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도 구슬땀 흘리는 작은 영웅들 ‘택배기사’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최근 택배업계는 배송과 전쟁 중이다. 업체들이 오후 7시 전, 또는 자정 전 원하는 상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집 앞으로 상품을 배송하는 ‘새벽배송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택배업계는 더 분주해졌다. 이 가운데 택배기사들은 모두가 잠든 시각에도 분류된 배송 물품들을 땀 흘리며 바쁘게 전달한다. 일요서울은 추석연휴를 앞두고 지난 2일 쿠팡에서 근무하는 택배기사의 새벽배송 현장에 동행했다.

새벽배송 6개월 차 ‘배송기사’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치열해진 새벽배송 시장… “무서울 시간 없어” 


택배업체들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새벽배송 시장은 3년 새 40배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과 마켓컬리도 자정 전 상품을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배송을 완료해주는 새벽배송 시스템을 도입했다.

야근이 많고 자취하는 일부 직장인이나 상품을 빨리 받고 싶어 하는 소비자는 이런 시스템이 ‘혁신’과도 같다고 말했다. 택배량이 급증하는 추석연휴에는 새벽배송을 원하는 소비자가 더 증가하는 추세다.

할당량 채우려면 3분당 한 집 배송...사고 위험 우려도 

오후 10시 서울의 한 물류센터. 이곳에서 입사 6개월 차 배송기사 A씨를 만났다. A씨는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물량도 평소보다 2배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에 배송할 상품을 탑차 내부에 싣는 A씨의 손길도 덩달아 빨라졌다. 물건을 다 싣고 나면 차에 시동을 걸고 배송 나갈 준비를 한다.

오후 11시가 됐다. A씨는 언덕이 높은 원룸단지 앞에 차를 세웠다. 다급히 내린 뒤에 물건을 내렸다. 업무폰(배송기사끼리 대화하며 실시간으로 관리자가 배송 실적을 평가해 순위를 보내는 업무용 PDA)을 확인한 후 원룸 앞을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촬영 = 신유진 기자]

 


주문자가 요청사항에 적어 둔 공동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서둘러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이내 A씨가 “아…”하고 한숨을 쉬며 계단을 올랐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었다. 기자도 숨을 헐떡거리며 뒤따라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노후한 건물이나 입주민 전용 엘리베이터만 있는 아파트의 경우 종종 고층이더라도 뛰어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A씨는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물건이 가벼워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경비실에 맡기거나 무인택배함 시스템에 놓기도 하지만, 대개 주문자들은 직접 문 앞에 배송받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5층 문 앞에 물건을 놓고 사진을 찍는 A씨는 또 다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겨우 한 집 배송했지만 A씨의 얼굴은 땀범벅이 됐다. A씨가 하루 평균 배송해야 할 곳은 140가구로, 물량은 200~250개 정도다. A씨는 3분당 한 집을 배송해야 하루에 할당된 물량을 다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원룸 단지 열 곳을 돌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A씨는 이동하는 동안 거치대에 꽂혀 있는 스마트폰을 자주 들여다봤다. 스마트폰 지도로 배송지를 보며 이동하기 때문이다. A씨는 “스마트폰 지도를 보고 이동해야 정확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고 제시간에 배송을 갈 수 있다”며 “항상 같은 행선지를 가는 것이 아니고 배송지 동선을 스스로 짜야하기 때문에 지도를 보면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통사고의 위험에 불안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새벽 1시가 되자 인적이 드물고 가로등이 꺼진 주택단지에 도착했다. 골목에는 길고양이 몇 마리만 보였다. A씨는 어둠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자 가슴에 매단 플래시를 켰다. “조심히 따라오세요”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을 방문할 때는 현장 경험이 있는 A씨도 무서움을 느낀다고 했다. 인적 드문 곳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무섭다고 A씨는 웃으며 말했다.
 

[촬영 = 신유진 기자]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분위기는 밖보다 더 음산했다. 지하로 내려간 A씨는 문 앞이 아닌 옆에 있는 창고로 가 문을 열었다. “고객님이 문 앞이 아닌 창고에 놓아 달라고 해서…” 창고는 어둡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 주문자가 원하는 요청사항은 불가능하지 않은 이상 다 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A씨는 하루 할당량을 다 채워야 하기 때문에 무서움을 느낄 시간도 없다. 택배기사를 시작한 초반에는 무서워 뒤도 돌아봤지만, 이젠 그런 시간도 사치라고 말했다.

