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가족의 정’, 회사에선 ‘경영 전략’ 나눠

[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풍성하게 차린 음식을 나눠먹고,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는 우리민족 대명절 추석. 한지붕 아래 한가족이 모여 풍성한 한가위를 보내는 이 때, 재벌가들은 어떤 추석 명절을 보내고 있을까. 그 중에서도 집에서는 ‘가족의 정’을, 회사에서는 ‘경영 전략’을 나누는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형제‧남매가 기업 경영에 나선 이들, 이른바 ‘가족 경영’ 기업이다.

때로는 경영권 다툼이나, 마찰 등으로 인해 사회적 화두가 되기도 하지만 난통을 겪는 상황에선 ‘똘똘’ 뭉쳐 극복하기 마련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옛말만큼이나 형제‧남매 최고의 ‘케미’를 이뤄내며 경영에 나서는 이들을 살펴봤다.


신세계, 현대백화점, 한화...형제‧남매 경영 두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

가족‧친인척 출자 지주회사 핵심...다양한 산업 경영 자회사 지배 구조


한국 특유의 대기업 형태인 재벌(財閥)이라는 단어에는 가족기업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국내 기업들은 복합기업 중에서도 주로 가족이나 일가친척으로 구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재벌은 생산 구조상 다각화를 통해 여러 시장에 걸친 많은 계열 기업을 산하에 소유하고 있다. 외형상 독립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산하 기업 간에 자본소유 관계나 임원 겸임 따위를 통해 일관된 체제 아래 활동하는 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가족 또는 친인척 구성원들이 출자한 지주회사(모기업)가 핵심이 되고 다양한 산업을 경영하는 자회사를 지배하는 형태를 이룬다. 계열사들의 관계는 순환출자를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도 많다. 이 가운데 최근 형제‧남매 경영 체제를 구축하거나, 2세‧3세에 이어 4세의 경영 참여 사례가 알려지면서 재벌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증대되는 분위기다.
 

신세계그룹(정용진, 정유경)

재벌가 형제‧남매 경영진 중에서도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아들딸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총괄사장 남매는 단연 20~30대의 젊은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인물들이다. 소비 트렌드에 대한 안목으로, 새로운 사업에 나설 때마다 화제가 되곤 한다. 신세계그룹은 2015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두 남매의 분리경영체제에 나섰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할인점과 복합쇼핑몰 사업에 집중키로 했고,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총괄사장은 백화점과 면세사업에 나섰다.

무엇보다 정 부회장은 대형마트 3사 경영인 중 가장 친숙한 인물로 손꼽힌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친근한 이미지를 확보했다. 이는 곧 인지도 상승과 함께 SNS 주 사용층인 10대~20대 신규 소비자 유치 성과까지 이어졌다. 정 부회장은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대중성 있는 아이템인 노브랜드, 삐에로쑈핑, 레스케이프, 스톤브릭, 롭스, 스타필드 등 다양한 분야의 유통 실험에 나서고 있다.

정 부회장의 행보만큼이나 주목받는 것은 동생 정 사장의 경영방식이다. 정 부회장이 ‘친근함’ ‘가성비’ ‘즐거움’ 등을 내세웠다면, 정 사장은 ‘차별화’ ‘독자적인’ ‘프리미엄’ 등을 내세우는 분위기다. 정 사장은 2016년 9월 신세계백화점에서 상품기획, 디자인, 제작, 판매 단계를 관리하는 캐시미어 브랜드 ‘델라라나’를 선보였으며, 해외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을 한데 모은 화장품 편집숍 ‘시코르’를 오픈해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대구 신세계와 신세계 강남점에 주얼리 브랜드 ‘아디르’를 오픈했다. 해당 브랜드 역시 신세계백화점이 직접 다이아몬드 원석을 수입해 디자인‧판매과정을 책임진다.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은 2016년 남매간 지분 맞교환으로 화제된 바 있다. 당시 정 총괄사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이마트 지분(2.51%)을 정 부회장에게 넘기는 대신 오빠가 보유하던 신세계백화점 지분(7.32%)을 전량 넘겨받았다. 이 거래로 정 총괄사장은 어머니 이명희 회장(18.2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신세계백화점 지분(기존 보유지분 포함 9.83%)을 보유한 주주(기관투자자 제외)로 등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그룹(정지선, 정교선)

형제경영 사례 중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이들은 현대백화점그룹의 장남 정지선 회장과 차남 정교선 부회장이다. 대중에게는 ‘30대 경영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 형제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삼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아들들이다. 2007년 12월 아버지 정몽근 명예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퇴진하면서 형이 35세에 회장직에 올랐고, 동생은 자연스럽게 부회장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한편, 정교선 부회장은 최근 계열사 현대그린푸드의 주식을 대량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린푸드는 공시를 통해 정 부회장이 8월 9일부터 16일까지 총 17만5525주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현대그린푸드 지분율은 정 부회장 23.53%, 형 정지선 회장 겸 현대그린푸드 대표이사 12.67%, 아버지 정몽근 명예회장 1.97%, 국민연금 13% 등이 됐다. 현대그린푸드는 현대백화점 12.1%, 현대홈쇼핑 25%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했다.
 

한화그룹(김동관, 김동원, 김동선)

최근에는 한화그룹도 경영승계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세 아들의 회사로 알려진 에이치솔루션이 (주)한화 주식 1.46%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에이치솔루션은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그룹 계열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번 에이치솔루션의 한화 주식 매입으로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분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세 아들이 보유한 (주)한화 주식(보통주·종류주)은 김동관 전무 4.28%, 김동원 상무 1.28%, 김동선 전 팀장 1.28%이다. 여기에 에이치솔루션 4.28%를 포함하면 총 11.12%가 된다.

이를 두고 한화그룹 측은 경영승계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일축한 바 있다. 회사 측은 매체 보도를 통해 “㈜한화의 중장기적 가치보다 현재 시장 가치가 저평가돼 있어 특수관계인이 주가 방어에 나선 것”이라며 “매매 가치를 높여서 주주를 보호하는 목적과 투자상의 목적일 뿐, 경영승계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서는 삼 형제 경영권 승계를 두고 주목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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