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삼성 차범근 감독(51)이 K리그 우승으로 ‘최고의 선수’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다시 자리매김했다. 한국인 최초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10년간 통산 리그 308경기에 출장해 98골을 터뜨리며 ‘차붐신화’를 이뤘던 ‘월드스타’ 차범근. 화려했던 선수시절과 달리 지도자로서 뼈아픈 좌절과 역경을 맛보기도 했던 그가 10년 만에 국내 프로에 복귀한 올해, 지도자로서 첫 우승신화를 일궈냈다. 지난 12일,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수원 삼성이 5년 만에 K리그 정상에 올랐다. 수원삼성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4삼성하우젠’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에서 0대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4대3으로 포항 스틸러스를 누르고 올 시즌 프로축구 왕중왕에 올랐다.

수원은 이로써 지난 99년 K리그 제패이후 5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고 98, 99년에 이어 통산 세 번 째 우승의 위업을 이뤘다.특히 수원삼성을 이끌었던 차범근 감독은 K리그 복귀 10년 만에, 그것도 컴백 첫 해 지도자로서 국내 리그에서 처음 우승컵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한국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차 감독과 최순호 포항 감독의 대결은 1차전 0대0 무승부에 이어 2차전에서도 전·후반과 연장전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는 숨 막히는 접전이었다.2차전 연장까지 210분의 혈투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팀은 ‘잔인한 11m룰렛’인 승부차기에 돌입, 이운재(수원)와 김병지(포항)를 내세워 수문장 맞대결을 벌였다.승부차기에서 양 팀은 네 번 째 키커까지 3대3 동점을 이뤘다.

수원의 다섯 번 째 키커 우르모브가 공을 차 넣자 포항의 마지막 키커로 김병지가 나왔다.김병지는 한번 큰 호흡을 한 뒤 오른발로 침착하게 볼을 찼지만 의외로 슈팅 강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중앙으로 쏠렸고 이운재의 손에 걸렸다. 이운재는 날아갈 듯 포효하며 그라운드 중앙으로 뛰쳐나갔고 김병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김병지의 회심의 슛을 수원삼성의 골키퍼 이운재가 막아내자 차범근 감독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화려한 선수 생활에 비해 지도자로서 너무나 힘든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까. 수원 삼성 차범근 감독은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

지난 88년 레버쿠젠 소속으로 스페인 에스파뇰과의 유럽축구연맹(UEFA)컵 결승 2차전에서 짜릿한 3대3 동점골을 터트리며 팀에 우승컵을 안길 때도 차범근은 울지 않았다. 독일에서의 ‘차붐’은 아시아에서 온 독종가운데 ‘독종’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범근 감독(51)이 수원 삼성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차 감독은 “선수 때도 울어보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그동안 K리그와 국가대표팀, 중국 프로팀 감독을 지내며 겪은 마음고생을 솔직히 드러냈다. 사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갈색 폭격기로 명성을 날렸지만 90년 말 현대 감독에 부임하면서 시작된 지도자 생활 14년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 프로축구리그에서도,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중국에 진출해서도 ‘빛’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실패한 지도자에 가까웠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1년간 통산 308경기에 출장, 98득점이라는 ‘차붐신화’를 남기고 1989년 귀국한 차범근은 91년 프로축구 울산 현대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벤치의 차범근은 그라운드를 질주하던 때만은 못했다. 3년 이내에 팀을 우승시키겠다고 했던 호언장담은 공수표가 됐다. 97년에는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1년 후 프랑스월드컵에 나섰지만 네덜란드전 0대5 참패에 책임을 지고 대회기간 중 사퇴라는 수모를 당했다.이후 프로축구 승부 조작설을 제기해 5년간 국내에서 지도자 활동이 금지돼 중국으로 건너가 선전 핑안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99년 중국프로축구 감독으로 재기를 노렸건만 차감독을 기다린 것은 해고통보였다. 차감독은 3번 실패 끝에 얻어낸 교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좋은 선수들이 있는 팀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그 후 축구해설가로 활약해온 차감독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K리그 최상의 멤버를 자랑하는 수원으로부터의 러브콜. 하지만 1년 6개월만의 귀국도 금의환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수원의 영입 제의에 적잖이 망설였다. 그러나 꼭 한 번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고, 고민 끝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4경기 만에 복귀 첫 승을 신고할 만큼 출발은 불안했다.

하지만 차 감독은 팀을 후기리그 1위로 이끌며 마침내 자신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선수들 역시 ‘차범근식 공격축구’에 차츰 적응하면서 수원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7월 29일에는 아시아 투어에 나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명문 FC 바르셀로나를 1대0으로 격침시키는 이변까지 연출했다.후기리그 1위와 플레이오프 승리, 그리고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결코 이변이 아니었다. 선수들과 1년간 땀 흘리며 동고동락한 끝에 거둬들인 지도자 차범근이 쓰디쓴 인내의 대가로 거둔 첫 열매이기 때문이다.꼭 14년만. “3년 안에 우승을 거두겠다”는 당당한 출사표로 지난 91년 국내 K리그에서 첫 지휘봉을 잡았지만 너무도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그라운드에 복귀한 첫 해에 정상에 오르며 한풀이에 성공한 차 감독은 “얼마만큼 기쁜지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여기까지 14년 걸렸다. 굉장히 긴 시간이다. 우승하고 나니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기분이다”라는 말로 14년 만에 우승을 맛 본 소감을 요약했다. 그런 차감독은 우승의 공로를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다. 많은 땀을 흘린 선수들, 아낌없이 지원해준 삼성그룹, 세심하게 선수단을 배려해준 사무국, 감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준 가족들까지. 차 감독은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차분하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선수시절 우승하면서도 눈물 한번 흘린 적이 없는데 오늘따라 굉장히 눈물이 많이 난다.”빅리그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한국축구사를 길이 빛낸 차범근 감독. 만감이 교차하는 그의 마음은 미소 띤 그의 입이 아닌 촉촉히 젖은 그의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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