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와중이던 1951년 이승만(李承晩)을 당수로 창당된 자유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강행과 협동사회 건설을 내세우는 등 대중정당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1954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자 초기 핵심세력이었던 족청계(族靑系) 인사들이 제거되고 이기붕(李起鵬)을 중심으로 한 체제로 바뀌면서 이승만 개인을 위한 관료적 사당(私黨)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념이 퇴색되고 사적인 권력집단으로 변모한 자유당은 마침내 공권력과 정치깡패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1960년 3·15부정선거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런 자유당의 행태를 사람들은 ‘독재’라 불렀다. 관점에 따라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자유당이 강압적으로 권력을 집중시킨 것은 사실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제2공화국이 수립된 지 1년도 안 돼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비록 쿠데타로 정권을 거머쥐었으나 박정희는 민주적 절차인 대통령 직선제에 의해 제3공화국을 출범시킨데 이어 경제개발에 전력투구해 경이적인 성과를 이루면서 집권의 명분을 축적했다. 

이에 고무된 집권세력은 이후 3선 개헌과 ‘10월 유신’을 감행하는 등 박정희를 종신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전력을 다했다. 이로 인해 민주적 절차는 무시되고 권위주의, 상명하복 등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경직되는 등 군사정권의 부정적인 면들이 부각되면서 집권 명분마저 퇴색됐다.  
이랬던 군사정권을 사람들은 ‘군부독재’로 규정해 박정희를 ‘군사독재자’로 칭했다. 역시 관점에 따라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수 있지만,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려 했다는 점에서만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치 행위는 분명한 ‘독재’였다. 

유신공화국에 이어 신군부에 의해 출범한 제5공화국은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에 의해 군권과 국가 통치권이 장악됐다. 신군부 세력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야당 정치인들과 국민들, 학생들을 억압했다. 또 하나의 ‘군부독재’였다. 

집권의 명분도 없었던 신군부정권은 결국 1987년 거국적인 6월 항쟁에 백기를 들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32년에 걸친 군사정권이 종식되자 1993년 민간인 출신의 정치인인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하며 ‘문민정부’를 표방했다. 국민들은 열광했다.
이랬던 김영삼 정부가 집권 후반기 들어 ‘문민독재’라는 치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주도자가 민간인 출신이라는 점만 다를 뿐 권력을 독점했다는 점에서 군사독재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군부독재와는 달리 김영삼 이후의 문민정부 대통령들도 서서히 일어난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하나같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지난 7월 정기국회 때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신독재’라고 불러 논란이 됐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 국가가 민주주의에서 신독재로 후퇴하는 단계를 설명하면서 민주주의 퇴보 과정을 ▲1단계 위기 상황에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집권 ▲2단계 적(敵) 규정 ▲3단계 언론과 사법기관 장악 ▲4단계 장기집권을 위한 규칙변경으로 규정했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장기집권을 위해서 국회의원 선거법을 바꾸는 마지막 단계에 있고 그래서 신독재라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여권에서는 나 대표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문재인 정부를 두둔하고 나섰다. 위기 상황에서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독재자라는 말은 아무런 근거도 설득력도 없는 주장일 뿐이고, 적을 만들어 공격함으로써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나 그런 현상을 독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섰다. 오히려 아시아 국가 중에서 언론 자유 지수 1위인 우리나라가 독재냐며 반문하는 터였다. 또 패스트트랙은 양당 중심체제로 돼있는 구도를 개선하기 위해 바꾸는 법인데, 이를 독재라 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고 논리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놓고 억압하는 것만 독재가 아니라 상대가 알아차리지 않게 은밀히 억압하는 것도 독재라는 반박이었다.  

그런데 이런 논란과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였건 ‘독재’라는 말을 들은 정권의 말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가 비참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국민은 국민노릇이 힘들어지면 독재를 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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