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교 밑은 항상 붐빈다. 점심 기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먹을거리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자리를 찾기 어려울 때도 많다. 한 여름 더위를 피하려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있으면 마음 자락에 시원한 그늘이 진다. 서강대교 밑에 앉아 있으면 동여의도의 은행원, 증권사 직원들과 서여의도의 국회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의 구분이 없다. 21대 국정감사 막바지로 달려가는 날의 나른한 점심시간에도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욕을 피할 수 있다.

서강대교 밑을 흐르는 한강은 잔잔하다. 한강변을 배회하며 쓰레기를 줍는 청소부의 주름마냥 잘디잔 물결이 끝없이 강둑을 기어오르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물결은 둑을 타고 북쪽에서 흘러 남으로, 산에서 들로 바다로, 순리대로 길을 열며 흐른다. 잔주름처럼 퍼져가며 종종걸음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나라 돌아가는 꼴도 순리대로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강대교 밑에 해질 무렵을 피해 앉아 있으면 귓속을 이명처럼 파고들다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바람을 들을 수 있다. 눈을 돌리면 서강대교 옆 한강 변에서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국회에서는 오늘도 세상 모든 사람을 난청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조국, 조국, 조국, 이제 조국이라면 유리창 긁히는 소리를 듣듯 경기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서강대교 밑에는 계단도 있다. 벤치나 평상이 부족해 사람들에게 의자 구실을 하는 곳이다. 계단에 위, 아래는 있지만 그 위치에 따라 신분이 나뉘지도 않고 높은 계단에 앉는다고 특권을 가지지도 않는다. 높은 계단에서 더 많은 풍경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늘은 평등하고 바람은 공정하다. 한가로운 시간이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강대교 밑은 정의롭기까지 하다.

서강대교 밑에서 보면 서강대교가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가 교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강대교는 폭이 29m에 길이가 1.7Km인 왕복 6차선 도로인데 몇 만 톤은 너끈히 되어 보인다. 서강대교 교각은 이런 엄청난 무게를 떠받치고 있는데, 그 늠름한 자태가 국회의사당 기둥 모두를 합친 것보다 믿음직하다.

서강대교 밑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아침, 점심이 다르고 저녁 나절이 또 다르다. 아침 무렵에 여의도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지나가면 직장인들이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자리를 메운다. 직장인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떠난 자리에 젊고 늙은 연인들, 가족들이 가로등을 하나 씩 켜며 모여든다. 가로등이 다 켜지면 국회의사당 지붕을 밝히는 조명도 흐릿해진다.

따뜻한 경관 조명으로 장식된 국회를 등지고 퇴근을 하는 발걸음들을 따라 20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도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국회는 아직 조국을 떠나보내지 못했고, 상임위마다 조국은 메인 메뉴로 대접받고 있다. 국회의원은 어떻게든 조국을 엮어 질의를 하지만, 답변하는 기관장 입장에서는 공허하다. 이미 다 했던, 지겹기까지 한 조국에 누구도 귀를 열지 않으니까.

이번 국정감사에서 가장 ‘핫’했던 순간은 아마 야당 소속 법사위원장이 막말을 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 같다. 정치인들이 일상에서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공개된 회의석상에서 내뱉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조국 탓이다. 조국 장관 문제로 정치가 작동하지 않으니 기댈 곳 없는 정치인들이 공천권을 가진 당의 유력자만 바라보고, 고정 지지층에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가 된다.

이러다 대한민국 정치가 한강 물에 쓸려가 행주대교 어디쯤에서 발견되지 않을까, 그 시퍼런 주검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국감은 이제 일주일 남았고, 선거는 겨우 반년 남았다. 하루 빨리 장관 조국을 보내고 내 나라 조국을 고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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