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국가 의무 져버린 책임은 누가?

고 김치중씨 사고현장 모습. 정면에 보이는 기계가 지게차에서 떨어지며 뒷편에 있던 김씨를 덮쳤다.
고 김치중씨 사고현장 모습. 정면에 보이는 기계가 지게차에서 떨어지며 뒷편에 있던 김 씨를 덮쳤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해외 출장 중인 가족이 사고를 당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막상 이 같은 사고를 당한 당사자 또는 그 가족이 되면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자국민의 해외 사고

시간 지나면 정부도 나 몰라라

 

지난 5월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침몰사고로 2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에서는 사고 직후 소방청119특수구조대 소속 24명의 특수구조대원까지 보내는 등 적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하지만 끝내 사망자 중 1명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지난 5일은 사고 발생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람들 기억 속에서 당시 사건은 하나하나 잊혀져 가고 있지만 생존자‧유가족들 중에는 사고 당시 트라우마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는 사람도 있다.

최근 생존자‧유가족들로 구성된 피해자 대표 단체는 헝가리 수사 결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심지어 이들은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허탈해했다.

 

‘사고 현장도 안 오는데’

영사조력 유명무실

 

재난심리치료사인 강명선(44)씨는 지난 4월 18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중국으로 출장을 갔던 남편 김치중(49)씨가 사고로 숨진 것이다. 경기 화성 마도공단 소재 미디안 직원이었던 김 씨는 20여 년간 한 회사에서 근무하며 중국을 비롯해 터키, 아프리카 등 수많은 곳으로 출장을 다녔지만 사고 소식은 처음이었다.

강 씨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공황 증세를 겪었다. 사고 상황에 대해 누구하나 명확히 설명해 주지 않았고 당장 중국 비자 신청을 해야 했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한마디로 눈앞이 캄캄했다. 세월호 참사 때 간접외상 환자들과 평소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치료를 도왔던 경험이 있었지만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강 씨는 사고 발생 이틀 뒤인 20일에서야 중국에 도착했다. 사고현장은 중국 산둥성 동영시에 위치한 산둥헝펑위생용품유한회사(이하 헝펑)의 기저귀·생리대 공장이었다. 남편 김 씨는 공장에 기계를 설치하기 위해 출장길에 나섰었다. 하지만 지게차로 기계를 이동하던 중 기계가 떨어졌고 근처에 있던 김 씨는 머리를 크게 다쳐 숨지고 말았다.

남편의 사고현장을 직접 둘러 본 강 씨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이 오랜 세월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쳐 가족과 회사에 헌신했던 남편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씨는 이후 일어난 사건들로 더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 사고와 관련 청도영사관에서 해 준 것은 비자발급, 화장절차 안내, 변호사 소개가 전부였다.

사실 강 씨는 영사관 측에서 현장에 방문해 주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영사관 측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현장에 방문하지 않았다. 국민이 죽었는데 사건 현장조차 방문해 주지 않는 영사관 측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영사관에서 알려준 자문변호사들이었다. 강 씨는 상담을 위해 영사관에서 소개해준 3명의 변호사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2명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통화가 된 1명도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결국 강 씨는 변호사 없이 헝펑 측과 사고협상을 해야 했다. 강 씨에 따르면 헝펑 측은 사고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고 항변했고 남편 김 씨 소속 회사인 미디안 측은 제대로 된 반박 한번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빨리 수습하고 돌아가자고 재촉하는 그들의 행동에 배신감마저 들었다고 전했다.

강 씨는 헝펑과 사고협상을 마무리 하지 못한 채 사망확인서와 사고결과서 등을 추후 받기로 한 뒤 남편의 시신을 화장해 24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 김치중씨 생전 모습. 사고 당일 오전 김씨가 직접 찍은 사진
고 김치중씨 생전 모습. 사고 당일 오전 김 씨가 직접 찍은 사진

사고조사보고서 받는데 4달

보고서 독촉도 유족이?

 

국내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강 씨는 사망확인서와 사고결과서만을 기다렸다. 남편 사망과 관련해 진실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 방문 당시 헝펑 측은 김 씨 과실만을 주장했고 현지에 동행했던 미디안 측 직원들도 사건과 관련해 함구한 채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궁금증이 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약 한 달여 만인 5월 15일 강 씨는 사망진단서만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의 사고 원인 및 사고 조사 등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강 씨는 청도영사관 측에 지속적으로 사고결과서가 안 들어왔으니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영사관 고유의 일이 아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로부터 약 4달이 지날 무렵인 8월 29일 저녁 영사관으로부터 강 씨에게 한통의 메일이 왔다. 그동안 강 씨가 그렇게 받으려고 했던 사고결과서였다.

중국어로 적힌 조사보고서를 받은 강 씨는 번역을 맡겨 하루 뒤에 번역본을 받았다. 한글 번역본을 받은 강 씨는 충격을 받았다. 강 씨가 우려했던 대로 모든 사고의 책임은 고인이 된 남편에게 떠 넘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서 구성한 사고조사팀이 작성한 조사보고서에는 “설비 설치 시 설비 사이에 사람이 서 있으면 안 되므로 A씨(헝펑 측 직원)가 영어로 김치중에게 소리치고 손을 흔들며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김치중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씨에 대해 “안전의식이 부족하고 안전조작규정을 위반하여 작업을 지휘했으며 이번 사고 발생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마디로 헝펑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 고스란히 조사보고서에 담긴 것이다. 강 씨는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 CCTV 확인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새 공장이라 설치돼 있지 않다며 확인 요청을 거절당했다. 결국 사고 당시 상황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김 씨와 함께 사고현장에는 한국인 동료가 한명 있었다. 하지만 그 동료는 사고 발생 이후 사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채 회사를 그만둬 버렸다. 김 씨 사망사고와 관련 유일한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던 만큼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지만 지금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그런데 강 씨는 중국에서 보내온 조사보고서를 살펴보다가 이상한 의문이 들었다. 조사보고서 작성 시점이 5월 20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망진단서가 발급된 5월 15일 이후 수차례 영사관을 통해 조사보고서 발급 유무를 확인해 달라고 했었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가 3달이 더 지나서야 강 씨에게 전달이 됐다.

강 씨는 관련 내용을 국민신문고를 통해 외교부 측에 문의했지만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는 11일 “주칭다오총영사관에서 중국 동영시 정부 측에 문의한 바, 동영시에서는 ‘덩펑’(헝펑)과 ‘미디안’, 유가족 측 변호사 중 누구도 보고서를 요청해온 바 없다”고 답변했다.

또 이날 강 씨와 유선통화에서 재외국민보호과 관계자는 해당 조사보고서는 내부문서로 중국 측에서 책임인정서를 발급해야 하는 것이라며 유족 측이 직접 중국 동영시에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부, 재외국민 보호의지 있나?

소극적인 대처 언제까지?

 

강 씨는 현재 미디안 측과 헝펑 측을 상대로 법적대응을 준비중이다. 그녀는 남편 김 씨가 사망 당시까지 근무했던 미디안에 대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보다 헝펑과의 영업 관계를 고려해 하루 빨리 사건을 마무리 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 실망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강 씨는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해외에서 근무하는 자국민의 사건사고 처리 절차가 보완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국가는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 시민, 한 가장의 죽음조차 지키고 규명할 수 없다면, 과연 의무를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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