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 식이지만 지루한 싸움이 벌써 달포를 넘기고 있다. 그 사이에 주변 강국들의 외교, 국방 및 경제 전쟁과 글로벌 경쟁력은 온데간데없고, 진보니 보수니, 수호니 사퇴니 또는 서초동이다 광화문이다, 2백만이다 3백만이다 하는 갈갈이 찢긴 민심의 민낯들만 혈흔으로 남아 있다. 소위 ‘조국대전’ 말이다.

혹자가 말하듯이 총성만 없지 준(準) 내전상태나 다름없다는 싸움의 최종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또 전리품은 무엇일까? 필자가 단언컨대 지금과 같은 프레임의 싸움이라면 최종 승자는 조국 장관이다.

물론 국민적, 국가적으로 아픈 결론이다. 한 진영에서는 슬픈 이야기고, 이성적,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된다는 분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니 말이다.

뭇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온 가족의 치부가 다 드러나고 과거가 다 부정되는 그놈의 장관 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버티느냐”고. 과연 승부의 포인트는 어디에 있을까? 조적조! “조국의 적은 조국”이란 시쳇말을 넘어 그 가족들은 사투 끝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그 사이에 전우보다 더 끈끈할 혈육들도 사선을 수도 없이 넘고 넘었다.

행여 고졸로 전락할지도 모를 딸도 허위 인턴 해명의 사선을 힘겹게 넘고 있고, 자기 PC의 하드도 교체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어머니와 크게 다투었다고 보도된 아들도 말 그대로 ‘영문도 모른 채’ 사선에 내몰려 있다. 이미 조 장관의 동생과 5촌 조카는 구속되거나 영장 청구로 탈진하여 쓰러질 지경이다.

게다가 부인은 있는 힘을 다하여 페이스북에 시의적절(?)하게 해명글을 쓰며 결사항전 의지를 다져보지만, 이미 석양 노을은 붉게 물들기 시작하여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걸려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조국 장관이 승자라니.

쉬운 정리를 위해 광화문 광장이라는 오프라인과 ‘단톡방’이라는 온라인 속으로 들어가 보자. 광화문광장 중앙에는 기독교 단체를 위시하여 집회를 주최한 본부에서 대형집회를 주도하고 있고, 자유한국당과 시민사회단체들, 그리고 우리공화당이 시청, 서울역 등에서 제각각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합동집회 중간에 난데없는 외침이 확성기를 자극한다. “자유한국당 집회 연설 그만 정리해 주세요, 안 그러면 시간상 우리는 우리대로 집회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 귀가 의심스러웠다. 주최 측이 단합되었더라면 휴대전화나 무전기로 주고 받아도 충분한 이야기인데 말이다.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 이상으로 우파끼리의 논쟁이 더 치열하다. 탄핵 주도세력을 용서하고 단합된 힘으로 싸워야 된다는 의견부터 최소한의 사과는 받아야 한다는 의견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누구 몇몇 사람들은 절대 용서가 안된다는 의견까지 보태진다. 그렇다. 분열! 작금 우파의 온전한 민낯이다.

상대 세력은 “촛불문화제”라는 성격으로 재미와 흥미요소로 진지함을 승화시키면서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200만이 집결했다’는 숫자 프레임 선공으로 싸움의 기술을 걸었다. 그런데 한쪽 세력은 ‘그게 2백만이라면 우리는 2천만이 모였다’라는 함성으로 숫자싸움 프레임의 올가미에 덜커덕 걸려들었다. 과연 숫자싸움이 승부의 본질인가?

백년전쟁에서 오랜 전쟁과 적군의 횡포로 지쳐 있던 프랑스 병사와 백성들 앞에 천사의 계시를 듣고 왔다는 어린 소녀 한 명의 눈물이 국민들 마음속에 쌓여 있던 애국심에 불을 질렀고 결국 승리했다는 이야기. 누구나 아는 ‘잔다르크’의 감동 스토리다. 그렇다. 정작 중요한 것은 2백만이든 2천만이든 숫자와 규모가 아니라 감동의 포인트 한방이다.

‘조적조’를 넘어서 상대가 스스로 ‘수오지심’을 깨닫게 할 감동의 포인트 한방. 그 한방의 해답은 ‘우파의 종가집’이라 하는 자유한국당과 광장 주도세력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말 분해서 광장에 나왔다”는 시민들의 절규 앞에 분열과 낡은 숫자싸움에 안주한다면, 그 최종 승자 ‘조국’과 승전 전리품은 바로 ‘조국’ 그 스스로임을 똑똑히 목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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