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뇌물 수수혐의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 씨와 관련된 2심 재판의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8월29일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8.29 판결로 이 부회장의 형량은 더 늘어나 재수감될 수도 있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 씨에게 건넨 말 3필 구입비 34억 원과 최 씨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보낸 지원금 16억 원이 삼성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박 대통령 환심을 사기 위한 뇌물이라고 했다.

구체적 증거는 없지만 이심전심으로 통한 “묵시적 부정 청탁”이었다는 판결이었다. 대법원이 “묵시적 부정 청탁”을 이 부회장에게 인용함으로써 법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최순실 씨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들에게 대법원이 “증거 재판주의”를 무시하고 “국정농단 프레임(구도)으로 조성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국민정서에 편승해 판결했다.”고 항변했다.

이 변호사는 1년 전인 2018년 9월에도 “대법원이 묵시적 청탁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정적을 처단하는 데 천하의 보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묵시적 부정 청탁”에 대한 판사들의 입장은 각기 다르다.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법원은 “묵시적 부정 청탁”을 적용했으나 2심“은 이재용 승계 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묵시적 부정 청탁”을 인용치 않았다. “묵시적 부정 청탁” 적용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에 입각해야 한다는 “증거 재판주의” 법리에 위배된다. 미국에서는 유죄를 결정할 때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beyond reasonable doubt)”에 준거해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되어 있다.

하지만 진보 성향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끄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 기준은 다르다. 이 부회장에 대한 “묵시적 부정 청탁” 판결은 대법원 전체 합의체 13명 중 10명이 찬성했고 반대 의견은 3명에 불과하였다.

“묵시적 부정 청탁”을 인용한 대법관들의 주장에 따르면, 부정한 청탁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대가 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면 충분하다고 했다.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이지 않고 구체적 증거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에 입각해야 한다는 “증거 재판주의” 법리에 어긋난다.

만약 부정한 청탁 혐의에 대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 없이도 유죄로 판결한다면, 기업인들은 정부사업을 지원했다가 정권이 바뀌면 증거 없이도 “묵시적 부정 청탁”으로 몰려 감옥에 갇힐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이 “묵시적 부정 청탁”이 두려워 청와대의 정부사업 지원 요구를 거절하게 되면 대통령에게 찍혀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부정 청탁 유죄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로만  판결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묵시적 부정 청탁”을 내세워 10대 3 유죄로 결정한데는 필시 까닭이 있을 게다. 우리 대법원의 대법관 구성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진보 인사들로 교체된 데 연유한다. 문 대통령은 대법관 14명 중 9명이나 진보 성향 법관으로 대체했다.

대법원의 8.29 판결에서 10대 3으로 나타난 것도 진보 편향 10 대 보수 편향 3의 구성 비율을 반영하기에 족하다. 대법원의 주류가 진보·좌편향으로 바뀌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경재 변호사의 경고대로 대법원이 “묵시적 부정 청탁”을 적용한다면 “정적을 처단하는 데 보검”으로 남용될 위험을 수반한다.

대법원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최후 보루로서 한쪽 이념으로 쏠려서는 아니 된다.

대법원이 자유민주·시장경체를 지키기 위해선 부정 청탁이라도 반드시 좌(左) 던 우(右) 던 이념을 떠나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에 입각해야 한다. 앞으로 “묵시적 부정 청탁” 판결의 부작용을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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