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 절친 친구와 함께한 종편 기자와의 저녁 자리에서 조국 교수 이야기가 나오자 대학 절친 동기가 자기는 조국 교수처럼 ‘부자 강남좌파’가 아니라 ‘가난한 강남좌파’로서 뒷구멍에서 현실을 개탄하는 것으로 족했던 대학시절이 평생 ‘작은 콤플렉스’로 남아 있다고 고백하며 고개를 숙인다.

순간 나는 자괴감에 얼굴이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는 양심에 겨워 30년이 지나도록 부끄러움으로 간직하는데 과연 나는 어떠했는가?” 대학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철학의 기초이론’을 필두로 16주 연속 독서와 세미나를 통한 자아(Identity) 확립의 과정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아온 날들. 학생운동권의 핵심 리더들과 함께했던 무용담과 친분을 드러내며 ‘양식 있는 젊은 날’을 은근 과시해 온 오늘. 돌아보면, 이 얼마나 큰 운동권 핵심 세력에 대한 콤플렉스의 발로였던가.

조국 교수 사태로 586이 된 386 운동권들의 위선의 가면들이 하나둘씩 벗겨지고 있다. 오죽하면 유력 언론의 논설위원은 조국 임명이 우리 사회에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까지 했으랴. ‘도덕’을 독점한 듯 선악 이분법을 일삼던 좌파의 위선적 정체, ‘개념 유명인’들의 실체, 인터넷 여론 조작 현장 등이 조국 덕에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것이다.

선민(選民)의식이자 선민(善民)의식의 뒷자락에 똬리를 틀고 있는 위선의 늪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386 선배그룹 정치인 형들과의 술자리에서 종종 ‘끝장토론’이 붙곤 했다. 대학 졸업 후 기업 세계로 진출한 뒤로 이념, 노선을 접어놓은 나로서는 선배 정치인들로부터 “기업인들, 썩어빠지고 부도덕한 놈들!”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형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오너 경영자들을 본 적이 없다”고 받아치곤 했다. 옥신각신의 끝은 “그럼 그 더러운 기업인들에게 손 내미는 놈들은 얼마나 더 부도덕한 놈들입니까?”로 파장에 이르곤 했다.

그런 586 운동권이 권력을 누린 지 어언 30년이 넘었다. 아직 대권 근처에도 못갔는데 무슨 30년이냐 되느냐구요? 대학 운동권 시절부터 누렸던 대단한 위세는 과연 그 어떤 권력과 비교하고 맞바꿀 수 있을 것인가. 그런 형들이 치열한 ‘자기정치’를 통해서 후배들을 이끌어 주길 바라면서 투정도 부려 보았다. “제발 형님들만 크지 말고 후배들도 키워 달라”고. 그러나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나 한결같은 메아리였다. 치열한 자기정치는커녕 오히려 ‘누구파’니 ‘누구 계보’니 소위 팔로워(Follower) 정치 속에서 그야말로 먹고살기 바쁜 구태정치의 쳇바퀴를 여전히 돌리고 있다.

너무 오랜 권력에 취해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잊어버리고 ‘직업’으로서의 정치만 남은 걸까? 일신의 영달 위주의 장수 정치인들이 보여 온 ‘꼰대’ 사고와 유사한 면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소위 ‘틀딱’이라고 비하하던 ‘기득권 보수 꼰대’라는 분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시나브로 ‘진보 꼰대, 위선자 꼰대, 젊은 기득권 꼰대’가 되어가고 있고 ‘내로남불’ 카르텔 집단으로 각인되고 있다.

조국 교수 개인의 문제를 왜 586 운동권 전체로 일반화, 비약하느냐구요? 조국 후보 사태에 직접 전화를 해 가며 온몸으로 ‘쉴드’를 쳐주는 586 의원 나리님들. 청문회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위선과 기만, 공정의 이슈에 분노해서 자생적으로 들끓어 오른 대학생 후배들의 절규도 보수진영에 조종당하는 것으로 폄하한 분들은 대체 어떤 그룹이었던가.

얼마 전 아내가 청소를 하다 말고 처음으로 불만을 툭 던진다. “잘났다 하는 사람들 다 저러고 사는데, 당신은 뭐 잘났다고 민간기업 사장 때도 그리 지지리 궁상맞게 살았느냐”고. 정치에 참여하는 의미, 현실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의미에 대해 반면교사로 다시 새겨본다. 대학 새내기 때, 5.18 총궐기를 앞두고 “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양심의 소리를 속이지 말라”는 누나의 편지를 고이 간직해 온 순결을 스스로 더럽히지 말자고 다짐하며. 더럽혀진 선민(選民)의식 속에 위선 기득권 꼰대 소리까지 듣게 된 형님들! 후배들의 피끓는 절규가 너무 부끄럽잖아요. 이제 그만 그 위선의 가면 페스티벌을 끝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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