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불황극복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2019년도 하반기 대한민국 경제는 그 어느때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수 및 수출 동반 부진 지속 가능성,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지연 등으로 기준금리 인한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다.

또한 소비 지출이 높은 연령층인 30~50대 중년층의 고용 부진이 향후 민간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내수경기가 악화될 우려가 있다.
일요서울은 김승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진경제실 일본동아시아팀 연구원의 글을 통해 문제점 및 대안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통계청]
[통계청]

지난 9월 4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로 일각에서는 물가가 떨어지고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그 이면에 미·중 무역 분쟁 및 유가 변동과 같은 대외적인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 물가 하락이 주로 변동성이 큰 농축산 품목에서 발생했다는 점,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와 일반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물가 수준이 다를 수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당장 디플레이션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다소 어려운 측면도 있다.

국가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 줄지 예상해 선제적 대응 필요
정책 시기 타이밍 놓친다면 노력해도 원상복구는 어려울 전망


하지만 최근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고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를 하회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점을 고려하면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이 1990년대 일본 상황과 유사하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일본 1990년대 디플레이션 및 불황 시작 전에는 자산(부동산) 버블 붕괴 현상이 나타났기에 현재 상황이 일본의 90년대 불황 진입 당시와 완전히 같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의 장기 디플레이션 상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본 정부 차원의 노력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일본 경제는 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불황 상태에 진입했다. 1990년 후반~2000년대 일본 경제 상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비정규직 급증,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및 고령화의 진전 등으로 내수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적절한 정책적 대응을 하지 못했고, 내수 위축 → 경기 침체 → 디플레이션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기에 이르렀다. 

보통 경기 둔화 혹은 침체 가능성이 있을 때 각국 중앙은행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정책금리(한국은행의 경우 기준금리)를 내림으로써,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돈이 시중에 돌게 해 경기 부양 및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1999년 당시 정책금리였던 무담보콜 익일물에 제로금리를 적용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불식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 제로금리 정책을 이행하겠다“는 선언(commitment)을 함으로써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자 했다. 

또한 2001~2006년 양적완화정책을 실시할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안정적으로 0% 이상이 될 때까지” 정책을 계속할 것임을 약속했지만, 출구전략 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및 동일본 대지진(2011년)으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이루지는 못했다.

2013년 4월 일본은행은 대규모 금융 완화정책에 돌입했다. 당시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 탈출이 최우선 과제였음에도 이미 정책금리는 제로 수준이었기 때문에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없어서 국채 매입 등 비전통적 방법을 강도 높게 사용하는 것으로 디플레이션 극복을 하고자 했다. 

일본은행은 정책을 시작하면서 “2년 정도를 염두에 두고 2%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일본은행의 정책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금융시장에 제시함으로 정책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다. 이후 8%로의 소비세율 인상(2014년 4월)에 따른 내수 침체, 브렉시트 결정(2016년 6월) 등 대내외적 변수들이 일본 경기 침체 및 인플레이션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때마다 정책을 수정·추가하면서 강력한 금융 완화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정책을 추진한 지 약 6년이 지난 현재에도 일본은행의 목표 달성은 요원해 보인다. 2019년 7월 기준 근원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대비 0.6% 수준이며, 2018년 연평균 상승률 역시 전년 대비 0.9%로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더 이상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일본은행이 자신 있게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선언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일본은행이 의도하는 수준까지 물가가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으로는 물가 수준은 수요측면뿐만 아니라 공급 측면, 대외 요인, 고령화 및 디플레이션 심리 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기술의 발전, 기업의 경쟁심화에 따른 가격인하 정책 등 공급적 요인과 환율, 유가와 같은 대외 요인에 더해 저출산 고령화 및 소비심리 등은 통화정책만으로는 컨트롤하기 어렵다.

결국 거시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이 통화정책과 병행돼야 하는데 일본의 경우 적절한 거시경제 정책 시행 타이밍을 놓쳤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행이 금융 완화정책을 시행하는 것에 더해 일본 정부는 여성·고령자의 취업 촉진, 3% 임금인상 독려, 법인세율 인하 등 소비자의 소득을 올리고 기업 투자를 촉진할 내수진작 정책을 병행하고 있지만 이미 20년간 이어져 온 디플레이션 심리가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일반적인 경제 현상으로는 실명하기 힘든 관행적 특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일부 주장도 납득할 만하다. 그리고 앞으로 일본은행과 정부가 정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추가 보완 정책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2% 물가목표 달성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거시경제 전반적인 상황을 감안한 선제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90년대 초반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미 내수 위축 징조가 있었는데, 버블 붕괴 후 경제 불황이 오자 심각한 취업난이 겹치면서 소득 감소 및 소비 침체,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이 점을 감안하면, 현재 경제 상황과 지표 추이를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앞으로의 경제 추이가 어떻게 될지, 어떤 경제 주체들에게 특정 경제 상황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그 영향이 또 국가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예상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전되고 있고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증폭돼 그 어느 때보다 예측력이 높은 정책을 시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정책 시기 타이밍을 놓친다면 나중에 부단히 노력해도 원래 상태로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정부와 한국은행이 경제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잘 타개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승현 연구원
김승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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