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 인터뷰

이옥선 할머니 [사진=황기현 기자]
이옥선 할머니 [사진=황기현 기자]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저지른 가장 끔찍하고 비인륜적인 만행 중 하나다. 1930년대부터 1945년 패망하기까지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군위안소’를 설치해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유괴·납치해 성노예로 만든 전쟁 범죄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는 명백한 범죄이자, 일본 정부가 영원히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역사적 만행인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부정한 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데만 애쓰고 있다. 평생 아픔을 지니고 살던 피해자들은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을 시작으로 일본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일본의 범죄 행위를 고발한 할머니들은 현재 여성 인권·평화 운동가로 거듭나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였던 이옥선 할머니와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을 만나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이 할머니, 안 소장과의 일문일답.
 
“‘막말’ 들으면 기분 안 좋아요”
“손자가 둘 있는데 출근하느라 바빠서 못 온다”

- 여기서 지내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그 전에는 어디 계셨나요?

▲ (이옥선 할머니) 한 20년 돼요. 그 전에는 중국에 있었어요. 고향은 부산. 부산에서 태어나서 어디 가본 데가 없어요. 부산에서 15년을 살았어요. 7살 때 학교를 가고 싶다고 부모를 졸랐어요. 그런데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우니까 학교를 못 갔어요. 못 가서 방 안에서 15살까지 울기만 했어. 울다가 울산 남의 집에 식모로 갔어요. (식모로 일하던 중) 주인 심부름을 나갔어요. 나갔는데 건장한 남자 둘이 앞에서 길을 막는 거예요. 형사인지 순사인지 군인인지 모르겠는데 한 사람이 팔 하나씩을 쥐고 무조건 끌고 갔어요. 그렇게 끌려갔어요. 중국 연변 연길시라는 곳을 갔어요.

-광복 이후에도 중국에 계셨다고 들었어요.

▲ (이옥선 할머니) 광복 될 적에 우리는 해방된 걸 몰랐어요. 해방된 걸 모르고 관리자가 일본 사람인데, 밤에 우리가 잘 때 도망 간거야. 모르고 계속 있었는데 군인 한 명이 와서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어딜 가겠는가”하니까 “너네 해방 받았다. 어서 가지 않고”라고 그랬어요. 근데 ‘어디로 가야 되는가’. 나가보니까 불이 붙어서 시내가 불바다야. 아무 친척도 없지, 한국에서 중국으로 끌려간 건 나 하나밖에 없었어요. 갈 데가 없지. 피난가면 산으로 가야한다고 해서 산으로 갔어요. 그런데 군인들이 우리를 산에 버리고 자기들끼리 도망갔어요. 배는 고프지 그래서 시내로 나왔어요. 시내도 불바다가 돼서 다 도망가고, 밥 빌어먹을 데도 없고. 그렇게 고생했어요. 그렇게 밥 빌어먹으러 다니다가 남자를 한 명 만나 가지고 살림(결혼)을 했지. 그래서 (중국에) 오래 있었어요.

- 한국에 어떻게 오신 거예요?

▲ (이옥선 할머니) 한국에서 돌아오라고 했어요. 안 간다고 했어요. 가고 싶었어요. 고향에 부모형제 다 있고 여기는 저 혼자였는데. 그런데 여기(할머니는 이마를 가리켰다)다 ‘위안부’ 간판 붙이고 어떻게 부모형제 얼굴을 보러 가겠는가. 안 간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영감(남편)이 돌아갔어요. 죽었다고 한국에 기별이 가니까 다시 오라고 했어요. 2000년 6월 1일에 이 집(나눔의 집)에 도착했어요. 가족이라고는 뭐 없어요. 남편이랑 살다가 아들이 하나 있는데 길러서 장가 보내가지고 손자 둘 봤어요. 그래서 손자가 둘이 있어요. 다 중국에 있어요. 보러 오진 못해요. 회사 출근하니까. 일이 바쁘다보니 보러 오진 못해요.

- 일본이 빨리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는데 답답하시겠어요. 막말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 (이옥선 할머니) 언제 사과를 하겠어요. 우리는 일본에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데 하질 않잖아요. 그 원인이 무엇이냐면,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할 적에 사죄를 하지 말라 그랬어요. 우리는 일본한테 당했기 때문에 일본이 나쁘다고 해요. 근데 (일본) 사람이 나쁜 게 아니에요. 정부가 나쁘지. 일본 사람들이 개인이나 단체로 사죄하러 와요.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고맙지. 고맙지만 그거 쓸데없는 일이잖아요. (일본 정부가) 사죄를 안 하니까. 어떻게 하면 사죄를 받겠어요. 이젠 기자들도 보기 싫어요. 몇 십 만 명 만났는데, 지금까지 효과가 하나도 없잖아. 이제는 우리도 크게 희망이 없어요. 제가 지금 93살 먹었어요.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오래오래 얼마나 살면 일본 놈이 사죄하는 거 보겠어요. (국내에서 막말하는 사람들) 듣고 안 듣고 그렇게 하면 나쁜 일이니까. 우리가 들으면 (기분이) 안 좋지.

안신곤 나눔의 집 소장 [사진=황기현 기자]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 [사진=황기현 기자]

 

- 나눔의 집을 운영하시면서 어려우신 점이 있나요?

▲ (안신권 소장) 지금도 어려운 점이 좀 있다. 연예인들도 많이 도와주고 방탄소년단 팬들, 아미들이 많이 도와준다. 이렇게 좋은 점도 있지만, 오시면서 보셨다시피 동네 도로가 좁다. 도로 확장을 위해서 지난해 4월에 국비 19억 원을 확보했다. 근데 도로 확장을 동네 분들이 반대해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이 역사의식을 가진 분들인데, 편의를 위해서 확장이 돼야 하는데 아쉽다. 초창기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셔틀 버스도 운행했었는데 한계가 있더라. 광화문에서 이쪽으로 오는 노선을 좀 잡아주면 좋을 텐데 힘들더라. 정부가 정책이나 지원에 있어서 좀 소극적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들이 민간 차원에서 활동을 하는데, 일본은 외무성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계속 홍보를 한다. 우리나라는 그게 부족한 거 같다. 대통령이 한 마디 하고 끝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니 할머니들만 힘든 거다.

- 교수들의 망언이 잇따르고 있는데요.

▲ (안신권 소장) 특별법을 만들어서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피해자가 생존해있는데 그분들을 가짜라고 모욕하고 폄하하고, ‘매춘부’라고 하는 것에 대해 처벌해야하지 않냐. 독일은 나치를 옹호하는 사람을 처벌한다. (망언 인사들에 대해) 일반법으로 소송하다보니 너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특별법을 만들어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모욕하지 않게 예방해야하지 않겠느냐. 분노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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