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관심을 모으며 86일간 진행됐던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그러나 대부분의 의혹사건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4일 기자와 만난 김진흥 특검은 “결과는 없으면 못나오는 거지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특검팀은 70여명의 인력이 총동원돼 밤을 지새워가며 하나라도 더 밝혀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김 특검은 또 “큰 결과물을 낳지는 않았지만, 권력주변에 기생해서 뭔가를 얻으려는 풍조에 일대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김 특검은 구체적으로 “검찰의 저인망 수사로 이미 걸러질 것은 걸러진 상황에서 최도술씨의 불법자금수수와 노 캠프의 경선자금, 썬앤문 그룹의 세금탈세 혐의를 밝혀낸 것은 나름의 성과다”라고 밝혔다.

- 특검수사종결 이후 휴식은 어떻게 취했나.▲특별히 휴가를 가지는 않았다. 하루빨리 예전의 생활패턴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보고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했다. 휴가는 큰 아이가 어버이 날 선물로 제주도 여행권을 줘 19일부터 22일까지 다녀올 생각이다.

- 86일간의 측근비리수사를 마친 소감은.▲특검에 의해서든 검찰에 의해서든 대통령의 측근비리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초유의 일이었다. 측근비리 특검팀이 발족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권력주변에 기생해서 뭔가를 얻으려는 풍조에 일대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보람있었던 일이었다.

- 초기 노 대통령에 대한 조사여부가 관심거리였다. 결론적으로 조사를 하지 않았는데. ▲임명당시 “지금은 얘기할 때가 아니다. 필요하면 하는 것이지 지금부터 한다 안한다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기록을 보고 판단할 일이지 지금은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자꾸 언론에서 앞 뒤 말을 빼고 “김진흥 특검이 대통령을 조사한다”고 보도된 것이다.

-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인지.▲대통령에 대한 의혹이 있었던 부분은 썬앤문 조세감면청탁부분이다. 사실은 시기적인 문제와 수사범위에 속하느냐와 관련, (특검내부에서)다툼이 좀 있었다. 하지만 뱀에 물리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가겠다는 의지로 수사했다. 그런데 손영래 전국세청장은 ‘청탁이 없다’고 했다. 반면 홍모씨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또 문병욱 회장은 ‘안희정씨에게 부탁했다’고 했고 안희정씨는 ‘감세의 감자도 들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결과 대통령에게 물어봐야 될 고리가 하나도 없었다. 일반 필부도 연관된다는 얘기가 안나왔는데 불러서 조사할 수는 없다.

- 방금 언급됐지만, 일부에선 경험부족과 적극적인 수사력 부재를 문제삼기도 했다.▲수사활동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그런 말을 하기 힘들다. 자신있게 말하지만 특검팀은 모두 뛰어난 인물들이다. 임명된 특검보는 말할 것도 없고 법무부 파견검사들인 문무일, 이혁, 김광준 검사도 검찰내에서 배짱있게 수사 잘하기로 소문난 검사들이다. 유능한 70여명의 인력이 총동원돼 수사했다. 만약 동원되지 않았다면 수사력 부족이고 의지부족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수사인력이 밤새워서 일했다는 것은 지켜본 기자들이 더 잘 안다. 그렇게 고생한 사람들에게 한마디라도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은 못할 망정, 추상적 관념적으로 특검이 ‘군 법무관출신이니까 실력이 없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면 그것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다. 수사팀에 대한 모독이자 정말 불쾌한 얘기다.

- 의혹이 컸던데 비해 나온 게 별로 없어서 그런 비판이 제기된 것 같은데. ▲나도 욕심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수사관 모두에게 공명심이 있다. 사실 적극적인 수사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복권에도 꽝이 있지 않은가. 무언가 있을 것 같아서 추적해 나가보면 ‘꽝’이고, 이에 다른 것을 추적해 마지막까지 가보면 또 ‘꽝’이었다. 실제 썬앤문 사건의 경우 노 캠프로 95억원이 들어간 게 아닌가하는 의혹이 있었다. 물론 녹취록에 보면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95억원이라는 내용은 나오는데 말의 앞뒤가 안 맞았다. 문병욱 회장도 아니라고 했고, 수사결과 누가 보더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사실이 아닌데도 의혹이 큰 상태여서 거기서 끝낼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 대부분의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특검에서 밝혀낸 것은 무엇인가.▲1월말 양승천 특검보가 기자들에게 “이번 수사는 검찰이라는 ‘저인망 어선’이 훑고 지나간 뒤 대양에 흩어진 남은 물고기를 찾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했다. 그 표현이 맞다. 검찰의 저인망 수사로 큰 것은 이미 걸려들건 다 걸려들었고, 나머지 남은 피라미들을 주워담았다. 최도술씨가 대선후 부산지역 기업체 등으로부터 4억9,000만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것, 썬앤문 그룹이 계열 건설사를 동원해 8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포탈한 단서를 포착하고 국세청에 통보한 것, 부산과 광주 지역 기업들이 경선당시 노 후보측에 1억3,000만원을 제공한 사실을 밝혀낸 것을 들 수 있다.

