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조국 블랙홀은 점점 커지고 있다. 대통령 긍정 평가와 민주당 지지율을 갉아먹던 조국 블랙홀은 국정현안을 빨아들이고 있다. 조국 블랙홀은 정부여당의 기대와 달리 방미 성과와 남북관계 대화 무드도 갈아 뭉갰다. 국회 대정부질문을 거치면서 조국 블랙홀은 대한민국을 통째로 먹어치울 기세로 거대해졌다.

조국 블랙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데는 여론조사 맹신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7월 민정수석 사퇴부터 법무부장관 임명은 무리라는 비판이 많았다. 과거 전례도 없었고 적임자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권의 견제로 사법개혁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8월 중순 법무부장관 내정 전후로 조국 찬반은 팽팽했다. 청와대로서는 밀어붙여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봤음직하다.

법무부장관 내정 후 2주일쯤 지난 8월 25일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KBS와 한국리서치는 부적합 48%, 적합 18%라는 결과를 내놨다. 같은 날 중앙일보에선 반대 60.2%, 찬성 27.2%로 나왔다. 각종 의혹이 쏟아지면서 반대여론이 확산한 것이다. 이틀 후인 27일 검찰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특수부를 동원해 조국 자택을 제외한 20여 곳을 샅샅이 뒤졌다.

검찰의 조국 수사 이유는 아직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인사 청문회를 앞둔 장관 후보자 수사는 처음 있는 일이다. 문 대통령의 임명 의지도 매우 강했다.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이나 면죄부 수사라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됐다. 이보다는 이틀 전 여론조사 결과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임명 반대 여론이 크게 늘어나자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조국은 기자 간담회를 통해 의혹 해소를 시도했다. 민주당 출입 기자를 상대로 기자회견은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조국 정국 책임론에 한국당 지도부는 졸속으로 청문회에 합의했다. 야당의 전략 부재, 준비 부족에 청문회는 한 방 없이 끝났다. 청문회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임명 반대와 찬성은 오차 범위 이내로 좁혀졌다. 호전된 여론조사는 조국 임명 강행의 근거로 활용됐다.

추석 밥상에 올라간 조국 법무장관 임명은 민심을 자극했다.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살림살이에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던 차였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것이다.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추가의혹과 거짓말이 속속 드러났다. 추석 이후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잘못됐다는 쪽은 50%를 훌쩍 넘었고 잘했다는 쪽은 30% 중후반에 그쳤다.

여론조사는 조사 당시의 민심을 순간적으로 포착할 뿐이다. 민심은 급변하지 않는다. 큰 강물처럼 흔들리지 않고 잔잔하게 흐를 뿐이다. 덮는다고 바뀌지도 않는다. 조국은 애초부터 무리였고, 까면 깔수록 부적절하다는 것이 일관된 여론이었다. 여론조사 맹신의 결과는 참혹하다.

국정은 마비됐다. 국민은 둘로 쪼개졌다. 장관 인사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다. 문 정부는 촛불민주주의로 탄생했다. 촛불은 대한민국의 리셋을 요구했다. 임기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기득권만 바뀌었을 뿐이다. 조국 블랙홀은 지금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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