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을 ‘배트맨’이라고 말하는 게 문화재청 수준”

기자는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실에서 혜문 대표를 만났다.
기자는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실에서 혜문 대표를 만났다.

빼앗긴 문화재 오구라 컬렉션···문화재청, 진지한 고민 없어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현재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국민들은 불매운동 등으로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가운데 한국에 있는 일제 잔재 문화재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그동안 여러 문화재 찾기 운동을 펼치면서 국내 문화재 중 친일 그림자가 숨겨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 온 인물이 있다. 바로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다. 그는 지난 2017년 문정왕후현종 어보를 되찾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일요서울은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맞아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와 인터뷰를 통해 국내 문화재 속 친일 그림자를 들여다봤다. 지면의 한계로 다 담지 못했던 인터뷰 내용을 추가로 공개한다.

- 이순신 영정에 대한 지적을 해주셨다. 세종대왕, 신사임당 영정도 논란인데.

세종대왕은 더 끔찍하다. 김기창 화백이 그렸다. 그의 친일 경력 문제를 넘어, 만 원권 화폐에 있는 세종대왕 얼굴을 자기(김기창) 얼굴을 그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리고 실제로 보면 비슷하다. 사람의 눈으로는 비슷한데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서 정말 자신의 얼굴을 그린 것인지 검증해야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 구권의 인물을 계속 고집하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다시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회를 전반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측면에서 친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의 표준 영정, 그 사람들의 영정을 화폐 도안으로 쓰고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방식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 광화문 현판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2020년에 교체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광화문 현판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흑백이 전도된 사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다시 만들게 된 것은 2010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화문을 다시 세우면서 광화문 제 모습 찾기라며 현판식을 직접 나서서 거행했다. 그 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세웠던 것의 바탕색을 바꾸고 흑백을 뒤집는 등 엄청난 변화를 가지면서도 무엇 때문에 바꾸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또 자기들이 맞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했다. 결국 내가 19세기에 찍은 광화문 사진을 확보해 입증한 끝에 바뀌게 됐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의 발견을 자신들의 공으로 둔갑시키는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과오를 국민들에게 사과해야한다. 또 관련자를 처벌하고, 그동안 고생한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 광화문 현판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아주 중대한 상징이기 때문에 현판을 잘못 만든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게끔 촉구하고 싶다.

광화문 현판이 첫 번째로 떨어진 것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하고 경복궁에 불을 질렀을 때다. 두 번째는 나라가 망해서 광화문을 철거할 때였다. 세 번째는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세운 것을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 만들었다고 해서 철거했다. 이번이 네 번째 떨어지는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현판이 돼야한다. 문화재청이 이를 대한민국의 또 다른 출발점이라 생각하고 거듭나기 바란다.

- 평소에도 문화재청, 지자체가 관심을 가지는가.

전혀 관심이 없다. 과오를 바라보는 눈이 비뚤어진 것 같다. 성의가 없다.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귀찮은 것이다. 문화재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 등이 없고 귀찮아서 바꾸지 않는다.

