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에 ‘쥐똥’까지…충격 폭로

[사진=A씨, 보배드림]
[사진=A씨, 보배드림]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정부미(政府米)라는 쌀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쌀 중 정부의 관리 하에 유통되는 쌀이 정부미다. 쌀은 다른 곡식과 다르게 식량안보(인구의 증가나 재해, 재난, 전쟁 등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일정한 양의 식량을 항상 확보해 유지하는 것)와 직결되기 때문에 정부가 가격 조정에 적극적이다. 정부미의 경우에는 매도신청 한도수량의 범위 내에서 자주유통수량을 뺀 양이 정부가 매입하는 수량이 된다. 이어 생산자에서 집하업자, 단체를 경유해 정부가 쌀을 사들인다. 정부는 이 쌀을 보관하고 있다가 도매업자나 소매업자를 경유해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또 기초 생활 수급자와 영세 빈곤자, 식량 난 호소자, 독거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나라미’라는 이름으로 지급되기도 하며 국공립 학교나 교육기관 급식, 공공기관·공기업 급식, 경찰서 급식, 소방서 급식, 군부대 급식, 교도소 급식 등에 활용된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곳에 쓰이는 정부미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은 물론, 개인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는 폭로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동영상 올린 뒤 직장에서 해고 통보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 “위생 상태·쌀 품질 매번 검사한다”

지난달 경기도 포천시의 한 정미소에서 일하던 A씨는 근무 중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정부 쌀을 도정·관리하는 해당 업체가 쌀을 비위생적으로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A씨는 “저소득층 분들에게 지급되는 쌀을 도정하는 과정에서 너무 비위생적으로 관리되던 쌀을 가공해 나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해당 정미소는 곰팡이나 쥐똥이 잔뜩 끼어 있던 자루에 쌀을 도정해 포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정말 관리가 너무 소홀해 화가 난다”면서 “이 쌀을 아무 이상 없다고 지급되는 상황도 화가 나고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해당 쌀을 검수 나온 검사원 역시 아무 이상이 없다며 그냥 가버렸다고 A씨는 주장했다. 그는 “자기 가족이 먹는 거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정미소는 늘 이런 식으로 정부 쌀을 소홀히 관리하고 보관하는 곳이다”라고 지적했다.
A씨는 또 해당 정미소에 비리가 많다는 주장도 내놨다. 정부 쌀의 재고를 파악한 뒤 남은 쌀을 빼돌려 다른 곳에 팔아치워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A씨에 따르면 이러한 ‘뒷거래’는 30년 넘게 계속돼 왔다고 한다. 그는 “시에서 나온 공무원들도 재고 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돌아가고, 20~30년 넘게 일한 직원들도 알면서 잘릴까봐 제대로 말도 못 한다”라며 “아직도 이런식으로 일하고 뒷거래 하는 곳이 있다는 게 어이없고 화가 난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안전한 쌀을 공급 받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이 같은 상황을 호소했다. 또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글과 함께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 등을 게재하기도 했다.

쥐똥 가뜩한 쌀자루

A씨가 공개한 사진 속에서는 실제로 쥐똥이 널브러져 있는 쌀자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곰팡이가 피어 있는 쌀자루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공공비축 벼’라고 적힌 쌀자루의 모습에서 해당 쌀이 정부미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A씨가 함께 공개한 동영상에서는 이 ‘공공비축 벼’ 자루가 아닌 흰 자루에 쌀을 담는 모습과, 담긴 쌀을 트럭에 옮겨 담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쌀이 정말 정부미인지, 사적으로 판매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A씨 주장에 따르면 의혹이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쥐똥’든 쌀 받고 가만히 있을 사람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을 받는 사람이 그 안에 쥐똥이 있고 그러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라면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에서 나가 위생 상태라든지 쌀의 품질을 매번 검사한다”고 전했다. 이어 “(위생에 문제가 있는 쌀이) 공급이 되면 당연히 우리에게 민원이 들어온다”면서 “그럼 그 때마다 농관원 직원이 가서 다시 검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또 “그 분(A씨) 말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 정부 양곡은 공급이 될 수 없다”라면서 “(포천 공장의 경우) 일부 이물이 포장재와 같이 있었는데, 사용할 때는 문제없이 사용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쌀을 빼돌린다는 주장에 대한 해명도 내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벼에는 평균적인 도정 수율이 있다”면서 “공공비축미를 1년에 35만t 정도 사는데 그 벼의 도정 수율이 다 똑같다고 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매년 샘플 식으로 각 지역별로 3t씩 받아 30t가량을 시범 도정한다”라면서 “이후 올해 벼의 도정 수율 평균을 내 정한다”고 설명했다. 도정 수율이 정해지면 각 정미소에 이를 일괄 적용한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예를 들어 도정 수율이 70%로 적용됐는데 벼가 좋아 71%가 도정되면 1%는 정미소의 소유가 된다”라며 “반대로 도정 수율이 69%라면 정미소가 1%를 채워서 70%를 맞춰야 하는 방식이다”라고 밝혔다. 도정 수율을 채운 뒤 남는 쌀에 대한 판매는 가능하다는 뜻이다.

끊이지 않는 정부미 논란

문제는 정부미가 과거부터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는 점이다. 지난 2013년에는 경기도 안산에서 2009년도에 생산된 정부미를 12년 햅쌀에 2:8 비율로 혼합하는 방법으로 12년도 100% 햅쌀로 속여 시가 30억 원 상당(1,477t)을 판매한 정미소 업주가 양곡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또 정부미와 저가 수입쌀 등을 혼합해 약 10억 원 상당(523t)을 국내산 양곡으로 판매한 양곡판매업자 19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품질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쌀벌레나 곰팡이가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며, 오래 묵은 쌀이 많아 군내와 잡내가 심하다는 불만이 계속됐다. 오죽하면 일부 기초수급생활 대상자들도 정부미는 먹고 싶지 않다는 호소를 쏟아내기도 했다. 나라에서 유사시에 대비해 식량을 비축하거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지급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복지 정책이다. 다만 이 정부미 역시 국민의 세금으로 비축되는 만큼 일각에서는 정부미를 관리하는 공무원들이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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