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준 교수

현 정부는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대전환”이라는 명분하에 탈원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정책은 신규 원전 건설계획 전면 백지화와 가동중 원전의 계속운전(미국에서는 면허갱신이라 하며 설계수명 연장이라고도 함) 금지로 집약된다. 이미 건설중이던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을 일시 중단시키고 공론화를 거쳐 건설을 재개했고, 신한울 3,4호기는 건설을 중단시켰으며, 이미 계획된 천지 원전 1,2호기 건설은 백지화했다.

2023년에 운영허가가 종료되는 고리2호기의 계속 운전을 위해서는 늦어도 금년에는 준비사업을 착수해야 하는데 감히 말도 못 꺼내는 형국이다. 이대로 가면 향후 10년간 고리 2,3,4호기를 포함한 원전 10기가 영구정지될 형국이다.

참고로 미국은 세일가스를 개발하여 세계 최고의 산유국이 되었지만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원전 98기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87기가 이미 면허갱신 허가를 받아 60년간 운전하기로 했고, 그중 6기는 80년 운전을 위한 2차 면허갱신을 신청하여 규제기관이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아주 대비가 된다.

그런데, 국민안전을 위해 추진한다는 탈원전이 오히려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첫째, 일감이 없는 원전 설계 및 부품 제조업체가 몰락함에 따라 부품 공급망이 와해되어 점진적으로 원자력 발전설비의 보수·유지가 어렵게 될 것이다.

둘째, 원전을 운영하는 한수원의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한수원은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을 선언하면서 기업의 핵심 가치가 바뀌고 있다.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되면 영구 정지해야 하는 원전에 설비 개선을 위한 대규모 투자 동기가 당연히 약해진다. 운전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머지않아 문 닫을 원자로에 대한 애착과 전문성 함양 동기가 약해지며 머릿속은 새 업무를 찾아갈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는 전 직원의 사기 저하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안전제일”은 뒤로 밀려나고 안전문화가 유지·발전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셋째, 우수한 인력 유지·공급이 어려워진다. 원전 공기업의 자발적 퇴직자가 급증하고 원자력 전공 학부 및 대학원생의 숫자는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이 또한 안전문화의 근본을 크게 저해하는 요소이다.

세 가지 요소 모두가 잠재적으로 원전 안전을 크게 위협한다. 원전을 시의적절하게 보수하고 설비를 개선해야 하며, 종사자들이 전문성과 애착을 가지고 시설을 운영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력한 규제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현 정부에서 규제 전문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안전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한수원은 기업의 정체성을 바꾸면서 “안전제일”은 사실상 후순위가 된 듯하다. 지난 5월에 발생한 한빛1호기 제어봉 오조작 사건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국민안전을 위해서 한수원은 탈원전 정책하에서도 곁눈질하지 말고 핵심 역량을 ‘안전제일’에 투입해야 한다.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단계적으로 문 닫을 원전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헌신을 유도하기는 어렵다. 마음이 점차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도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현재의 탈원전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특히, 계속운전 허용은 경제성뿐만 아니라 가동 중 원전의 안전성도 강화시킨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원전정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아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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