경복궁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동쪽문과 서쪽문의 비례가 깨져있다. 영추문이라는 서쪽문을 다시 복원할 때 거기 수방사가 있었기 때문에 엉뚱한 위치에 복원한 것이다. 좌우 대칭이 안 맞는다. 내가 영추문이 잘못됐다고 한 국회의원을 섭외해서 같이 문화재청으로 향했다. 서쪽문이 잘못 복원됐으니 고쳐야 한다고 얘기했더니 아니라더라.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따서 건축을 했기 때문에 대칭을 맞추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비뚤어진 것이지 대칭을 맞추는 것은 우리 방식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옛날 경복궁은 북궐도라고 하는 건축 당시의 설계도가 남아있다. 그 관계자에게 설계도를 보여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물었더니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설계도대로 짓지 않았다고 하더라. 둘러대기만 했다. 상황을 모면하려, 둘러대는 자세를 일관했다. 나중에 결국 다 밝혀졌다. 문화재청이 틀린 것이다. 이제 좌우가 비뚤어진 게 확실해졌으니 바로 잡으면 될 것이지 않느냐. 그러나 답이 없다. 시민단체에서 지적했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는 것이다. 문화재청 자신들이 발견한 것이 아니니까. 모든 문제가 다 그렇다. 항상 똑같이 일관한다. 자기들의 잘못이 드러난 걸 숨기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잊어버리니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파고다 공원 사례도 있다. 파고다 공원의 둘레인 난간이 일본식이다. 담이 아닌 대리석으로 돼있다. 내가 문제를 제기했다. 그랬더니 일본식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교체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파고다 공원은 정말 역사적인 자리다. 재정비 사업을 통해서 담을 바로잡았으면 좋겠는데 일단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백범 김구 동상이다. 서울 남산에 있는 백범 김구 동상을 만든 사람도 대표적인 친일 작가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 하지 않느냐. 백범 김구 동상을 친일 작가가 만들면 되겠느냐. 내가 백범 김구 선생이었으면 관 뚜껑 열고 나온다. 동상을 내려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지금 동상이 뭐가 중요하냐’, ‘그런 것을 할 때냐라는 여론, 관의 반발 등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그러나 쉬지 않고 계속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다 보면 문제가 언젠가는 고쳐질 것이다. 이런 것부터 고쳐야 잘못된 친일의 잔재를 청산할 수 있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대중적인, 국민적인 합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일제 청산은 구체적인 사건을 이뤄내야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말로만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제도를 지적한다면.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이 없다. 무엇을 청산할 것인지가 없는 것이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면 무엇이 잔재인지를 먼저 알아야하고, 찾으면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 잔재들은 다 청산이 안 되고 있다. 이순신, 백범을 친일파가 그리고 만들었는데 그걸 바꾸자는 것도 안 되고. 데라우치가 뇌물 받아서 청와대에 놓고 간 걸 없애자는데 그것도 안 된다. 지자체 등이 잘못된 것을 뿌리 뽑고 바로잡자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청산할 것이냐.

-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한 문화재 중 대표적인 것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오구라 컬렉션이다. 일제시대 도굴왕이라고 불렸던 오구라 다케노스케라는 사람이 우리나라 고대부터 19세기, 20세기까지 전 기간 수집된 주요 문화재들을 일본에 가져갔다. 이후 도쿄 박물관에 기증, 보관돼 있다. 불법적인 방식으로 도굴하고, 문화재를 수집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당당히 돌려달라고 얘기해야 한다. 나도 계속 정부에 압박하고, 직접 도쿄지방재판소에 조정 신청과 본안 소송도 했다. 물론 패소했다. 협상의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다.

과거 우리 문화 장관은 일본 문화 장관과의 만남 자리에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장관의 멘트는 우리 정부의 현실과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문화 장관(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오구라 컬렉션이 아닌 오쿠라 컬렉션을 돌려달라고 얘기했다. 한일 협정 이후 50년 만에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공식적인 최초 언급을 오구라오쿠라도 구별 못하고 말한 셈이다. 현재 문체부의 인식 수준이다.

또 우리나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도쿄국립박물관과 협약을 맺은 뒤 오구라 컬렉션 문화재 도록을 낸 적이 있다. 저도 한 권 구해서 봤다. 근데 책 표지를 보고 놀랐다. 오구라 컬렉션 문화재 도록의 재물 재가 아닌 제목의 라는 한자를 넣어 만든 것이다. ‘오구라 컬렉션 문화제라는 표지를 냈다. 어떻게 타이틀에 오타가 나느냐. 이게 오구라 컬렉션을 바라보는 문화재청의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사이트에 가면 첫 번째 표지 그림이 없다. 은폐한 것이다. 오구라 컬렉션을 바라보는 문화재청의 진짜 본심이 그렇게 무성의한데 뭐가 진행될 수 있겠느냐. 관련자들을 중징계해야 한다. 베토벤을 배트맨이라고 얘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도쿄국립박물관이 도록을 받아보고 어떻게 생각했겠느냐. 표지만 보고도 뒤는 볼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쓰라린 민족의 아픔을 담아서 낸 역사의 기록에 어떻게 오타를 내느냐. 시민단체, 국회, 여론이 계속 지적하니까 마지못해서 추진한 것이다.

심지어 도록을 낼 때 표지 사진에 부처님을 넣었다. 가야금관도 도굴 당했고, 많은 문화재가 있을 텐데 굳이 부처님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좋아서 했다고 하더라. 부처님이 멋있고, 신라의 미소를 담고 있어서 했다는 것이다. 오구라 컬렉션의 핵심은 빼앗긴 문화재라는 것이다. 그걸 되찾기 위한 표상을 정해야 하는데 부처님이 환하게 웃고 있는, 자비로운 미소로 웃고 있는 것을 표상으로 선택해서 표지를 낸 것이다. 그게 문화재청의 인식 수준이다. 빼앗긴 문화재에 대해 무엇을 찾을지, 어떻게 찾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말 그냥한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인식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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