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어렵고 ‘중복 피해 대책’도 없다

사이버 범죄. [그래픽=뉴시스]
사이버 범죄. [그래픽=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스포츠스타연예인 등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던 이름 도용초상권 침해가 일반 시민들의 생활 속으로도 침투하고 있다. 단순한 인터넷 사기를 넘어 사이버스토킹’, ‘협박’, ‘금전 요구등의 범죄로 번지는 양상이다.

협박, 금전 요구, 스토킹 범죄로 번지기도···4년째 국회서 잠자는 방지법

지인을 사칭해 송금을 요구하는 메신저 피싱이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범죄의 유형은 지인 이름과 사진을 도용하고 휴대전화 고장 등을 이유로 통화를 회피하면서 100만 원 이하 소액을 송금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히 최근에는 문화상품권 핀번호를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한다.

최근 경찰청이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사이버위협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에 발생한 사이버범죄는 모두 85953건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7224건에 비해 약 22.4% 늘어난 수치다. 가장 많았던 범죄가 인터넷 사기다. 65238건이 발생해 전체의 75.9% 비중을 차지했다.

문제는 타인을 사칭하는 범죄가 인터넷 사기를 넘어 사이버스토킹, 협박, 금전요구 등의 범죄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직접 대응

도움 주는 곳 없어

30대 여성 A씨는 데이트 폭력으로 멀어진 남성 B씨에게 금년 초부터 오프라인 스토킹을 당했다. A씨가 계속 연락을 피하자, B씨는 SNSA씨의 계정과 거의 흡사한 사칭 계정을 만들었다. A씨의 계정명에서 숫자 하나만 바꿔 만든 것이다.

A씨의 SNS에서는 이미 B씨의 기존 계정이 친구 삭제됐고 게시물도 비공개상태였다. B씨는 구글에서 돌아다니는 A씨의 SNS 사진을 찾아 캡처해 사칭 계정의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이후 B씨는 A씨의 주변인들에게 A씨를 사칭하며 친구요청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A씨의 주변인들에게 음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지인에게 이러한 소식을 접한 A씨는 깜짝 놀라 일일이 대응에 나섰다. ‘주변인들에게 통화’, ‘온라인 메시지 전송’, ‘직접 만남을 통해 자신이 아니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렇게 A씨는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공개하게 된 셈이다.

A씨는 경찰서에 방문해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A씨에게 해외 SNS라 수사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SNS 본사에 공문을 보내고 처리 하는 과정이 몇 달이 걸리기 때문에 피해자 본인이 직접 연락해서 처리하는 것이 빠르다는 것이다. B씨가 사칭을 했더라도 범죄에 이용했다는 증거가 없어 수사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결국 A씨는 직접 수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A씨는 SNS 본사에 영문 메일을 힘들게 작성해 전송했다. SNS 본사에서는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 등과 얼굴 사진을 찍어 다시 보내라고 했다. 여러 단계를 거치고 나서 B씨의 사칭 계정이 차단됐다는 안내를 받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동안 밤잠을 설친 A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B씨가 또다시 A씨를 사칭한 두 번째 계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복 피해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A씨는 B씨에게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자 B씨는 A씨의 지인 친구에게까지 접근했다. 또 지인 친구 사칭 계정까지 만들어 사이버스토킹을 이어갔다. 심지어 지인 친구들은 자신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 사실 조차 몰랐다.

가해자 B씨는 이 밖에도 A씨에게 오프라인 스토킹, 협박, 금전요구 등을 이어갔다. 사이버스토킹을 통해 A씨의 상황을 인지하고, 이를 협박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A씨는 일요서울에 “SNS 본사에서는 중복 피해에 대한 조치도 마련돼 있지 않았고, 경찰은 유명한 공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도용에 대해 처벌이 힘들다고만 말했다. 명예훼손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도 도움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면서 이미 만천하에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상태인데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무 것도 없더라. 온라인에 검색해 보니 똑같은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SNS를 진즉에 비공개처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들이 구글에서 계정명만 검색하면 다 뜨더라. 악용되는 것에 대해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SNS를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B씨는 경찰에 덜미를 잡혔지만 다른 범죄 혐의 등이 적용됐을 뿐 사이버범죄 혐의는 추가되지 않았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일요서울에 생활 자체가 전부 온라인으로 다 가니까 범죄도 온라인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세상에서의 보호나 감시 시스템도 함께 구축이 돼야 하는데 무법천지라며 오프라인에서 하던 불법 행위가 온라인 사기, (몰카) 동영상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범죄가 진화한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만 치안 활동을 하지 온라인에서 그런 게 어디 있느냐. (온라인) 치안은 굉장히 올드하게 (대응)하고 범죄는 신기술을 이용해 일어나고 (사이버범죄에 대한) 진도를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법 요건 적용돼도

인과관계 성립 힘들어

가해자들은 사이버스토킹, 협박, 금전요구, 사기 등 범죄를 단순 사칭으로 둔갑해 법망을 교묘히 피해 나가고 있다. 또 피해 관계를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현행법상 온라인에서 타인의 사진을 게시하는 등의 단순 타인 사칭만으로는 배상이나 처벌이 어렵다. 초상권은 형법으로 보호하는 규정이나 법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예훼손모욕사기 혐의는 적용시킬 수 있는데 위법 요건이 적용되더라도 피해 사실간 인과관계를 성립하기 힘든 실정이다.

지난 2016년에는 온라인 사칭만으로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정통망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SNS상에서의 타인 사칭 방지법은 타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성명이용자 식별부호사진영상 또는 신분 등을 자신의 것으로 사칭하는 내용의 정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를 동의 없이 사칭해 유통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법안은 4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법의 미비부재로 사칭 피해는 증가 추세다.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위협을 느끼고 있지만 가해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 셈이다. 개정안으로 희망을 꿈꿨던 피해자마저 절망감에 빠져 있는 상태다.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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