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
[인터뷰]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
  • 황기현 기자
  • 입력 2019-09-20 16:48
  • 승인 2019.09.20 19:21
  • 호수 1325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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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변에 묻힌 우리 국민들 직접 확인하고 싶다”
이미일 이사장 [사진=황기현 기자]
이미일 이사장 [사진=황기현 기자]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은 군사작전 ‘폭풍’ 계획에 따라 대한민국을 불법 침공했다. 어떠한 조짐이나 선전 포고도 없이 시작된 기습 남침이었다. 당시 국군은 주말을 맞아 대다수 병력이 휴가나 외박 등을 나간 상태였다. 제대로 된 방어 태세를 갖추지 못했던 국군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패퇴를 거듭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전쟁 개시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북한에 내줬다. 이후에도 고전을 면치 못한 국군은 부산 인근을 제외한 전 지역을 함락 당했고, 낙동강 방어선을 마지노선으로 구축하게 됐다. 그리고 이 시기, 한반도 적화통일을 눈앞에 뒀던 북한 정권은 대한민국에서 활약하던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 등을 북한으로 피랍 하는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피랍된 사람은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이들의 소식은 전쟁 발발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뚜렷이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북한에 끌려간 가족을 잊을 수 없었던 이들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를 구성해 지금까지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의 이미일 이사장을 만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10만 명 납치한 북한은 분명한 범죄 집단”
“1원 한 장 지원 해주지 않으면 북한은 무너진다”

-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어떤 단체인가?

▲ 단체 명칭에도 있는 것처럼, 전쟁 중에 북한 당국에 의해서 잡혀간 민간인들 10만 명의 (진실 규명과 송환을 위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북한이 한 명도 납치해가지 않았다고 휴전 회담 때부터 지금까지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 사료와 근거 자료를 찾고, 전쟁납북자특별법을 만들어 명예회복을 하고, (납치된) 그 분들을 현대사의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대한민국으로 송환하도록 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다). 북한이 우리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데 책임 있는 조치를 하게 하는 일도 해야 한다. 압박이나 제재를 통해서든지. ‘당근’은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납치 범죄에 대해서 북한으로 하여금 적합한 조치를 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 데까지 나아가려고 한다. 가족회는 1950년부터 시작됐다. 공식 출범은 1951년 8월 부산에서 열린 창립총회를 통해서였다. 현재 단체는 이 정신을 이어받아 2000년 11월 30일 총회를 열고 발족했다. 당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납북자를 400여 명으로 파악,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시작했다. 조선일보 등에 단체 만든다고 광고도 했다. 현재는 한 700여 가족이 된다.

- 단체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 2010년 특별법이 만들어져 1년에 1억 원 씩 정부에서 사업비 보조금을 받고 있다. 2010년까지는 회비하고 제 사유재산으로 운영해 왔다. 지금도 사실은 정부가 사업비를 주지만 20%는 자부담을 해야 한다. 2000만 원은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것. 그 돈은 인건비나 운영비 등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혼자 할 때보다 자금은 더 들어간다. 사업을 하려니 직원이 더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1억을 안 쓰면, 사업을 안 하면 안 되지 않느냐(웃음).

- 전쟁 중 납북 범죄가 있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 그 이유를 요새 알았다. 대한민국에 종북, 친북, 스파이, 간첩 수준의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거다. 그 사람들이 지위가 낮은 사람도 아니고, 지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 많다. 우리가 시위를 하면 와서 ‘친미주의자’라며 시비를 거는 사람도 많았다. ‘납북자’가 아닌 ‘월북자’로 말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때가 올 줄 알았다. 대한민국에 가치관이 없고, 반공(反共)을 외치는 사람은 구닥다리로 취급하는 시간이 왔다. 북한의 잘못을 이야기할 상황이 안 되는 거다. 그렇다고 단체에서 ‘한국 사회가 왜 이 모양이냐’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정부는 잘 먹고 잘 사는 데만 관심이 있다. 나라가 교만해졌다. 우리들이 낸 세금을 아무 조건 없이 북한에 줬다. 우리나라는 북한에게 종속되는 상황이 됐다. 너무 돈에만 ‘몰빵’을 한 결과다. 북한 주민은 굶어죽고 난리를 쳐도 북한 정권만 도와주지 않느냐. 북한하고는 대화를 하면 안 된다. 1원 한 장 안 주면 북한은 무너질 것이다.

- 납북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 가족을 사랑한 사람들이 끌려갔다. 자기 혼자 도망가면 충분히 갈 수 있는데, 가족을 두고 갈 수 없으니까. 숨어 있다가 가족을 보러 집에 오면 북한군이 잡아갔다. 그만큼 조직적이었다.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자마자 세포 단위로 인민위원회를 꾸렸다. 남조선 사회주의자, 노동당 당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을 볼모로 잡아 아버지를 납치한 사례도 있었고, 역시 아들을 볼모로 잡았지만 아버지가 도망가 평생 아내와 원수로 지내게 한 사례도 있었다.

- 정부에서 해준 노력이나 지원이 있었나?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 그나마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특별법이 시행되고 끝났다. 아슬아슬하게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오고 기념관이 설립된 정도가 전부다. 기념관은 명예회복 차원에서 건립됐다. 현재 정권은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안 해준다. 우리들한테 해주던 지원을 끊겠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지만. 저는 정말 부럽다. 우리나라는 언제 저런(일본 같은) 가치관을 가져보나.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는 여건이 다르다. 다만 국민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같아야 한다. 예전에 일본에 가서 행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총리가 일본 피해 가족 앞에서 키 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일본 정부가 해줘야할 게 무엇인지 일일이 물어보고 다니더라. 앞에서 연설만 하고 가는 게 아니다.

- 단체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 우리 회원들과 대동강에 가보고 싶다. 북한이 남한 민간인을 집단으로 묻은 곳이 있다고 당시 종군 기자에게 들었다. 그림도 그려주셨다. 미 국무부 문서에서도 대동강 집단 학살 사건을 찾아볼 수 있다. 내 마지막 목표는 북한을 끝내는 게 우선이고, 우리 가족들이 현장 실사를 가는 것, 북한이 처벌을 받는 것을 원한다.

황기현 기자 kihyu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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