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희 한국핵물질관리학회 회장
장문희 한국핵물질관리학회 회장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지속가능을 결정할 수 있는 백년지계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의 탈원전 에너지 전환정책은 무게를 달아 볼수록 가벼워지기만 한다. 왜 그럴까? 그 정책의 뿌리가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하기에는 불안정한 얼개로 엉성하게 엮인 기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뿌리가 자리 잡은 기초 얼개가 어떠한지 보자.

지금의 에너지 전환정책은 백년대계인 국가 에너지안보가 취약해 지든 말든, 폐기시킬 원자력을 대체할 에너지 기술이 있든 없든, 신 에너지원을 뒷받침할 산업 생태계가 있든 없든, 에너지 전환에 투입되는 재정이 외국으로 가든 말든, 국민이 불안해 하고 불편해 하든 말든, 이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무관심이 얼기설기 엮인 얼개가 바로 에너지 전환정책을 지탱해주는 기반이다. 에너지 문제를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고 그리고 얼마나 급하게 만들어 낸 얼개인지 조목조목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탈원전 에너지 전환정책의 깃털 같은 가벼움으로 인한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 상실로 국가 에너지안보 취약. 둘째, 지속가능 자립기술 폐기로 대체에너지원 구입에 엄청난 국부 유출. 셋째, 탈탄소 친환경에너지 포기로 기후변화 및 미세먼지 환경 대응 수단 상실. 넷째, 세계 최고수준 원전 기술의 수출 포기로 막대한 국익 창출 기회 상실 및 국가경쟁력 저하와 위상 하락. 다섯째, 전기요금 상승으로 국민 삶의 질 하락 등이 우선 눈앞에 선명하게 보인다.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운영과 관련한 불편한 문제이며, 원자력발전을 시작할 때부터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신랄한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진보해 왔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인류 문명사에서 인간이 개발해 낸 문명의 모든 이기들에 많은 불편한 점들이 있었지만 우리의 기술과 지식과 지혜는 이들 불편한 점들을 항상 해결해 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 문제도 조만간 해결될 수 있는 당장의 불편한 현안일 뿐이다. 탈원전 정책의 이유와 논리가 심중(深重)하지 못하고 얕고 가볍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원전은 안전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그래서 탈원전 해야 한다고 했다. 40년 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일해 온 고리1호기는 위로는커녕 공개적인 모욕과 함께 국민 앞에서 생매장을 당했다. 건강한 월성1호기는 강제로 사망선고를 받고 현재 장례절차를 밟고 있다. 조심스럽게 숨 쉬고 있는 나머지 원전들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면서 고려장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오호통재라! 부국강병의 추동력이 사그라지고 있구나.

국내에서 그렇게 적폐의 상징으로 다루는 원전을 외국에 가서는 “한국의 원전은 40년 역사에서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세계 최고로 안전한 원전이고 기술이다”라고 홍보하는 것은 우리나라 에너지 전환정책이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주는 반증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에너지 문제는 가볍지도 않고 파괴와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잘못 만들어진 탈원전 에너지 전환정책 시행 후 겨우 2년 남짓 지난 지금, 40~60여 년에 걸쳐 세계 정상에 오른 기술과 산업의 묵중한 뿌리가 뽑히면서 할퀸 상처와 흔적이 사회 곳곳에 넘쳐난다. 자칫 이 정부가 내세운 “안전과 환경”이라는 최고의 가치뿐만 아니라 적폐로 몰아붙인 “안정과 경제성”도 잃을지도 모른다.

에너지 자립, 모든 국가의 염원이고 국가의 최우선 가치로 다루고 있다. 자립을 하고 싶어도 주어진 환경이나 처한 여건 때문에 못하거나 할 수 없는 나라도 많다. 에너지 자립과 관련해서 만국 공유의 기본 원칙이 있다. 에너지원이 싸고 안전하며 외국 의존도가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너지 안보라고 하지 않는가. 드디어 에너지 자립을 이루자 석유 보고인 중동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미국의 정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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