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목적과 수단이 도치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똑똑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수단 가치를 절대가치 자리에 올려놓는 우를 범하곤 한다.  

예를 들어 돈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그러나 돈이 목적이 되는 순간 인간은 그때부터 돈의 노예가 된다.

자동차도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일뿐 목적은 될 수 없다. 그런데 자동차가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수단과 목적의 도치는 비단 일상생활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을 보라. 히틀러는 추락한 독일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나치즘이라는 수단을 만들어냈다. 독일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이들이 나치즘을 수단의 자리에서 목적의 자리에 올려놓으면서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이 초래되고 말았다. 덕분에 독일은 지금도 선조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죗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정치체제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아니면 이원집정부제든 이들 모두는 권력을 지속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것이 목적으로 둔갑하는 순간 끊임없는 정쟁이 일어난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다.

이른바 대통령이 제왕과 같은 권력자로 군림할 수 있는 것도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대통령제를 절대가치 자리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어떤가.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역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한 수단이다. 국민 행복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목적의 지위에 올라서는 순간 온갖 부작용이 나타난다. 특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실패했음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폐기 처분된 사회주의에 미련을 두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세력이 아직도 우리나라에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보수와 진보 간 진영 싸움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둘 다 수단일 뿐인데도 양쪽 모두 이를 목적의 자리에 올려놓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도 다를 바 없다. 기독교 등 대부분의 종교는 구원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종교는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도 일부 종교인은 개인을 우상화하는 등 종교를 수단가치에서 절대가치인 목적으로 도치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그 결과는 딱히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속세가 되레 종교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부터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적폐청산도 마찬가지다. 적폐청산은 정의 구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금 문 정부가 펼치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은 단순히 수단의 범위를 뛰어넘어 목적의 자리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마치 적폐청산만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것처럼 절대화됐다.

수단과 목적의 도치가 난무하는 나라의 국민이 행복할 수는 없다. 수단을 절대화하는 나라는 전체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좋은 예다.

지금 우리나라도 무엇이 수단이고 목적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혼돈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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