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의 수도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이 도시에 긴 시간을 투자하는 여행자는 별로 없다. 유럽 여행이 늘 그러하듯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타박타박 걷는 산책이 류블랴나에서는 최고다.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보행자 전용도로에 ‘그린 시티’라는 명성에 걸맞은 싱그러움이 매력. 한 바퀴 걷고 나면 아담한 도시가 주는 만족감에 미소가 번진다. 

 류블랴나의 심장 프레셰렌 광장

어떤 여행자든 첫 발걸음은 프레셰렌 광장에서 딛는다. 류블랴나 다운타운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행의 핵심이 되는 구시가지가 여기서 뻗어 나가기 때문이다. 이 광장을 포함해 강 건너의 구시가지 전체가 보행자 전용도로인 덕에 한 눈을 팔면서 마음 편히 도보 여행을 즐기기 제격이다. 더불어 프레셰렌 광장은 류블랴나 시민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와 같은 곳이다. 약속은 보통 광장 한쪽에 우뚝 서 있는 동상 앞에서 잡는다. 동상의 주인은 슬로베니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여겨지는 프란체 프레셰렌. 19세기 낭만파 시인으로 <사비차의 세계>와 <시집> 등의 작품으로 슬로베니아의 근대문학을 확립해 ‘국민 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프레셰렌 광장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너른 광장 가운데 서서 한 바퀴 빙 둘러보면 눈에 띄는 건물이 여럿이다. 기하학적인 무늬와 컬러풀한 세라믹 타일로 꾸며진 하우프트만 하우스는 1895년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류블랴나의 오래된 빌딩 중 하나이고, 동쪽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약국 건물 센트랄나 레카르나는 19세기 지식인들이 즐겨 찾던 카페였다. 얼반 하우스는 류블랴나에서 최고로 아름답다고 손꼽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 도시에 처음으로 들어섰던 백화점이 아직도 같은 건물에서 운영 중이다. 시인 프레셰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이지만, 모두를 유혹하는 건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수태고지 교회다. 17세기의 핑크빛 건축물. 화려한 색감과 계단 위 한층 높은 위치 덕에 도시 어디에서도 찾기 쉬운 교회다. 이탈리아 조각가 프란체스코 로바가 디자인한 메인 제단이 하이라이트다.

< tip > 율리아 동상 

프레셰렌 광장에 서 있는 시인의 동상, 그의 시선을 쫓으면 광장에서 갈라지는 월포바 울리차 거리에 있는 한 건물 벽면에 한 여인의 테라코타 흉상이 있다. 프레셰렌이 평생 사랑했다고 알려진 율리아 프리미츠와 눈빛으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한편, 프란체 프레셰렌 동상의 머리 위에 월계수를 들고 있는 여인은 그의 시에 영감을 준 뮤즈다.

국민 건축가의 작품트리플 브릿지

류블랴나의 심장인 프레셰렌 광장에서 곧장 이어지는 트리플 브릿지. 류블랴니차 강 위, 다른 각도로 벌어진 3개의 석교가 붙어서 하나를 이루는 이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구시가지 산책이 시작된다. 1842년 단 하나에 불과했던 다리를 1981년에 슬로베니아의 위대한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가 보행자를 위한 2개의 다리를 양쪽에 증축하면서 지금의 평범하지 않은 트리플 브릿지를 탄생시켰다.  

info 요제 플레츠니크

류블랴나는 도시 여기저기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트리플 브릿지를 포함해 국립대학교 도서관, 센트럴마켓 건물, 코블러스 브릿지, 크린자케 야외극장, 베지그라스 스타디움 등을 디자인했으며, 심지어 강둑의 구조 설계에도 관여했다. 1895년의 대지진 이후 재건한 건축물이 많은 탓에 그의 작품을 따라 산책하면 그게 곧 도시 산책이 될 정도다. 1872년 류블랴나에서 태어난 그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예술을 공부했으며, 1911년부터 체코 프라하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프라하성 레노베이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슬로베니아의 건강한 식탁 센트럴 마켓 

시장 구경만큼 재미난 일이 있을까. 여행 중에 방문하는 재래시장은 그 나라의 식문화부터 평범한 일상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최고의 방법이다. 특히, 슬로베니아는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나라로 온갖 음식 재료에 ‘로컬, 제철, 유기농’이라는 단어가 당연하게 붙는다. 구시가지에 터를 잡은 센트럴 마켓의 가판대 위에는 류블랴나 근교의 농장에서 공수해온 신선한 빛깔의 과일이며 채소들이 넘쳐난다. 마치 갓 밭에서 뽑은 듯 흙이 흥건하게 묻어있는, 게다가 우리에겐 다소 낯선 유럽의 식재료를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보드니코브 광장에 펼쳐지는 야외 노점 이외에도 요제 플레츠니크가 디자인한 아케이드 형태의 건물 내부에 상점에서 빵, 치즈, 고기, 생선, 꿀, 오일 등 다양한 식료품을 살 수 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들어서는 시장에서 시민들의 흥정하는 소리를 듣고, 싱싱한 물건들이 장바구니에 담기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의 건강한 식탁이 고스란히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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