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트럼프-우크라이나 대통령 ‘통화 녹취록’ 공개

심각한 표정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뉴시스]
심각한 표정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미국 백악관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A4 5장 분량의 녹취록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둘러싼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검찰총장과 미국 법무장관이 함께 협조하길 바란다고 발언한 내용이 담겼다.

미 하원이 이번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조사를 개시한 가운데 이번 녹취록이 공개됨에 따라 민주당의 조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녹취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바이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검찰이 시도한 아들의) 기소를 막았다는 것이다”라고 말을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은 사실을 알고 싶어한다”면서 “당신이 (윌리엄 바) 미 법무장관과 무엇이든 함께한다면 이는 훌륭한 일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바이든은 자신이 검찰을 막았다고 자랑하며 다닌다. 이를 당신이 조사할 수 있다면…”이라며 “이는 정말 끔찍하게 들린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 헌터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의 정경유착 재벌인 미콜라 즐로체프스키의 에너지 회사 ‘부리스마 홀딩스’에 이사로 고용됐다.

지난 2016년 3월 부통령 자리에 있던 바이든은 부리스마 비리를 수사하려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의 해임을 요구하며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미국의 10억 달러 보증을 철회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내 (검찰총장) 후보가 이번 상황을 잘 살펴볼 것”이라며 “특히 당신이 언급한 회사의 그 사건에 대해 명확하게 조사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사와 관련해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와 협력하라고 8번이나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중 “우리는 우크라이나에게 매우 잘했다”며 인근 유럽 국가보다 우크라이나에 더 큰 도움을 줬음을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100% 이상, 1000% 동의한다”면서 미국의 강력한 러시아 제재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젤렌스키는 이어 “우크라이나는 곧 방어 목적으로 미국의 자벨린 대전차 미사일을 더 구매할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호의를 베풀어 줬으면 한다(would like you to do us a favor)”면서 “왜냐면 우리는 많은 일을 겪었고 우크라이나는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 해커들의 공격을 받았던 미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서버가 우크라이나에 있다며 “검찰총장에 당신, 혹은 당신의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진상을 규명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대화 후반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안을 조사하겠다”는 확답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뉴욕 방문 당시 트럼프 타워에서 머물렀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백악관에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전화해도 좋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들이 이번 녹취록에서 “분명한 압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보도한 가운데 백악관은 “근거가 없는 비난이다”라며 반박했다.

또 두 정상의 통화에서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보상으로 주는 것)는 없었다”며 “정치적 경쟁자를 굴복시키기 위해 대가를 제공했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는 민주당이 공식적인 탄핵 조사를 착수하는 것을 정당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녹취록의 부족한 완결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녹취록은 중간중간 ‘…’로 표기돼 대화의 맥락을 이해할 수 없다.

백악관은 녹취록과 관련해 “이 녹취록은 두 정상이 말한 그대로를 기록한 것은 아니”라며 “각종 서류와 상황실 당직자, 국가안정보장회의(NSC) 정책 담당자의 메모와 회상을 서면 형식으로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들리지 않았던 부분, 발음이 부정확한 내용을 중략했음을 강조했다.

이날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는 그날 통화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평범했다”면서 “누구도 날 압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콘티넨털 바클레이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누구도 협박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민주당 인사들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협박했다는 주장을 내놨다.

한편 통화 녹취록이 공개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내부고발자가 작성한 고발문건이 미국 의회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을 확인한 의원들은 그 내용이 충격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 소속의 에릭 스월웰(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문건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문건이 탄핵 추진을 강화시키고 있으며, 의회의 새로운 조사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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