점에서부터 그 위험성이 짐작되는 수술이다.

“연극 전공한 아들, 평소 키에 스트레스”
“소송 진행 내내 사과 한 마디 못 받아”

서울 K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던 배우 지망생 김모 씨. 그 역시 174cm의 키가 콤플렉스였다. 작은 키가 아님에도 오디션에서 번번이 낙방하자 고민이 커진 것이다. 오디션 심사위원의 “키가 아쉽다”는 말은 이러한 고민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김 씨는 어머니를 설득해 사지연장술을 받게 됐다. 김 씨의 아버지는 수술 당일까지도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김 씨는 지난 2016년 7월 21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원장의 주도로 사지연장술을 받았다. 수술은 무사히 끝난 듯했지만 이튿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22일 오후 8시 30분경 김 씨가 고열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김 씨의 체온은 38.3도에 달했다. 병원은 오후 9시가 넘은 시각 김 씨에게 타이레놀을 처방했다. 그러나 타이레놀은 큰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김 씨는 다음날인 23일 새벽부터 가슴 통증에 시달렸다. 참기 힘든 답답함이 이어지자 김 씨는 오전 5시 30분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탑승, 복도를 서성였다. 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당 병원 의무기록에 따르면 김 씨는 오전 10시 15분경 의식을 잃었다. 김 씨는 10시 44분경 119 구급대에 의해 가까운 대학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5일 뒤인 2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폐동맥혈전색증’…간단히 예방 가능한 증상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 김 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왜 죽었는지 알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신청했다. 그 결과 김 씨의 사인은 ‘사지연장술 후 발생한 폐동맥혈전색증’으로 나타났다. 폐동맥혈전색증은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며 장시간 같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으면 피가 뭉쳐 혈전(血栓)이 생성돼 나타나는 증상이다. 호흡 곤란이나 가슴 통증 등의 전조 증상을 동반하며 만들어진 혈전이 혈관 등을 막으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는 움직임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이 증상이 쉽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압박 스타킹 착용이나 간단한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예방 가능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처럼 폐동맥혈전색증으로 사망하는 것은 드문 케이스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씨 아버지 역시 여러 의문을 제기했다. 우선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김 씨에게 병원 측이 적절한 조치를 했냐는 부분이다. 병원 의무기록에 따르면 김 씨는 수술 다음날인 22일부터 보행 연습을 지시받은 것으로 돼 있다. 가슴 통증을 호소했던 23일 새벽 5시 30분에는 걷는 연습을 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병원 측이 해열을 위해 김 씨에게 처방한 타이레놀이 조치의 전부라고 주장했다. 실제 유가족이 병원에서 제공 받은 CCTV 화면에서는 23일 오전 김 씨가 걷는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김 씨 간병인도 “수술 둘째 날(22일)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또 병원 측이 수술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에 대한 사전고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버지가 제공한 동의서에는 ‘수술 후 불가항력적으로 야기될 수 있는 합병증’, ‘드물지만 신경 손상, 혈관 손상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라고 적혀 있었다. 사건 이후 병원 측은 아버지가 제출한 탄원서에 대해 “당시 의료 수준에서 예상 가능한 모든 위험에 대한 설명을 했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는 “다른 병원에서는 사지연장술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후유증과 부작용을 하나씩 설명해준다”며 “신경 손상과 혈관 손상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을 뭉뚱그려 불가항력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한 사전 고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과하지 않은 병원…“분통이 터졌다”

해당 병원 원장은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의사 생활 동안 정형외과 선배나 후배 수술 중에서도 그런 갑작스러운 일을 본 적이 없다”면서도 “운동하는 이유 중 하나가 피가 한 곳에 몰려있기 때문에 자꾸 움직이게 했다”고 주장했다. 공식적인 답변에서도 “사건 당일 물리치료가 진행 중이었다”며 “고인의 폐색전증을 예방하기 위해 적합한 조치를 취했다”고 기재했다. 의료 과실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병원의 의무 기록과 CCTV에 찍힌 사건 시각도 달랐다. 사건 당일 의무기록에는 ‘10시 10분 환자가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다고 말함’, ‘10시 15분 호흡곤란 일으켜 심폐소생술 실시’, ‘원장 달려와 심폐소생술 실시하며 119 연락지시’, ‘2분 만에 119 도착’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CCTV 확인 결과 구급대원이 나타난 것은 오전 10시 24분경이다. 2분 만에 119가 도착했다는 내용과는 다소 상반됐다. 구급 장비를 가져온 시각은 오전 10시 29분이었고, 김 씨가 병원을 빠져나간 시각은 오전 10시 37분이었다. 이처럼 의문투성이인 아들의 죽음에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의료 소송을 진행했지만 병원 측은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고. 아버지는 “죽은 아들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내 아들이 왜 죽었는지는 알고 싶다”고 호소했다.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풀기 위해 싸웠다. 전문 지식이 전무한 상황임에도 스스로 공부해가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수술집도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민사 소송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6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해당 사건 판결에서 유가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만 3년의 가까운 싸움 끝에 내려진 판결이었다. 아버지는 기자에게 “다행히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소감을 전했다.

황기현 기자 kihyu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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