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당 의장을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다가오면서 정동영 김근태 후보 진영간에 ‘치킨게임(두 대의 차가 마주 보고 돌진하다가 먼저 피하는 쪽이 지는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당 의장을 선출하는 자리지만 예비대선 후보간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당권파 대 비당권파로 나뉘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하지만 두 사람의 국민지지도는 답보상태이다.따라서 친노 직계세력 및 중도의원들 중심으로 ‘이대로는 안된다’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급기야 여권내에서 ‘제 3후보론’이 조금씩 힘을 얻어가고 있다. ‘제3후보론’의 급부상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다.사실 여권내에서 ‘정동영 김근태로는 안된다’는 말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좀처럼 오르지 않는 두 예비후보의 지지율이 여권을 답답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뿐만이 아니다.특히 두 예비후보는 오는 5·31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할 경우 ‘책임론’ 후폭풍의 가시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이다.

한마디로 정동영 김근태 두 후보는 칼날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는 자연스럽게 히든카드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현재 히든카드 또는 조커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인사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다.일단 천장관은 여권 안팎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또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해 사상초유의 ‘지휘권 발동’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천장관은 이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다.‘지휘권 발동’ 역시 향후 행보를 염두에 둔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말도 들린다.한마디로 당복귀후 진로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실제로 천장관은 지난해 12월 장관을 사퇴하고 당으로 복귀하려 했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천장관과 가까운 여권의 한 인사는 “천장관이 지난 연말 당 복귀를 시도했다가 청와대의 만류로 접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이같은 사실은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조차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진행됐었다고 한다.

최근들어 당 의장 선출을 앞두고 ‘제3후보론’이 불거지면서 천정배 ‘5월 당복귀설’이 흘러나오고 있다.물론 천장관측은 이와관련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펄쩍 뛰고 있다.그러나 여권의 흐름에 정통한 인사들은 “당으로 돌아오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은 이미 진행중”이라고 말하고 있다.다만 다른 진영에서 ‘무혈입성’이라는 비판을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한 명분을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천장관의 향후행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 내부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당의장 경선을 앞두고 정동영-김근태 진영간의 대결이 격해지자 당과 후보의 ‘상처’를 우려한 당내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안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들리고 있다.

친노세력+중도 초선, ‘제3후보’ 거론

이런 분위기는 곳곳에서 읽혀지고 있다.유인태, 문희상, 임채정, 서갑원, 백원우 의원 등 친노 인사가 대거 참여하고 있는 무계파 ‘소통과 화합의 광장(이하, 광장모임)’과 초선의원들로 구성된 ‘공명정대한 정치를 실현하는 의원 모임(이하 정명모임)’은 현재의 구도와는 다른 길을 찾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특히 다수의 광장모임 소속 의원들은 구체적으로 ‘제3후보론’을 거론하며 영남출신의 김혁규 후보를 지지하는 서명에 동참하기도 했다.광장모임의 산파역할을 한 유 의원(전대통령 정무수석)은 “내년에 붙어야 할 두 분이 미리 붙으니깐 당 꼬라지가…”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불만 배경에는 정동영 김근태 두 후보가 당 의장 경선에 나오면서 대선 후보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고 당도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유 의원은 정세균 전의장체제로 지방선거전까지 가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한편 초선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명모임도 광장모임 소속 의원들과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명모임에서도 전당대회전에 상대 후보 헐뜯기 등 구태선거전으로 비화될 경우 행위를 구체적으로 문제를 삼겠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이 모임에는 강기정, 노웅래, 양승조, 오제세, 이목희, 조경태 의원 등이 참석하고 있다.

