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헌 중사 전상·공상 판정 논란 “저희한텐 전상군경이 명예다”

하재헌 예비역 중사 [뉴시스]
하재헌 예비역 중사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2015년 8월 4일 경기도 파주시 인근 대한민국 육군 제1보병사단. 사단 예하 수색대대에서는 이날 7시 28분경 수색작전 병력 8명이 비무장지대 아군 추진철책 통로에 도착했다. 선두에 섰던 김정원 중사(당시 하사)가 7시 33분경 통문을 통과한 뒤 왼쪽 5미터 지점에서 전방경계를 실시했다. 이어 2분 뒤인 7시 35분 두 번째 대원이었던 하재헌 중사(당시 하사)가 통문을 통과하려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나며 하 중사의 우측 무릎 위와 좌측 무릎 아래 부분이 절단됐다. 목함 지뢰였다. 비상 상황에 팀장을 맡고 있던 정모 중사가 통문을 넘어가 전방 경계를 했고, 김 중사 등 3명이 하 중사를 통문 넘어 남측으로 후송했다. 이 과정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나며 김 중사의 우측 발목이 절단됐다. 2015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북한의 목함 지뢰 사건이 벌어진 순간이었다.

하 중사 “다리 잃고 남은 것은 명예뿐, 빼앗아가지 말아 달라”
野 “북한 보훈처냐” 맹비난

불행 중 다행히도 주변에 있던 장병들의 빠른 대응으로 하 중사와 김 중사 모두 목숨은 잃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2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몸이 됐다. 치료와 재활 과정을 마친 김 중사는 국군사이버사령부로, 하 중사는 국군의무사령부로 옮겨 군 생활을 이어갔다. 현재 김 중사는 스마트로봇 의족 상용화 첫 시범케이스가 돼 의족을 지급받았고, 하 중사는 도발이 발생한지 약 3년 5개월 만인 2019년 1월 31일 전역하고 장애인 조정 선수로 패럴림픽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많은 국민들은 아픔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하 중사의 포부에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그런데 전역 8개월여가 지난 9월 17일, 하 중사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북한 목함 지뢰 도발 사건, 저의 명예를 지켜주세요’라는 글에서 “억울한 이야기 좀 들어 주시기 바란다”고 운을 뗐다. 하 중사는 “북한 목함 지뢰 도발 사건으로 저는 총 21차례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면서 “1년 넘게 병원 생활을 하고 두 다리에는 의족을 낀 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만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군에서 전공상 심사 결과, 전상자 분류 기준표에 의해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의하여 상이를 입거나 적이 설치한 위험물 제게 작업 중 상이를 입은 사람’이라는 요건으로 전상 판정을 받았다”라면서 “군 인사명령에도 전투경력 육군 1사단 DMZ 지뢰 도발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 중사는 전역 후 국가유공자 신청에서 전상군경이 아닌 공상군경 판정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국가보훈처에서는 전투에 대한 문언 해석 범위를 넘어 전상군경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시됐다”라며 “적이 매설한 목함 지뢰에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기존의 DMZ 수색 작전 중 입은 지뢰부상과 달리 보기 어렵고, 사고 당시 교전이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라고 지적했다. ‘전상’은 교전이나 이에 준하는 전투행위 등에서 입은 상이를, 공상은 훈련이나 공무 수행 과정 등에서 입은 상이를 뜻한다.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은 명백한 전투행위 상황으로 볼 수 있지만 보훈처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 중사는 “현재 북한과 교류가 있다고 해서 국가보훈처에서 이러는 게 말이 되냐”라면서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이 대우를 받는 곳이 보훈처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천안함 생존자 분께 연락을 드리고 양해를 구한 뒤 이야기 한다”라며 “천안함 사건 역시 교전이 없었지만 북한의 도발이었다. 천안함 희생자분들은 전상을 받고 저는 공상을 받았다”라고 비교하기도 했다. 하 중사는 전상군경과 공상군경이 받는 돈의 차이는 5만 원 정도라고 지적하며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저희한테는 전상군경이 명예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끝까지 책임지시겠다고 하셨는데 왜 저희를 두 번 죽이냐”라며 “적에 의한 도발이라는 게 보훈처 분류표에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다리 잃고 남은 것은 명예뿐인데, 명예마저 빼앗아가지 말아 달라.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라고 글을 맺었다.

들끓는 여론…野 일제히 비판

해당 청원은 게재 4일 차인 20일 오전 10시를 기준으로 약 2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국민들의 여론도 들끓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9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하 중사 ‘공상’ 판정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 전상군경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전상 판정’ 응답이 10명 중 7명에 달했다. 기존의 DMZ 수색 작전 중 입은 지뢰 부상과 다르지 않고 사고 당시 교전이 없어 공상 판정이 맞다는 응답은 22.2%에 그쳤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응답률은6.0%).
야당도 일제히 보훈처를 비판하고 나섰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는 지난 17일 “북한 도발의 진실마저 왜곡하는 보훈처는 북한의 보훈처냐”고 공상 판정을 맹비난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하 중사의 부상이 전상이 아니라 공상이라면 하 중사의 두 다리를 빼앗아 간 목함지뢰는 북한군이 아니라 우리 군이 매설했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대통령이 정상이 아니니 온 나라가 미쳐가고 있다”며 “보훈처는 대한민국 국군의 명예를 지키라고 국민 세금으로 만든 것이다. 보훈심사위원 중 공상 판정에 찬성한 심사위원들을 전원 파면하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지난 19일 하 중사를 직접 만나 “대한민국 영웅을 만나게 돼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웅 대접을 우리가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이미 (소행을 인정하고) 사과한 (목함 지뢰) 사건을 이번에 정부에서 제대로 (판정) 못한 것은 너무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文 대통령 “탄력적 해석 여지 살펴봐야”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 법조문을 탄력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며 수습에 나섰다. 김대원 보훈처 대변인 역시 18일 정례브리핑에서 “보훈처는 하재헌 예비역 중사의 이의신청에 대해 곧 재심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재심의 과정에서는 기존 국가유공자법 시행령을 탄력적으로 검토해 심도 있게 논의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목함 지뢰 사건은 명백한 북한의 군사 도발이었다. 국방부와 유엔군사령부 역시 합동 진상조사를 통해 북한이 몰래 DMZ를 침범, 목함 지뢰를 매설해놨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하 중사는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다 피해를 입었음에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과연 보훈처가 재심의에서는 어떤 결과를 발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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