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2기 외교정책을 이끌 ‘반기문호’가 출항했다. 반기문 신임 외교통상부 장관은 정통 외교 관료 출신으로 누구보다 외교부 조직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일부 외교부 관리들의 ‘불미스러운’ 발언으로 비롯된 ‘외교부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도 주목되고 있다.특히 반 신임장관은 주미대사관 참사관, 미주국장, 주미 공사를 두루 거친 외교부내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외교부사태’ 이후 대미외교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되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16일 ‘외교부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한 윤영관 외교통상부장관 후임에 반기문 대통령 외교보좌관을 임명했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반 신임장관 임명 배경으로 ‘외교부의 다양한 경험’, ‘참여정부의 개혁비전 공유’, ‘국제무대에서 외교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보유’ 등을 꼽았다.정 수석은 “인간관계가 원만해 지금 긴장하고 있는 외교부 직원들에게 좋은 장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수석은 또 “반 신임장관은 아주 오랜 경륜을 가진 외교관”이라며 “참여정부 들어서 대통령 외교보좌관으로서 10개월 동안 대통령의 외교방침과 입장,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실제 반 장관은 34년간 외교관 생활을 해 온데다, 외교 업무에 관한 한 베테랑으로 꼽히는 만큼 낙관적으로 보는 이들이 다수다. 반 장관이 외교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70년으로 외무고시(3회)에 합격하면서부터. 외교관의 길에 접어든 뒤 정무분야에서 주로 활동해온 전형적인 직업외교관이다.

외교부 미주국장(90년) 외교정책실장(95년), 제1차관보·대통령의전수석(96년), 본부대사·오스트리아대사(98년), 차관(2000년), 주 유엔대표부 대사 겸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2001년), 대통령 외교보좌관(2003년) 등 외교부와 청와대 요직을 거쳤다.반 신임장관은 지난 94년 북한 핵 위기 때 주미 정무공사로 한미간 대북정책 조율의 실무 총책을 맡았고 그해 10월 북미 제네바 핵 합의를 이끄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또 김영삼 정부에서 의전수석, 외교안보수석을 지냈고 현정부에서는 외교부차관을 역임했고, 2001년 9월 한승수 외교장관이 유엔총회 의장을 맡으면서 총회의장 비서실장에 임명돼 성공적인 의장국 역할수행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반 장관은 참여정부 들어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마다 깔끔한 브리핑으로 기자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또 화려한 경력을 지향하는 정통직업외교관 출신으로 소탈한 성격에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일처리가 꼼꼼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반 장관의 갑작스런 임명은 ‘외교부사태’ 이후 대미외교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되고 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자주 외교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거기서 더 나아가 미국을 모르는 인사를 장관에 앉혔다가는 뒷감당이 어렵겠다는 점을 직감했다고 볼 수 있다. 반 신임장관이 임명일성으로 한미간 우호동맹관계의 유지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반 장관은 지난 16일 “시대적 소명을 갖고 일할 것”이라며 “국내적으로는 외교부에 대해서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시대적 요구를 잘 인식해서 외교부의 개혁과 변화, 발전을 이루어나가서 우리의 외교적인 역량을 높이고 또 대외적으로는 우리가 지금 안고 있는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인 협력을 위해서 한·미·일을 비롯한 우방들과 긴밀히 협조하고 또 6자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서 조속한 시일 내에 북한 핵 문제를 우리가 평화적으로 해결함으로써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는 이러한 일에 최대의 노력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 장관은 “앞으로 우리 외교를 어떻게 잘 이끌어서 우리의 국익을 최대한 신장해 나가고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국가이익과 목표를 잘 달성해 나갈 수 있을지 여러 가지로 걱정되는 바가 많다”고 덧붙였다.당면한 외교부 개혁요구와 국제 외교환경 변화를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반 장관은 또 논란이 된 ‘자주외교’에 대해 “참여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여러가지 균형적인 실용외교라고 이해하면 좋겠다”고 밝히고 자주외교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 우려도 “한·미 양국은 그동안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해 긴밀히 협조해 왔고 앞으로도 그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외교부 관리들의 ‘불미스러운’ 발언으로 비롯된 ‘외교부사태’를 수습할 책임을 지고 취임, 그의 행보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실제 외교부 직원들은 “그나마 외교부를 잘 알고 있는 분이 임명됐다”며 반 장관의 취임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이와 관련, 반 장관은 “최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에 관련된 직원에 대해서는 불가피하게 인사조치를 해야 되리라고 생각한다”며 “같은 외교부의 동료로서 좀 가슴 아픈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외교부의 발전과 변화를 위해서는 그러한 인사조치가 불가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취임 후 곧 문제발언을 한 외교부 간부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할 것임을 시사한 것.하지만 반 장관에게 당장 요구되고 있는 과제는 외교부 개혁과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우리 외교정책의 정체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일이다. 반 장관이 얼마만큼의 개혁성과를 이끌어낼지는 아직 미지수다.반면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이 사표수리 방식으로 ‘사실상’ 경질되자 긴장이 고조됐던 한·미 관계는 반 신임 장관 임명으로 일단 수습되는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윤 전장관 사표 수리 하루만인 16일 오후 7시께 반 장관이 신속히 임명되자마자, 콜린파월 미국무장관이 이례적으로 곧바로 전화를 걸어 취임 축하 인사를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파월 장관은 미국 정부내 대표적 ‘비둘기파’.그의 이 같은 축하전화는 외교장관 경질 및 주한미군 한강이남 완전이전 등을 계기로 미국 내 매파의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북핵협상 등 당면 현안 해결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발빠른 대응으로 해석되고 있다.파월 장관은 이날 자정 넘어 반 장관 자택으로 전화를 걸어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잘 알고 있으며 미국 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장관이 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한·미관계 강화를 위해 노력하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 신임 장관은 이에 대해 “나는 한·미관계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테니 안심하고 믿어 달라”며 “공식 취임하는 대로 양국이 협의해 빠른 시일내 보도록 하자. 우리는 핵문제 해결과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깊이 협의를 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앞서 토머스 허버드 주한미대사도 반 장관 임명 사실이 보도된 직후 전화를 걸어 반 장관 취임을 축하하고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노력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반 심임장관은 1960년 충북 음성에서 출생, 충주고를 거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부인 유순택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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