지방선거 참패시 ‘정-김’ 동반추락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또다른 배경은 ‘정-김 동반추락’에 따른 당내 리더십 부재와도 무관치 않다. 2·18 전당대회를 통해 의장에 선출될 정동영 후보나 김근태 후보가 선거기간 동안 이전투구로 상처를 받고 또 지방선거 패배에 따른 책임론에 자유롭지 못할 미래 상황도 한 몫하고 있다.일단 당 의장으로 선출된 후보는 지방선거를 책임지고 뛸 수밖에 없고 2위한 후보도 선대본부장으로 활동해 책임론에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은 참여정부와 여당의 낮은 지지도 그리고 참여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형식으로 지방선거가 치러질 경우 한나라당의 압승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동영이나 김근태 후보 모두 성에 차지 않는 친노직계 및 무계파 진영에서 제3후보 군불때기 조짐도 일고 있다.이들 진영에선 당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선 ‘둘 다 주저앉히고 새로운 인물로 당 체제를 정비해야 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호남출신의 천정배 장관이 ‘조커’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한편 제3후보 그룹인 김두관, 김혁규, 임종석, 김부겸 등 3위를 노리는 후보군들과도 제3후보론은 이해가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이들 제3그룹중 제3후보론을 강하게 주창하고 있는 김혁규 후보는 “당 지도부를 뽑는 전대가 상처가 남는 네거티브도 안되고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비쳐져서도 희망이 없다”며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전당대회는 아무 필요도 없고 의미 없는 전당대회”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이들 진영에서 주장하는 제3후보론은 1인 2표제에 따른 1등보다는 2위나 3위를 염두에 둔 정-김 견제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김혁규·김두관은 연막전술

천장관은 지난해 건국이래 첫 ‘검찰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대중들에게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각인된 바 있다.특히 의원시절부터 강력한 검찰개혁을 주장해왔던 천장관이 강정구 파동을 겪으면서 검찰개혁의 상징적인 인물로 부각됐다. 또 노 대통령조차 ‘천 장관 중심의 검찰개혁’을 강조하며 변함없는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이런 기세는 ‘정-김 양강구도’에서 천장관을 여권의 ‘제3후보’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또 천장관의 인지도가 매우 낮았지만 지휘권 발동으로 인해 일반 국민들이 ‘천정배’라는 인지도가 높아졌고 ‘소신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잠룡반열에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권 일각에선 천 장관의 당시 발언은 법무부장관으로서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전략적 발언 아니냐는 해석도 낳았다.

한편 천장관측은 작년 12월 당 복귀를 시도했으나 검찰 개혁에 정진해달라는 청와대측의 요구로 연기됐다는 후문도 나왔다.하지만 지방선거 완패이후 불 후폭풍 여파에 따라 정-김이 동반 추락할 경우 누가 당을 추스를 수 있느냐에 재차 천 장관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이는 친노세력과 개혁파를 중심으로 2·18 전대후 조기전대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천장관 등용을 위한 전대 개최에 반대진영의 비판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천장관의 출현을 반대하는 진영에선 법무부장관으로 현안에 비껴서 편안하게 있다가 빈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며 ‘무혈입성’, ‘무임승차’라는 비난이 터져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천장관은 5·31 지방선거 전에 당 복귀를 할 것이라는 관측도 여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온 몸을 던져 선거지원을 하고 이를 통해 사전에 ‘무임승차’비난을 차단하겠다는 복안이라는 것이다.

천장관측 “장관직 수행에 최선”

하지만 천정배 장관측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장관의 한 핵심실세는 당 의장을 염두에 둔 ‘제3후보론’에 천 장관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당 복귀 시점을 밝히지 않았다. 천장관의 한 핵심인사는 “언젠가는 당에 복귀할 것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당 복귀 시점을 잡지 않고 있다”며 “참여 정부 내에서 법무부 장관직을 잘 수행해 당 지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하지만 천장관 측근들은 당 복귀시점이 늦어질수록 명분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지방선거전 복귀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 김근태-고건 ‘러브콜’ 내막김근태 당의장 ‘이어받기’

김근태 정동영 두 후보가 고건에 대한 ‘러브콜’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그중에 김근태 후보가 정 후보에 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김 후보는 범민주 세력의 대연합을 내세우며 ‘고 전총리가 지방선거를 잘 치르면 기여한 성과에 따라 국민과 당이 기억할 것’이라며 지방선거 전 입당을 요구했다. 정중동의 모습을 보이던 고 전총리는 김고문의 ‘민주세력 대통합’ 제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곧 고 전총리와 같은 전북 출신인 정동영 후보보다는 수도권 출신 김 후보를 ‘보완재’로 삼고 있다는 해석도 낳았다.하지만 여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고건-GT 연대는 전당대회 결과에 따른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그는 “김 후보는 정 후보가 당 의장이 돼서 지방선거와 보궐에서 참패할 경우 2위로 당 의장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점과 고 전총리는 호남에서 잠재적 경쟁후보인 정 후보를 견제하고 여권 대권 판도를 흔들어 정계 개편 속에 자신도 지분을 챙길 수 있다는 이해도 읽혀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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