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할 일” vs “인권침해” 날 세우는 양 측

[사진 제공=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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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 2016년 9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20대 청년 권대희 씨가 과다출혈 증세를 보였다. 권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49일 만에 결국 숨을 거뒀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권 씨의 어머니 이모 씨는 병원 의무기록지와 CCTV 화면 등을 확인해 아들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 씨가 확인한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여러 명의 성형외과 원장이 동시에 수술을 집도하며 반복적으로 수술실을 이탈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또 피를 흘리는 권 씨를 보면서도 지혈을 하지 않은 채 방치하거나, 간호조무사가 무면허 의료 행위를 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간호조무사는 권 씨를 두고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메이크업을 수정하기도 했다.

수술 받다 사망한 청년 이름 딴 ‘권대희법’ 답보 상태
의협 “수술 질·신뢰 저하 우려”

억울함을 참을 수 없었던 이 씨는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는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하룻밤 새 사라진 수술실 CCTV 설치법, 다시 살릴 수 있을까요? 정부는 계속 뒷짐만 지실 겁니까?’라는 글을 올려 도움을 호소했다. 이 씨는 청원에서 “내 자식이 왜 이렇게 죽었는지 알기 위해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이 담긴 수술실 CCTV 영상을 500번 이상 봤다”며 “너무 고통스러웠고 내 삶의 가장 큰,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병원은 마치 공장처럼 수술실을 여러 개 열어 놓고 동시에 여러 명의 환자를 수술했다”면서 “원장은 수술하다 나가 버리고, 대신 다른 의사가 들어와 대리 수술을 하더니, 그 의사마저도 나가 버리고 간호조무사가 무면허 의료 행위까지 했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병원의 실체를 CCTV 영상을 통해 알고 나니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위해 수술실에 CCTV 설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비록 내 아들의 인권은 처참하게 유린당해 억울하게 죽었지만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지난 겨울 5개월 동안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했다”고 전했다. 또 “안규백 의원이 수술실 CCTV 설치법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게 너무 감사해 눈물이 났다”면서 “그런데 다섯 명의 국회의원이 하룻밤 새 철회하면서 그 법안이 폐기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마지막으로 “정부는 무자격자 대리 수술을 근절하고, 수술실이 성폭행·성추행 등 인권 침해가 없는 안전한 공간이 되도록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엄마의 호소’…법 개정은 지지부진

이 씨의 청원 내용처럼 더불어민주당 안 의원 등 9명이 발의했던 ‘수술실 CCTV 설치를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접수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동료의원 4명이 발의를 철회하며 원점으로 돌아갔다. 안 의원은 지난 5월 해당 법안을 재발의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시민들은 대체로 찬성하고 있지만 의사협회 등에서 법 개정을 격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료원이 실시한 수술실 CCTV 운영방안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CCTV 설치에 찬성하는 사람은 9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범사업 결과에서도 총 수술건수 1,192건 중 촬영에 동의한 건수가 791건(66%)으로 긍정적이었다. 시민들은 권 씨 사건 외에도 분당 모 병원에서 의료인의 과실로 신생아가 사망했음에도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건과 의료기기업체 직원에게 대리수술을 시킨 사건 등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의협과 병원협회 측은 “수단·내용이 과도해 의료인의 인격권 및 직업수행의 자유 등 침해 우려가 있고, 고난이도 영역 발전 저해와 전문의 수급문제 등 의료정책에도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거나 “환자와 의료인 간의 신뢰관계를 붕괴시킬 우려가 있으며, 외과수술 장면 등 환자의 민감한 신체 정보가 유출될 경우 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확고히 하고 있다.

먼저 칼 빼든 경기도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안성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 시범 운영했다. 그 결과 환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 지사는 지난 5월 수원과 의정부, 파주 등 도립의료원 산하 6개 병원 모든 수술실에 CCTV를 설치했다. 대리수술 등 위법행위를 예방하고 환자의 인권 보호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이와 더불어 경기도는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수술실 CCTV를 의무 설치하고 점차 민간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경기도 의사회는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수술실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 조장이며 의사와 환자간의 기본 신뢰를 훼손하고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주장”이라며 “국민뿐 아니라 동료 의원의 공감도 얻지 못하고 있는 이 법안은 영구히 철회돼야 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경기도는 한발 더 나아가 수술실 CCTV를 민간 의료기관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의협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지난 2일 경기도는 “‘수술실 CCTV’를 민간의료기관으로 확대하고자 오는 2020년부터 ‘민간의료기관 수술실 CCTV지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경기도는 수요 조사를 통해 10~12곳의 병원 급 민간의료기관을 선정, CCTV 설치비용의 약 60%인 30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공모를 통해 수술실 CCTV 시범 운영을 희망하는 의료기관을 모집하고 선정심의위원회를 거쳐 관련 법령상 이행조건을 충족하는지 여부 등을 검토한 뒤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도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CCTV 설치비 일부를 경기도가 지원할 경우 민간 병원의 CCTV 설치 확대 유도와 관련 법령 입법화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도 관계자는 “도민들이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수술실 CCTV를 민간의료기관으로 확대하고자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내년도 시범사업에 대한 효과를 면밀히 분석해 효과가 있을 경우 점진적으로 확대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내년 본예산에 3억6000만 원의 관련 예산을 편성한다. 의협 등의 반발에도 수술실 CCTV 설치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경기도. 하지만 의협 등의 반대 입장이 확고해 설치비 지원을 신청할 병원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이 지사와 경기도의 의료 정책 ‘실험’이 어디까지 성공을 거둘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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