새벽배송은 곧 ‘약속’...분실 방지 노력 철저히 

A씨는 새벽 3시쯤이 되자 배송 물량의 60%를 끝냈다. 다른 곳으로 이동 후 목이 탔는지 물을 들이켰다. 아까보다는 불빛이 밝아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걸어도 가로등이 꺼져 있는 곳을 볼 수 있었다. 한 주택의 대문 앞에 선 A씨는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도에 근접한 집이라 대문 앞에 두면 분실 위험이 커 문 앞에 두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A씨는 “새벽배송 물건은 고객과의 약속이므로 배송을 무조건 완료해야 한다”며 “이런 집의 경우 분실 위험이 크기 때문에 문 앞에 두기에 찜찜하다”고 말했다. 쿠팡의 경우 분실 시 택배기사가 아닌 회사가 책임지고 주문자에게 물건을 다시 보내주지만 이런 경우 택배기사가 계약기간 평가 점수를 좋게 받을 수 없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택배기사도 분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
 

[촬영 = 신유진 기자]

 


잠시 고민하던 A씨는 그나마 ‘파손 주의’ 물건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집 담벼락 안으로 떨어뜨렸다. 

또 다른 건물 안. 3층으로 올라간 그는 문 앞이 아닌 문고리에 걸린 우유 주머니에 상품을 겨우 넣고 있었다. “문 앞이 아닌 이 주머니에 넣어달라고 했다”며 우유 주머니보다 큰 상품을 간신히 넣고 사진을 찍었다. 문에는 ‘※경고※ 택배 가져가지 마라. 법으로 엄중히 처벌하겠다. 가져간 물건 제자리에 갖다놔라’ 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문구를 보니 주문자의 요청사항에 공감이 됐다.

만족스런 복지...그러나 비정규직 불안감은 여전 

새벽 4시가 됐다. A씨가 차 시동을 껐다. 일하는 중간 쉴 수 있는 휴식 1시간을 지금 쉰다고 했다. 근처 밥집으로 가 밥을 먹으며 A씨와 처음으로 여유로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6개월 정도 하니 이젠 힘든 점은 없는 거 같다. 우리 캠프의 경우 일이 바빠서 못 쉬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80% 정도가 일하는 중간 1시간 동안 밥도 먹고 몸도 재충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야간에 200여 개 정도 물건을 배송하는데 200개의 행복을 나눠드린다고 생각하며 일을 하니 보람찬 거 같다. 일의 성취감도 크다”고 했다. 

이어 “다른 회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의 복지는 만족한다”며 “얼마 전 운동화를 사라며 택배기사들에게 10만 캐시(업체에서만 쓸 수 있는 온라인 포인트)를 줘 아주 좋았다. 또 회식비도 매달 나와 풍족하게 회식한다. 캠프 내에서 가끔 외부음식업체(푸드트럭, 출장뷔페)를 불러줘 배고파하며 일하진 않아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괜찮은 복지에도 A씨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계약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A씨는 현재 비정규직으로 쿠팡의 경우 입사 1년 후에 계약 갱신을 하고 2년이 되면 정규직 전환 심사가 가능하다. 정규직 심사 대상이 되기 위해선 무단지각·결근이 없어야 하며 배송실적도 평균은 되야 한다.

 A씨와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벌써 1시간이 흘렀다. A씨는 다시 차로 이동해 시동을 켜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소비자 행복이 곧 원동력...사측 지원 확대 기대 

원룸에 도착한 A씨가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계속 입력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주문자가 요청사항에 적어 둔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맞지 않았다. “무조건 들어가야 하는데…” 공동현관 앞에 배송상품을 두는 것은 분실 위험이 크기 때문에 A씨는 물건을 두기를 망설였다.

하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고 사람들이 잘 발견할 수 없는 구석에 물건을 둔 뒤 사진을 찍었다. 문 앞에 놓아 달라는 주문자의 요청을 기타로 체크한 뒤 사진을 전송했다. 전송된 사진과 메시지는 오전 7시 주문자에게 일괄 전송된다. 

아침 7시. 날이 밝았다. 갑자기 내린 비에 A씨의 온몸은 땀과 빗물로 젖어버렸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 30분 정도 쉰 후 복귀한다고 말했다. 다음 주가 추석이라 많은 물량에 걱정이라며 A씨의 얼굴에는 벌써 그늘이 내려앉았다.

 

 


A씨는 현재 회사 복지가 많이 개선된 이유에 대해 예전에 제대로 된 휴식도 보장받지 못하고 일을 했던 택배 기사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현재 일하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거라며 고마워 했다. “물론 일을 적응하지 못해 수습기간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택배기사도 많다.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다. 6개월 일하면서 10명이 그만두는 것을 본 거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사람들이 ‘택배’ 하면 ‘극한직업’, ‘중노동’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런 인식이 없어지려면 택배 회사 복지가 앞으로도 좋아져야 하며 좋아진 만큼 택배 기사들도 같이 노력해야 소비자에게 좋은 서비스로 보답한다고 강조했다. 새벽에 뛰어다니는 택배 기사들이 있어 소비자들은 편리한 일상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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