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예산 전쟁’ 방아쇠 장전…513조 규모 예산안 살펴보니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예산 500조 원 시대의 막이 오른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9.3%가량 증가한 513조5000억 원 규모로 가닥을 잡았다. ‘초슈퍼 예산안’을 놓고 여당은 최근 일본 수출 규제 등 경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확장적 재정 운용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야당은 이에 대해 ‘총선용 선심 예산’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내년도 초슈퍼 예산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그 면면을 살펴봤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18회계연도 결산(정부) 등을 안건으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전해철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18회계연도 결산(정부) 등을 안건으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전해철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 與 “확장 재정, 시대적 요구” vs 野 “밑 빠진 독에 세금 붓기”
- 정부 예산, 3년 만에 500조 ‘돌파’…산업·중기·에너지 27.8%↑ 1위

내년도 예산안이 사상 초유로 500조 원을 넘긴 ‘초슈퍼 예산안’이 됐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개최해 513조5000억 원 규모의 ‘2020년 예산안’을 확정하고 지난 3일 국회에 제출한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2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예산안 관련 브리핑 모두발언을 통해 “내년 예산안은 경제 활력 회복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담아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확장적 기조로 편성했다”고 말했다.

내년도 예산은 올해 본예산 469조6000억 원보다 43조9000억 원(9.3%)가량 증가했다. 정부는 올해 예산안 역시 428조8000억 원이었던 2018년 예산보다 40조8000억 원(9.5%)을 더 투입해 책정한 바 있다.

이처럼 정부가 2년 연속 총지출 증가율 9%대를 지속하며 확장적 재정 기조를 띠는 배경에는 미중 무역 갈등 심화와 일본의 수출규제, 홍콩 사태 등 대외적 요인이 작용한다. 홍 부총리는 이에 관해 경제적 어려움을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로 보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확장적 재정 기조를 통해 대외적 불확실성 확대로 침체된 국내 경제를 다시 성장 궤도에 올리고 아울러 일본의 수출 규제를 발판 삼아 R&D(연구개발) 및 산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미래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단 취지로 읽힌다.

홍 부총리는 이날 “대내외 위험 요인과 확대되고 있는 하방 리스크 등을 고려할 때 내년엔 그 어느 때보다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내년 예산안은 한마디로 ‘국민 중심·경제강국’ 구현 예산”이라고 강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일자리·연구개발 분야 주력

보건·복지·노동 분야는 내년도 예산안 513조5000억 원 가운데 181조6000억 원을 끌어가면서 가장 많은 액수를 차지했다. 올해 대비 12.8%가 상승해 역대 최대 증가율을 보였다. 

세부적으로는 ▲국민연금급여지금 3조9841억 원 ▲주택구입·전세자금 1조8000억 원 ▲기초연금지급 1조6813억 원 ▲구직급여 2조3330억 원 등이 올랐다.

이 가운데 일자리가 차지하는 예산이 대폭 상승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서 일자리 분야에 올해 21조2000억 원보다 21.3%(4조6000억) 증액된 25조8000억 원을 투입했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등을 지원하고 노인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를 13개로 늘리겠다는 의도다. 이 밖에도 중소기업 출산 육아기 대체인력 지원금이 60만 원에서 80만 원으로 올라갔고 직장 어린이집도 충원할 방침이다.

정부는 경제 둔화가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만큼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서도 돈을 풀 방침이다. 정부는 수출·투자에 활력을 제고하고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으로 23조9000억 원을 배정했다.

이는 올해 18조8000억 원보다 27.5% 오른 금액으로, 이번 12개 분야 가운데 가장 큰 예산 증가폭을 보였다. 특히 창업·벤처 분야는 5조500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R&D(연구개발) 분야에서도 올해 대비 큰 금액의 예산이 들어간다. 이 분야는 핵심 소재·부품·장비 자립화 및 인공지능(AI) 인재 육성 등을 목표로 올해 20조5000억 원보다 17.3%(3조6000억 원) 확대된 24조100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장기화될 것을 고려해 전략 핵심소재 자립화 기술개발에는 1581억 원을, 소재부품지원센터 15개의 기반구축을 위해서는 990억 원의 예산을 배당했다. 이 밖에도 인공지능융합 선도프로젝트에는 신규 139억 원을 투자했다.

환경 분야는 8조8000억 원에 편성돼 올해 7조4000억 원보다 19.3% 불었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투자를 늘리고 스마트 상수도 관리시스템 구축 등 안전 투자 소요 중심으로 예산을 확충했다.

국가균형발전프로젝트 추진 등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은 22조3000억 원으로 올해 대비 12.9%가 증가했다. 

그 뒤를 이어 문화·체육·관광 분야 예산은 올해 7조2000억에서 내년 8조 원으로 9.9% 상승했다. 5G, 한류 기반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 및 보급에 주력할 방침이다. 

