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산물도매시장의 사람들...“25년째 도돌이표,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일요서울ㅣ창원 이도균 기자] 많은 사람들이 아직 단잠에 빠져있던 24일 새벽 4시. 평소 차량들로 가득한 창원대로 마저 한산한 시각에 대로 가까이 자리한 팔용농산물도매시장은 여느 곳보다 이른 하루가 시작됐다.

경매가 진행 중인 팔용농산물도매시장 과일경매장 풍경  © 창원시 제공
경매가 진행 중인 팔용농산물도매시장 과일경매장 풍경 © 창원시 제공

창원청과시장, 농협창원공판장 등 2개 도매법인이 자리한 팔용농산물도매시장엔 전날 오후부터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농산물이 이날 경매를 위해 줄서 있었다. 수북이 쌓인 농산물 상태를 살피는 중도매인들의 눈치작전도 펼쳐졌다.

새벽 5시. 경매사 특유의 웅얼거림이 시작되자 중도매인들의 눈과 귀, 손이 빨라졌다. 중도매인과 소매상 등 수 십 명이 한데 엉켰다. 언뜻 혼돈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름의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다 적절한 금액이 결정됐는지 이내 판이 끝나고 잠시 흩어졌다가 새로운 경매로 이어졌다. 경매 중간중간 경매가가 신통치 않을 땐 “농민 채비는 챙겨줘야 할 것 아닙니까”라며 경매사는 연신 중도매인들을 독려했다.

경매를 기다리던 상주에서 온 포도, 해외에서 온 바나나, 복숭아, 자두 등이 줄줄이 중도매인 손으로 넘겨져 박스에 중도매인 번호가 적힌 스티커가 붙었다. 그렇게 이른 새벽 농산물도매시장의 열기는 절로 숙연하게 만들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4번째 경매사가 마이크를 잡았고, 배와 사과를 끝으로 이날 과일경매가 끝났다. 채소동에 자리 잡은 채소경매 역시 비슷한 시각에 마무리가 됐다. 하늘도 이를 알아챘는지 경매가 끝날 무렵 날이 환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대게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하는 일출을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매일 아침 만난다.

준비된 경매가 끝나고서 만난 한 관계자는 “농산물을 애지중지 키운 농가에게 제값을 받아드려야 하고, 또 여기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그날그날의 지역 물가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피곤하지만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경매는 끝났지만 중도매인들의 하루는 이제부터였다. 경매가 진행되는 사이에도 당일 경매 물품을 구하기 위해 새벽바람을 뚫고 달려온 소매상과 일반인의 차량이 행렬을 이뤘다. 많은 이들이 한데 엉켰다가 농산물을 실은 소매상 차량이 도매시장을 속속 빠져나가고 나서야 중도매인들도 한숨을 돌렸다. 1995년 10월 14일 개장한 이곳 사람들의 일상은 개장 때부터 지금까지 일요일과 명절을 제외하고선 24시간 도돌이표다.

그렇게 세월이 모여 팔용농산물도매시장의 나이가 25년이 됐다. 그동안 많은 이들의 땀이 더해진 덕분에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 중에서도 시장 규모에 비해 적지 않은 거래가 오가는 곳이 됐다. 현재 이곳을 부여안고 살아가는 이만해도 도매법인 임직원과 중도매인, 경매사, 하역인부 등 130명이나 된다.

팔용농산물도매시장 개장과 함께 25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25번 중도매인 이규태 씨는 “추석을 막 지나다 보니까 오늘은 경매물량이 적어서 빨리 끝났는데 대개 7시가 넘어야 된다”며 “피곤하기는 하지만 중도매인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보람이 있다”고 했다.

창원청과시장 중도매인조합장이기도 한 그는 “전에는 경매를 수신호로 해서 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중도매인이 버튼을 누르면 경매사가 모니터를 보고 낙찰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서 보는 재미는 덜하다”면서도 “하지만 이곳의 열기와 보람은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세월에 장사 없듯 도매시장 곳곳은 낡아지고 상대적으로 좁아졌다. 이에 창원시는 노후시설 개선사업과 중도매인 휴게실 조성과 같은 도매시장 종사자 사기진작 시책을 통해 팔용농산물도매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농산물도매시장의 숨소리와도 같은 경매사의 웅얼거림이 계속되는 한 이곳 사람들의 새벽은 그 누구보다 희망이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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