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6일 제주국제공항 1층에서 장기 미제사건인 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박모(49)씨가 경찰에 압송돼 대합실을 빠져 나오고 있다. 박 씨는 이날 오전 8시 20분경 경북 영주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뉴시스]
지난해 5월 16일 제주국제공항 1층에서 장기 미제사건인 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박모(49)씨가 경찰에 압송돼 대합실을 빠져 나오고 있다. 박 씨는 이날 오전 8시 20분경 경북 영주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10년 전 20대 여성 보육교사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제주판 살인의 추억' 사건의 항소심 재판이 25일 준비 절차를 시작으로 2라운드에 본격 돌입한다.

최근 '화성연쇄살인 사건'과 '인천 병방동 60대 여성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가 특정되는 등 연이은 미제 사건 해결 분위기 속에 시작되는 법정공방이어서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사건은 10년 전인 2009년 2월 첫날 발생했다. 새벽시간에 집에 간다며 남자친구와 헤어진 보육교사 A(당시 27세·여)씨가 갑자기 자취를 감춘 것이다.

곧 실종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의 대대적인 수색 속에 A씨는 실종 7일 만인 같은 달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농로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시신은 명백히 타살을 암시하고 있었다.

경찰특별수사본부는 A씨의 실종 당일 행적을 뒤쫓아 용의자를 압축해 나갔다. 경찰은 곧 당시 택시기사였던 박모(49)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박 씨가 몰던 택시가 피해자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에 제주시 용담동 인근 도로를 지났다는 단서와 함께였다.

경찰은 박 씨가 머물던 모텔방을 압수수색 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섰지만, 얼마 후 그를 풀어줘야 했다. 피해자가 숨진 시각이 경찰 발견 시점에서 최대 1~2일 이내라는 부검 소견이 나오면서 박 씨가 제시한 알리바이를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력 용의자가 풀려나면서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는 듯 했다. 수사본부마저 지난 2012년 해체되며 사건 해결을 위한 동력도 상실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제주 경찰은 장기미제사건 수사팀을 꾸려 사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사건 초기 경찰은 부검 당시 위 속에서 나온 음식물과 혈중알코올 농도를 근거로 피해자가 실종 당일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친구들과 술자리 이후에 남자친구를 만난 뒤 곧바로 실종된 A씨의 행적이 결정적 이유였다.

경찰은 동물사체실험을 떠올렸다.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에서 같은 기후 조건으로 동물사체를 놓고 부패 정도를 측정한 것이다.

국내 법의학계 권위자인 이정빈 가천대 석좌교수의 지휘 아래 엄격한 조건 통제 속에 진행된 동물사체실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죽은 지 7일이나 되는 동물사체의 직장 온도가 대기 온도보다 높고, 발견 당시 피해자의 사체처럼 내부 장기에서 부패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등 기존 법의학적 지식을 뒤집는 결과가 도출됐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사망 시각이 재특정되면서 경찰은 다시 박 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정황 증거도 더욱 보강했다. 당사자 간 접촉을 의미하는 섬유 증거도 추가로 제시했다.

한 차례 실패도 있었지만, 결국 보강된 증거를 바탕으로 법원으로부터 박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 받기에 이르렀다.

치열한 공방 속에 진행된 1심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또 피해자가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섬유증거인 '실오라기'에 대해선 증거능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의 압수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봤다.

재판 내내 눈물을 흘리며 재판장의 판단을 기다리던 박 씨는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울음을 터뜨렸다.

그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채증법칙 위배로 인해 사실관계를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학수사 관련 내용을 보강하고 치밀하게 준비해 대처하겠다"며 항소심을 앞두고 짤막한 각오를 밝혔다.

항소심 첫 공판은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 이재권 수석부장판사의 심리로 이날 201호 법정에서 오전 10시 20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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