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만남 가지려 했는데...자연스럽게 멀어져”
“변호사를 통해 법적인 절차로 해결할 것”
방송인 강병규 “잘 좀 하지 그랬냐?” 저격

양준혁(오른쪽)과 이종범 [뉴시스]
양준혁(오른쪽)과 이종범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양준혁(50) 해설위원이 성추문에 휩싸였다. 하지만 양준혁 측은 해당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은퇴 후 ‘양준혁 야구재단’을 만들어 꾸준히 활동해 온 만큼 성추문 소식은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양준혁의 성추문 의혹은 지난 18일 한 SNS에 관련 글이 올라오면서부터 알려졌다.

문제의 SNS에는 양준혁이 자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양준혁이 강압적으로 육체적 관계를 요구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면 내용을 계속 업데이트하겠다”는 글이 게시됐다.

출처가 불분명한 게시물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자 양준혁은 SNS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굉장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내용으로 포장돼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fk며 “이번 유포 사항과 관련해 변호사를 통해 법적인 절차로 해결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늦은 나이에 좋은 만남을 가지려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애초의 느낌과 다르게 만날수록 서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19일 야구선수 출신 방송인 강병규가 양준혁을 비판하는 글을 SNS에 올리며 또다시 논란이 됐다.

강병규는 개인 SNS에 “양준혁. 양불신. 어쩜 이리 예상을 벗어나지를 않는지”라며 “‘잘 좀 하지 그랬냐?’ 너가 나한테 예전에 했던 말이야”라고 남겼다.

양준혁과 강병규는 지난 2012년에도 프로야구 선수 시절 해묵은 감정을 드러내며 설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양준혁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홈페이지를 후원하면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큰 힘이 된다”며 ‘양준혁 야구재단’ 후원 방법을 소개하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강병규가 “꿈나무 누구에게 얼마를?”이라며 후원금의 구체적인 규모와 사용처 등을 공개할 것으로 요구했다.

그러자 양준혁은 “도박판에 수십억 원씩 기부하지 말고 사회를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 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맞받아쳤다.

양준혁은 야구계의 전설이다.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 걸쳐 ‘최고’ 타이틀을 갖고 있을 만큼,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로 평가 받는다.

대구상고-영남대를 거쳐 지난 1993년 삼성에 입단한 양준혁은 그해 0.341의 고타율로 타격왕에 오르면서 당시 신인왕 투표에서 이종범(당시 해태)을 제치고 신인왕의 영광을 차지했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평가를 받은 양준혁의 방망이 실력 하나만큼은 단연 최고였다.

프로 데뷔 첫해인 1993년부터 2001년까지 9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고, 통산 4차례(1993년, 1996년, 1998년, 2001년)나 수위 타자를 차지했다.

이뿐만 아니다. 양준혁은 통산 최다 홈런과 타점, 득점, 최다 경기 출장 등 타격 전반에 걸쳐 고른 활약을 펼치면서 프로야구 타격 부문 각종 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그가 타석에 오를 때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새롭게 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3년 연속 올스타에 출전했고, 포지션별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도 8차례나 수상했다.

이런 양준혁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데뷔 후 삼성 간판 타자로 자리매김했지만 1998년 12월 삼성이 해태 마무리 임창용을 얻기 위해 양준혁과 곽채진, 황두성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해 할 수 없이 정든 고향 팀을 떠났다.

이어 1999년에는 선수협의회 결성을 주도하면서 해태 구단의 마찰로 2000년 LG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양준혁은 2001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의 자격을 얻었지만 선수협 주축 멤버로 활동하면서 미운털이 박힌 탓에 아무 구단으로부터 손짓을 받지 못해 FA 미아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우여곡절 끝에 친정팀 삼성과 계약, 고향팀 복귀에 성공한 양준혁은 심한 마음고생 탓이었을까. 복귀 첫해인 2002년 0.276의 저조한 타율을 남겼다. 당시 양준혁은 ‘배가 불렀다’ ‘한물 갔다’라는 등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양준혁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2003년 타율 0.329에 33개의 홈런, 92타점, 90득점을 올리면서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녹슬지 않은 방망이 솜씨를 자랑한 양준혁은 프로 통산 개인 최다 안타(2318개)를 비롯해 홈런(351개), 타점(1389개), 득점(1299개), 루타(3879개) 등, 프로야구 타격 신기록을 하나씩 경신했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는 어찌할 수 없었다. 올 시즌 삼성의 '젊은 피'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밀린 양준혁은 타율 0.252, 1홈런 20타점으로 부진했고, 결국 후배들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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