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 `발끈`…"이 회장 무능 감추려는 속셈"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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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의 `산업은행-수출입은행 합병 추진` 발언과 관련한 후폭풍이 거세다. 두 기관 간 관계가 급격히 악화함은 물론 국제금융 시장에서 한국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회장이 합병을 일방적으로 공론화 한 것에 대한 불만도 큰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무능을 감추려는 속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정책금융기관 통합론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통합론 자체는 이미 정치권에서 나왔던 주장이라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정책금융기관 통합론 재점화 VS 수은노조 강력 반발 "책임회피 발언"
은성수 금융위원장 "의미 없다" 반박...일각에선 정치권 결탁설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수출입은행지부(이하 수은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이동걸 산은 회장은 무능함을 감추려는 무책임한 합병설 제기를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수은 노조는 이 성명에서 "이동걸 회장은 2년간의 정책금융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운 것인가?"라며 "아직도 정책금융이 `규모의 경제` 운운하며 덩치만 키우면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생각하는가?"라며 반문했다.

노조는 이어 "이미 정부는 새로운 정책금융 수요를 반영하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2013년에 발표하면서 산은은 대내 정책금융을, 수은은 대외 정책금융을 전담하는 것으로 업무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특히 해외 중장기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공적수출신용기관인 수은에 전담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수은 노조는 "이동걸 회장의 기자간담회 발언은 대내 정책금융기관이라는 산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책임회피 발언"이라며 "국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견인해야 할 산은이 구조조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회장은 업무영역과 정책금융 기능에 관한 논의로 본인의 경영능력 부재와 무능력함을 감추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수출입은행장의 공석 기간을 틈타 `수은 부지가 원래 우리 땅이었다. 다시 찾아와야 할 것 같다`는 발언으로 타 국책금융기관을 비하하고 흔드는 짓은 그만두라"며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타 국책기관의 고유 업무영역에 기웃거리지 말고, 어떻게 현재 당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역할을 다할 것인지 고민하라"고 지적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전자증권 제도 시행 기념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아무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더는 논란이 없었으면 한다”며 재론하지 말라는 뜻도 피력했다.

이 회장 "정부와 협의 안 한 사견"…수은 "황당하다"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정책금융의 일원화를 위해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합병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10일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정책금융이 분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합병으로 더 강력한 정책금융 기관이 나올 수 있고, 유망한 곳에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정부와 협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며 사견을 전제로 말하는 것"이라면서도 "남은 임기 동안 면밀한 검토를 해 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의 정책금융도 구조조정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미래를 이끌 정책금융을 시대에 맞게 개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이런 것이 정책으로 제도화, 관행화한다면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누가 최고경영자(CEO)로 오든 정책금융 기관으로서의 산은의 역할이 시장 기대만큼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다"고도 했다.

또한 이 회장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산은의 지방 이전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산은이 해외로 팽창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 할 시점에 지방 이전은 진보가 아닌 퇴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쓸데없는 논쟁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산은의 국제화를 위해 차근차근 노력할 것"이라며 "20년 후 전체 수익의 최소한의 절반은 국제금융에서 올릴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국내 산업에 지원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다만, 사안의 파급력을 고려한 듯 수은과의 합병이나 지방 이전 반대 뜻은 자기 생각이며 정부의 정책 방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내부적으로 검토할 것이고, 정책금융 기관의 기능과 역할이 강화되고 꾸준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두는 게 남은 제 노력이라는 취지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서도 통합론 제기돼…. 발언 파장 예의주시

한편 일각에서는 정책금융기관 통합론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던 이슈라며 이 회장의 발언 파장을 예의주시 중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연구모임에서도 이 같은 필요성이 거론된바 있던 터라 더욱 주목받는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정책위원장으로 있는 더미래연구소는 `정책금융기관, 통합형 체제로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더는 수행할 필요가 없어진 기능, 민간 영역에서 할 수 있어 정책금융기관이 할 필요 없는 기능 등을 정리해야 한다”며 ""과도하게 나뉘어 있는 정책금융기관들을 통합·재편해 정책금융체제를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통합정책금융기관 구성 논의의 시간표로 ▲2019년 안의 마련 ▲2020년 상반기 법안 제출·논의 ▲2020년 말 법안 통과 ▲2021년에는 통합 실무 추진을 제시했다.

다만 보고서는 개별 정책금융기관의 통합 대신 독일의 정책금융기관 KfW을 모델로 산은·수은·기업은행·무보 등 8개 정책금융기관을 자회사로 두는 지주회사 체제의 설립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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