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조국 정국을 틈타 보수대통합의 일환으로 ‘릴레이 삭발식’을 이어가고 있다. 삭발식을 통해 당 지지율을 올리고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함이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을 시작으로 박인숙 한국당 여성 의원이 삭발을 했다. 야당 대표 최초로 황교안 대표가 삭발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사뭇 엄숙했다.

그런데 뒤이어 한국당 의원들이 ‘릴레이 삭발’을 이어가면서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한국당에서는 심재철, 이주영 전현직 국회부의장이 뒤를 이어 삭발했다. 이어 최교일, 백승주, 이만희, 장석춘, 김석기 의원 등 영남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삭발식이 진행됐다.

이학재 의원은 삭발 대신 단식농성을 통해 결의를 다졌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박지원 의원은 단식, 삭발, 의원직 사퇴를 ‘정치인 3대 쇼’라고 폄하하면서 ‘머리는 또 자라고 굶어 죽은 사람은 없고 사퇴한 의원은 더더욱 없다’고 질타했다.

여당에서는 한국당이 ‘사찰당’으로 전락했다며 향후 두발파와 삭발파로 나뉘어 친박 비박을 대신할 것이라고 농담의 소재로 삼고 있다. 또한 향후 의총장에서 ‘머리를 깎지 않은 사람은 발언도 하지 마라’는 무언의 압박이 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황 대표가 삭발을 할 때까지 조국 사퇴에 대한 항의와 문재인 정권 실정에 대한 질책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황 대표 삭발 이후 총선을 맞이해 공천권을 보장 받고 보수 성향의 지역구 주민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이벤트식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급기야 정치권에서는 나경원 원내대표는 언제 삭발식을 할 것이냐며 희화화하는 정도다.

야당이 집권여당에 맞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보여주기식’ 경쟁적 삭발은 단시간에 주목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안 정당의 면모가 아님은 분명하다.

특히 9월 정기국회의 꽃인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다. 국정감사는 집권여당에 대한 정책과 인사뿐만 아니라 국민 혈세인 세금을 적절하게 썼는지에 대해 감시하고 지적하는 장이다. 여당인 민주당이 현 정부에 쓴소리를 보낼 리 만무하다. 오히려 집권여당은 국정감사보다는 총선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1야당인 한국당마저 현 정부의 실정과 예산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소홀히 하고 공천권에 연연하는 모습은 오히려 집권여당에게 득이 되는 행동이다. 조국 사태와 한미일북 관계가 불투명하고 경제가 안 좋은 상황 속에서 한국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다.

‘릴레이 삭발식’도 한두 번이지 이 정도면 국민적 관심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당 현역 의원이 110명이다. 남은 100명이 두 명씩 짝을 이뤄 삭발식을 진행해도 앞으로 50여 회가 남았다. 의원직 총사퇴나 총선 집단 불출마 선언을 할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삭발식은 정치적 의미가 없다.

차라리 남은 한국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집단 삭발식을 가지고 사생결단 결의를 다진 후 정기국회와 국정감사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 이상 국민들은 쇼나 이벤트에 감동하지 않는다. 이제는 실력으로 말해야 한다. 제1야당으로서 정책정당, 대안정당, 수권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춰 나가야 한다.

특히 삭발식으로 잠시 주춤한 보수 대통합에 대한 확실한 안도 제시해야 한다. 정치의 꽃은 선거다. 내년 총선이 6개월도 남지 않았다. 힘들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회성 이벤트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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