농림·수산·식품 분야는 농어업 스마트화 지원과 공익형 직불제 도입 등을 목표로 올해보다 4.7% 오른 21조 원이 편성됐다. 외교·통일 분야는 올해보다 4.0% 확대된 20조9000억 원으로, 고교무상교육과 대학 혁신 등을 중점으로 한 교육 분야는 2.6% 증가한 72조5000억 원으로 투자를 늘린다.

국방 분야는 장병 봉급 인상, 첨단 무기체계 확충 소요 등으로 올해 대비 7.4% 오른 50조2000억 원으로 짜여 최초로 50조 원을 넘어섰다. 

일반·지방행정 예산 배정액은 76조6000억 원→80조5000억 원으로 3조9000억 원(5.1%) 증가했다. 이 가운데 지방교부세는 52조3000억 원으로 2000억 원(0.3%)이 줄어든다.

수입 줄고 지출 늘어 ‘우려’ 

국회는 법정시한인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심의·의결해야 한다.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은 다음달 22일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초슈퍼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이견을 보여 ‘예산 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다고 평가한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밑 빠진 독에 세금을 쏟아 붓는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정부가 예산안을 발표한 지난달 29일 논평을 발표해 “어려운 경제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확장적·적극적 재정 운영 기조로 확정돼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을 환영한다”며 “‘작은 정부’의 첨병인 IMF(국제통화기금)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조차 (우리나라에게) 확장재정을 권고할 정도로 재정의 확대는 시대적 요구이자, 우리 경제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표명했다.

이와 달리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역대급 빚잔치 예산’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작년에는 세수 수입을 높게 잡아 ‘세금 쥐어짜기 예산’을 편성하더니 올해는 국세 수입이 10년 만에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초슈퍼 예산을 편성함으로써 국가 채무에 노골적으로 의존하는 형태가 됐다”며 “도대체 미래세대에 고스란히 부담을 떠넘기는 국가 빚은 ‘땅 파서 나오는가’ 국민들이 반문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정부 예산안에 대해 ‘속임수 예산’이라고 힐난했다. 전 대변인은 같은 날 발표한 논평을 통해 “눈가림 경제, 통계왜곡 경제를 하겠다는 것이 이번 예산안에 담긴 문재인 정부의 본심”이라면서 “그 혹독했던 IMF시기에도 재정 확장을 위한 예산 증가율은 5.8%였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히 늘려간 예산은 무려 3년간 134조 원으로 3년 평균 8.6%의 증가율이다”라고 꼬집었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 예산은 급등세를 탔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예산안을 짤 당시 5.9% 상당의 증가율을 보였고, 박근혜 정부가 편성한 2014~2017년 증가율은 4.0%로 하락했다. 이와 다르게 문재인 정부는 8%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가 예산의 증액 속도 역시 이례적이다. 정부 예산이 200조대에서 300조대로 증가한 데는 4년(2007년 234조→2011년 309조1000억 원)이, 300조대에서 400조대로 오른 데는 6년(2011년→2017년 400조5000억 원)이 걸렸다. 반면 이번에 책정된 슈퍼예산안으로 3년 만에 500조 원대를 돌파한 것이다.

그러나 커진 씀씀이에 비해 수입은 올해 대비 1.2% 소폭 상승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악화와 재정 분권 등으로 인한 세수 둔화가 영향을 끼쳤다.

기획재정부에 따른 내년 총수입은 482조 원으로, 올해 총수입 476조1000억 원보다 5조9000억 원 오르는 데 그친다. 세수도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국세 수입은 올해 294조8000억 원에서 내년 292조 원으로 2조8000억 원(0.9%) 감소할 전망이다. 2013년 이후 6년 만에 국세 수입이 하락하게 됐다.

부족한 자금은 빚으로 충당되는 형국이다. 국가채무는 올해 740조8000억 원 보다 64조7000억 원 오른 805조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적자 국채 규모는 올해 336조8000억에서 내년 397조 원으로 60조2000억 원이 상승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37.1%에서 내년 39.8%로 늘어나며 40%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은 이러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2020년 정부 예산안이 ‘총선용 퍼주기 예산’이라는 공세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야당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민생’을 앞세우는 전략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 ‘민생 국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에 관해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있었던 논란이 정기국회까지 이어지는 ‘포스트 조국 사태’ 타개책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20대 국회는 패스트트랙 사태 등 굵직한 정치 현안으로 인해 국회가 공전하는 시간이 유독 길었다. 민주당은 여야 간 이견에서 빚어진 정쟁으로 일처리가 더뎌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민생 법안 등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해 조 장관 관련 논란을 환기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2020년 예산안을 놓고 여야 간 각축이 예상되는 가운데 향후 예산안 통과 과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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