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강경화 밀어내고 ‘기강 해이’ 외교부 잡는다

[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청와대는 갈등이 크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가 복잡한 상황에서 벌어진 외교안보라인의 엇박자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이 설전을 벌인 배경에는 청와대의 ‘외교부 패싱’과 비외교관 출신의 강 장관이 외교부를 휘어잡지 못한 것, 김 차장의 외교부장관 설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들의 갈등이 지속될 경우 외교안보라인에 구멍이 생길 수 있어 청와대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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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우리 직원에게 소리치지 말라” vs 김현종 “It`s my style(이게 내 방식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지난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4월 김현종 청와대 2차장과 다툰 적 있지 않느냐”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문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답해 외교안보라인의 불화설을 시인했다. 정 의원이 이 내용을 언급하며 구체적으로 묻자 강 장관은 침묵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당시 김 차장이 외교부 직원을 불러 큰 소리로 질책했고 이에 옆에 있던 강 장관이 “우리 직원에게 소리치지 말라”고 항의하며 언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강 장관과 김 차장이 언쟁 말미에는 영어로 다퉜으며 이 과정에서 김 차장이 “It`s my style(이게 내 방식이다)”이란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靑 “갈등 심하지 않아” 김현종 “제 덕이 부족”

청와대는 갈등이 심하지 않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다음 날인 17일 기자들과 만나 “외교부와 안보실 사이에서 충돌이 있거나 갈등이 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하다 보면 조금씩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교부와 안보실이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등의 상황은 전혀 아니다”라며 “현재도 협의와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 차장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외교안보라인 간 이견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에서 최선의 정책을 수립하려고 의욕이 앞서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 제 자신을 더 낮추며 살겠다”고 적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뉴시스]
강경화 외교부장관 [뉴시스]

청와대의 해명과 김 차장의 사과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김 차장이 언급한 대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한미 동맹에 균열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지소미아 관련 질문에 “한국의 정보공유 중단 결정을 내린 데 실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한·일 두 나라가 관여와 대화를 계속하기를 촉구한다”며 “한일의 공동 이익이 중요하고 이것이 미국에 중요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는 김 차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가 도출한 방안을 수용해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 차장은 NSC 상임위에 앞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의 면담 후 “우리 국익에 합치하도록 판단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 다음 날인 23일에는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이번 종료 결정이 한미동맹 관계를 업그레이드시켜 더 굳건한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후 지소미아 종료 결정 과정에서 외교부가 ‘패싱’ 당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 의원은 “강 장관이 외교 전문가이기 때문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거다”라며 “그런데 대통령은 지소미아를 종료했다. 저는 김 차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김 차장은 변호사 출신에 통상 전문가이고 정무적인 외교 전문가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 장관은 이에 침묵했다.

정 의원의 발언과 강 장관의 태도를 볼 때 강 장관은 지소미아 종료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강 장관이 아닌 김 차장이 주도해 지소미아 종료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현직 장관의 내부 불화설 시인은 이례적으로 강 장관이 김 차장과의 불화를 시인하며 청와대의 외교부 패싱에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뉴시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뉴시스]

김현종 장관 될까 봐 외교부 ‘벌벌’

외교안보라인의 불화는 외교부 기강 해이와 김 차장의 외교부장설 때문에 증폭됐다. 강 장관은 비외교관 출신으로 임명 전부터 자질 논란이 일었다. 강 장관이 임명된 이후 캄포디아 주재 외교관·일본 총영사 성추행 사건, 독일주재 대사관 횡령과 지난 4월 발생한 ‘구겨진’, ‘빛바랜’, ‘거꾸로 걸린’ 태극기 실수 등 외교부 기강 해이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 소식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강 장관이 업무 장악 능력이 없어 외교부를 휘어잡지 못하고 있다”며 “강 장관이 취임하기 전에는 미국·일본·중국을 담당하던 출신들이 외교부를 꽉 잡았다. 밑에 사람들은 강 장관 임명이 신선해 보이고 인기를 끄니 좋아하지만 고위직 사람들은 장관 대우를 별로 안 해주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차장에 대해서는 “외교부장관 욕심이 있는 걸로 안다”며 “외교부 사이에서 김 차장이 장관으로 오면 직원들 다 죽을 거라고 한다. 김 차장 업무 방식이 밑에 사람들 그냥 놔두지 않는다. 자기도 엄격한 만큼 밑에 사람에게도 엄격하다”고 전했다. 정 의원 역시 강 장관에게 “요즘 외교관들 사이에서 강 장관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후임 장관으로 김 차장이 올까 봐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정치 욕심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유동수 의원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그는 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서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옮기게 된 것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 차장은 지난 8월 12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만나는 사람마다 2차장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하지만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강등돼 위로를 받아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미FTA 두 번 협상하고 강등 당했다”고 재차 불만을 토로했다.

정치권에서는 다음 개각에서 강 장관이 총선 출마를 위해 장관직을 내려놓고 김 차장이 외교부장관 또는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해 청와대의 인사 결정에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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