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이른 추석이다. 정기국회가 막이 올랐지만 초반전이라 그런지 밋밋하다. 여의도 정치권은 아직도 조국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정치적 동반자가 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그리던 우리 조국의 미래가 고작 이 정도였는지 실망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내로남불을 넘어 염치가 없다. 추석밥상를 주도할 정치 얘기가 조국의 얘기로 도배된다면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추석밥상을 주도할 정치 얘기가 아무리 밋밋하더라도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추석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게 추석이 대목 중의 대목이듯이, 인격을 파는 정치인들에게도 추석은 상인들 못지않은 대목이기 때문이다.

좋은 물건과 나쁜 물건, 비싼 물건과 싼 물건은 물건을 파는 사람과 물건을 사는 사람 간의 접점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거래가 완성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좋은 정치인과 나쁜 정치인, 키워야할 정치인과 도태시켜야 할 정치인은 유권자의 식견과 정치인의 감언이설 사이의 적절한 지점에서 합리적 판단이 형성되고 훌륭한 정치인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정치시장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유권자의 식견은 이성을 저버리고 광기로 치닫는다. 정치인의 감언이설은 패륜적 파괴행위를 조장한다. 이들을 조종하는 것은 과거 동화책에 자주 등장했던 권선징악(勸善懲惡)에 기반을 둔 집단 이기심이다.

우리 편은 항상 옳고, 저들 편은 항상 그르다. 우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저들의 이익을 침해해도 괜찮다. 약육강식의 정글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라도 우리가 강자의 편이면 상관없다. 우리는 저들을 밟고 살아날 것이고, 저들은 우리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독재정권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한국의 정치사회다. 좌파도 우파도 이러한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좌파가 도덕적 우위로 부정부패의 우파를 압박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파가 유능함을 무기로 좌파의 실현 불가능한 구상을 꾸짖던 시대 또한 끝났다. 좌파도 우파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진영논리에 얽매여 과거로 회귀할 때, 누군가는 국익의 논리로 무장하여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고, 국제평화를 주도하며, 새로운 정치인 상을 만들어 내야 한다. 아무도 관심이 없을 때 나서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용기 있는 정치인이며,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 낼 것이며, 존경받는 정치지도자로 발전할 수 있다.

추석은 그러한 지도자가 나타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주도할 이슈도 차고 넘친다. 그런데 그런 정치인은커녕 어떻게 진영 내에서 생존할까 하는 생각에 인격을 쉽게 내던진다. 어떤 의원은 이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빈틈을 파고든다. 어떤 의원은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최순실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하는 것이라며 스스로 격을 낮추기에 여념이 없다.

조국 이슈가 커지면서 이번 추석은 내년 총선뿐 아니라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둔 전략구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기회를 오로지 국민 편에서 국익을 위해 정략적 정치싸움에 피곤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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