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준 아이들이 ‘음대’ 진학하는 것 보며 보람 느껴”

오준 수석부회장 [사진 제공=사랑의달팽이]
오준 수석부회장 [사진 제공=사랑의달팽이]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청각(聽覺)은 소리를 인식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감각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각(五感) 중 하나인 청각은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인식해 위험을 감지하는 것은 물론, 소리를 통해 사물을 구분하거나 언어를 습득하는 데도 쓰인다.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그럼에도 예산 등의 이유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 ‘사랑의달팽이’는 이들을 위한 단체다. 배우 최불암(79)씨의 아내이자 배우인 김민자(77)씨가 회장 직을 맡고 있다. 오준(63) 사랑의달팽이 수석부회장에게 사랑의달팽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오 수석부회장과의 일문일답.

“청각장애인의 동등한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단체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우리 사회 속 장벽을 없애면 장애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

- 사랑의달팽이는 어떤 단체인가?

▲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보다 잘 듣게 해 주고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그들의 동등한 사회 참여를 실현한다는 목적으로 2007년에 설립됐다. 인공달팽이관이나 보청기가 효과적인 보조수단이 되지만, 물론 그것만으로 청각장애인의 동등한 사회 참여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고려에서 우리 단체는 학교 등을 대상으로 청각장애에 대한 사회인식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청각장애 청소년으로 구성된 클라리넷앙상블 운영, 장애 청소년 간의 멘토링 사업 등으로 종합적인 사회적응 지원도 하고 있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 총 810명의 고도난청 아동과 성인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지원했고, 독거노인, 폐광촌 주민, 해녀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난청으로 고통 받는 약 3000명에게 보청기를 지원했다. 현재 단체는 전적으로 기업, 개인의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연간 후원금이 약 20억 원가량 된다. 후원금으로는 인공달팽이관 수술이나 보청기 지원과 같은 의료지원사업과 청각장애 청소년의 음악교육, 멘토링 등 사회적응지원 사업 그리고 장애이해 캠페인과 같은 사회인식교육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후원자들은 인공달팽이관 수술대상자를 구체적으로 지원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성격의 후원을 하기도 한다. 또 매년 자선골프 대회 개최 등 특별 모금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고. 후원금의 사용내역은 사랑의달팽이 누리집과 연차보고서를 통해 매년 상세하게 공유되고 있다.

- 2000년 처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 사랑의달팽이 설립 이사 중 한 분인 임천복 이사가 2000년 두 자매의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지원한 것이 후일 설립될 사랑의달팽이 사업의 첫 시작이 됐다. 인공달팽이관 수술은 2005년 의료보험 지원 대상이 되기 전에는 매우 고가의 의료시술이어서 경제적인 이유로 수술 적기를 놓지는 경우가 많았다. 보험 지원 대상이 된 후에도 사랑의달팽이에서는 수술비 및 1~2년간 언어재활치료비로 아동 한 명에게 1천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적응훈련을 위한 지속적인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에, 경제적 이유로 달팽이관 수술을 포기하는 청각장애 아동이 없도록 돕는데 주력하고 있다.

- 왜 청각장애인이었나?

▲ 신생아 1000명 중 1명이 선천성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경우 부모 등 주변사람들이 수어를 익혀서 장애아동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면 유아기 지능 발달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청각장애 자체가 불편할 뿐 아니라 아동의 지적 성장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61년 미국에서 윌리엄하우스 박사에 의해 인공달팽이관 수술이 개발된 후, 수어 대신에 또는 수어와 병행해 청각장애 아동에게 달팽이관 시술을 해줌으로써 의사소통과 지적 성장을 도와주는 새로운 보조수단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희망해도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운 아동들이 적기에 수술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성을 느꼈다.

- 사랑의달팽이가 가장 잘 드러났던 사례가 있다면? 보람됐던 순간은?

▲ 사랑의달팽이의 지원으로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은 아동들이 성장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특히 음대에 들어가 음악인이 되는 모습을 볼 때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 인공달팽이관을 갖게 된 아이들은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비장애인보다 제한적이기 때문에 음악 공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사랑의달팽이의 지원을 받게 된 것은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니까 지원을 받지 못했을 경우 청각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결여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초등학교 4학년에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앙상블에 입단해 일반전형으로 현재 강남대학교 독일음악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손정우 수석단원의 사례와 2009년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지원받은 아동이 8년 후 초등학교 4학년이 돼 클라리넷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하게 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 사랑의달팽이의 목표는?

▲ 사랑의달팽이가 궁극적으로 모든 청각장애인의 동등한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단체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청각장애인을 좁게 정의하면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의사소통 수단으로 수어에만 의존하는 농인을 뜻할 수 있지만, 좀 더 넓게 보면 소리를 듣는데 어려움이 있는 모든 난청인을 포함하게 된다.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아서 소리를 듣게 됐다고 해서 비장애인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포괄적인 의미의 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2015~16년 의장을 맡았던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는 “장애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동등한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관습적, 환경적 장벽 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고 규정돼 있다. 우리 사회에 장벽을 없애면 장애의 범위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인식하게 돼야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라는 장애의 한 분야에서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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