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을 주축으로 한 청와대 비서실 2기 체제가 출범한지 한달여가 지났다. ‘민경찬 펀드 사건’ 부실 조사 의혹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시선, 그리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의 숱한 풍파 속에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문재인 전수석의 전격적인 사표 제출, 핵심 비서관들의 연쇄 사퇴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빠르게 정상을 되찾고 있다고 한다. 터줏대감들과 새 얼굴들 간에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조율작업도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문 전수석의 후임으로 발탁돼 공직기강, 사정, 대통령 친인척 관리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박정규 민정수석은 어떤 사람일까.지난달 12일 임명된 박 수석은 검찰 출신으로 법조계 안팎에서 두터운 신망을 쌓아 온 인물이다.

다른 사시동기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활달한 화합형 성품에 `두주불사`의 술 실력으로 자연스럽게 동기들의 좌장 노릇을 하면서 후배검사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다고 전해진다.박수석은 부산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82년 광주지검 검사로 검찰에 투신한 뒤 서울과 부산, 속초 등에서 평검사 생활을 했고 청주지검 영동지청장, 대검 공보담당관, 법무부 관찰과장과 조사과장 등을 역임한 뒤 2000년 변호사 개업을 했고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활동했다.사실 박수석은 노무현 대통령 측근 그룹에서는 언젠가는 중용될 인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노대통령과 동향인 경남 김해 출신인데다 70년대 초반 서로의 고향인 경남 김해 ‘장유암’이란 암자에서 노대통령, 정상문 대통령총무비서관과 함께 고시공부를 한 인연이 있는 등 노대통령과는 허물없는 사이이기 때문.

그는 노대통령보다 두 살 아래지만 노대통령과 친구처럼 지내왔다고 한다. 부산상고를 나와 직장을 다니다 고시에 뛰어든 노 대통령과 당시 고려대 법대를 다니던 박 수석 그리고 중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를 거쳐 사법시험에 도전한 정 비서관 등이 자주 어울렸다는 얘기다. 이들 중 가장 먼저 합격한 사람은 노 대통령. 사시 17회다. 이후 박 수석이 22회에 합격했다.박수석은 연수원 수료 후 부산에서 같이 일하자는 노 대통령의 권유를 거절하고 검사를 지망한 대신 사법연수원 동기생이자 학생운동 전력으로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문 전 수석을 소개해 두 사람이 함께 법무법인 ‘부산’에서 일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인연은 이처럼 돌고 돈 셈이다.박수석은 그동안 청와대에 자주 들어가 노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노 대통령의 20년 지기인 문재인 전수석을 노 대통령에게 소개한 주인공이 바로 박 수석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전수석을 알기 전에 박 수석을 먼저 알았다는 얘기다.박 수석은 이 같은 인연으로 권양숙 여사, 노건평씨 등 ‘친인척’ 사정까지 진작부터 잘 알고 있어 적임자로 평가됐다고 한다.또한 박수석은 그의 지론인 ‘청소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징적인 의미의 청소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집안 청소’다. 박수석은 검사 시절인 지난 1996년부터 새벽같이 일어나 집안 청소를 했다. 제주도 친구 별장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시작했다고 한다. 박수석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거의 매일 집안 청소로 일과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거실과 부엌,화장실,자녀들 방 순으로 청소기로 쓸고 걸레질을 했다.

노하우도 생겼다는 게 박수석 주장이다. 소파 뒤는 1개월에 한 번, 싱크대는 1주일에 한 번씩 묵은 때를 벗겨주면 된다. 청소 얘기를 묶은 수필집 ‘청소하다가…’는 증판을 거듭해 3쇄까지 찍었다.박수석은 수필집 등을 통해 8년째 계속해온 청소에서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청소하지 않은 곳은 반드시 더러워진다’ 등의 교훈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박수석의 청소론이 청와대 및 정부의 사정 업무를 총괄하며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는 민정수석 업무와 어떻게 조화될지도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이 때문인지 박수석의 발탁에 대해 노대통령 주변에서는 대체로 “노대통령 주변 사정에도 밝은데다 노대통령에게 허물없이 직언할 스타일이어서 민정수석으로서의 역할을 잘 할 것”이라는 반응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노대통령 주변과 잘 아는 것이 오히려 민정수석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한다.더욱이 법조계에서는 대통령 측근 비리 연루자들의 변호를 맡아온 박수석의 발탁에 대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측근 비리 감시 역할을 해야 할 민정수석과 측근 비리 변호인은 이해 상충 문제가 생기기 때문. 그동안 법무법인 김&장 변호사로 일해온 박수석은 손길승 SK그룹 회장에게서 1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도술 전대통령총무비서관 비리 사건에서 손회장측 변호인으로 선임돼 변론을 맡아왔다. 어쨌든 박수석이 몸담고 있던 법무법인 김&장에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유난히 대형 사건이 몰려들었다. 특히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시작된 이후 웬만한 그룹은 김&장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박수석은 노대통령과 사시 동기인 이종왕 변호사와 같은 김&장 소속으로 있으면서 찰떡 궁합을 과시했다. 박수석은 1980년 노대통령보다 5년 늦게 32세에 늦깎이로 사법시험 22회에 합격했다. 문 전수석과 사시 동기로, 박수석은 문 전수석과도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검찰에 투신한 박수석은 평검사 시절에는 지방을 전전하는 등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은 탓인지 동료 검사들과도 자주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95년 김기수 당시 검찰총장의 발탁으로 대검 공보관으로 임명되면서부터. 그는 이후 특유의 친화력으로 기자들 사이에 이름을 날렸다. 기자들 사이에서 그는 친근한 ‘부산 형님’으로 통했다.

그가 술자리에서 머리에 이고 건네주는 폭탄주는 아직까지도 검찰 기자실에서 전설로 통한다고 한다.사실 박수석은 2000년 초 서울지검 동부지청(현 서울동부지검) 형사3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변신했다. 변호사로서 그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민정수석 임명 소식이 전해진 후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간부가 “그가 그렇게 술 마시자고 했을 때 같이 술이라도 마셔줄 걸…”이라고 기자들에게 농담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한편 청와대는 지난달 27일 양인석 전사정비서관 후임에 신현수 대검 마약과장을 임명한 것을 끝으로 새 진용 구축을 완료했다.

사정비서관실 내에서 공직자 및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 첩보를 수집하고 직접 수사도 벌이는 감찰반장에도 이성윤 전 서울 동부지청 검사가 신규 임용됐다. 이석태 전공직기강 비서관 후임에는 오정희 감사원 특별수사국장이 발탁됐다. 오 비서관은 6공화국 정부의 청와대에서 5년간 공직기강 업무를 담당했던 베테랑이고, 신 비서관은 지난해 여름 검찰에 사표를 내자 검찰 수뇌부가 일제히 나서 번복을 요청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던 엘리트이다.2기 민정수석실이 이처럼 정치색이 옅은 감찰·수사 전문가들로 채워짐에 따라 그 역할도 ‘실무적’인 쪽으로 옮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어찌됐건 박 수석이 어떤 정무수석으로 기억될지는 그의 향후 행보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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