- 수사기간에 수사팀에 강조했던 것은 무엇인가.▲임무완수와 기밀유지다. 수사기간 동안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임무를 복창하게 하기도 했다. 또 수사 시작 전 특검보부터 방호원까지 70여명의 수사팀 모두로부터 ‘맡은바 책임을 다하겠다’는 선서를 받고 임명장을 주었다. 소속감과 자긍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 그런데 수사팀간 갈등도 빚어졌다.▲수사기법으로 인한 다툼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사실 성과를 올리기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적증거를 다 찾아서 증인을 신문하는 경우가 있고, 그게 힘드니까 먼저 불러서 신문할 수 있다.

- 김도훈 전검사가 제기했던 수사외압의혹도 근거가 없다고 했다. ▲김 전검사 스스로가 인정했다. 자기가 확인해보지 않고 오해해서 나온 결과다. ‘본인 스스로 오해의 소지로 이뤄진 일이다’라고 직접 자필로 쓰기도 했다. 또 객관적인 사실도 의혹에 대한 근거가 없었다. 이원호가 청주지검으로부터 비호를 받았다면 그곳에서 자신의 수사상황을 가르쳐 줄 것 아닌가. 그런데 이원호는 자기에 대한 수사상황을 서울고검의 검사를 통해서 알아보았다. 근거가 있으면서 외압이라고 주장했다면 우리도 인정했을 것이다. 김 전검사의 오해로 인해서 많은 수사인력이 동원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분도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 홍준표 의원이 수사기간 중에 제기한 최도술씨 300억원 모금설은 해프닝이었는가.▲홍 의원은 300억원 모금설의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를 못하겠다고 그랬다. 우리가 보기에는 의혹이 있으니까 해 보라는 정도였던 것 같다. 특검의 수사를 그 만큼 믿은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사실 처음에는 막막했다. 최도술씨의 95억원 모금설은 그나마 따질 수 있는 녹취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300억원 얘기는 그것도 아니었다.

- 측근비리 수사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많은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좋은 총을 가지고도 사냥을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그러나 사슴도 없고 토끼도 없으니 온 산을 뒤지다 그렇게 된 것이다. 사실이 있으면 잡는데,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 최근에 탄핵문제로 시끄러웠다. 헌재 판결의 의미를 평가하자면.▲모든 사안이 아니고 중대한 사안일 경우 탄핵될 수 있다고 규정해 헌법의 미비한 점을 해석으로 보충했다는 점에서 (이번 탄핵파문의)의미가 있다. 만약 이번 탄핵이 형식논리와 법문만 가지고 한다면 탄핵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고 그런 경우는 없다. 만약에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탄핵이 된다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특검수사 도중에 국회에서 탄핵발의가 됐다. 당시 장면을 보았는가. ▲서로 대치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아주 중대한 국가사안을 그런 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 측근비리에 대한 부분도 소추위측이 탄핵사유에 포함시켰는데. ▲탄핵발의가 될 때는 선거법 위반이라는 점만 부각됐다. 그런데 국회측 소추위원인 법사위원장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때 보니까, 측근비리가 추가됐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 대검이나 특검에서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측근비리를 소추안에 포함시킨 점에 대해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대해 말하자면.▲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란 말이 있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이 맑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상탁의 근본 원인은 내가 볼 때 정치자금이다. 그 동안 정치자금이라는 포장하에 온갖 부정비리가 누적돼 왔다. 개정된 공직선거법과 측근비리 특검, 탄핵사건을 계기로 우리사회의 부정비리가 없어지고 국민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바른 나라를 만드는데 노력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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