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理判事判)! 부끄럽지만 요즘 대한민국을 개념규정 지을 수 있는 말 가운데 이보다 더 정확한 말도 마땅치 않을 듯하다. 조선시대에 생성된 말로 불교 승려의 두 부류 가운데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행하는 스님인 ‘이판승’과 사찰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관리하는 스님인 ‘사판승’을 합쳐 부르는 말인데, 요즘은 ‘막다른 데 이르러 뾰족한 묘안도 없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극단적인 ‘끝장’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기왕 ‘이판사판’이 등장했으니 불교에서 유래한 말들로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짚어보자.

처음에는 “다섯 기수를 뛰어넘는 파격으로라도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여 개혁하겠다. 절대 임명하면 안 된다”로 맞서며 서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떠는 것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시작하였다.

이어 조국 임명과 함께 표창장 위조에 소위 ‘듣보잡’인 ‘인턴예정증명서’ 논란으로 점차 강도를 높이더니 사모펀드 차명 투자 논쟁으로 정점을 찍으며 ‘위선적 기득권’의 민낯이니 ‘진보꼰대’니 하면서 서로 으르렁대며 ‘아수라장(阿修羅場)’을 만들었다.

이후 “서초동은 2백만이다. 그게 2백만이면 광화문은 2천만이다.”하면서 서로 광장의 분노를 사상 최대 인파 전쟁으로 표출하며 대한민국 전체를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비명 속으로 몰고 가더니, 이제와서는 뾰족한 묘안을 내지 못하고 분노와 분노가 상시적으로 맞서며 “될 대로 돼라” 식의 ‘이판사판’ 전쟁터로 대한민국을 몰고 온 것이다.

‘개돼지’가 맞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난무하는 ‘이판사판’의 막다른 지경으로까지 어느 누가 몰고 온 것인가. 과연 우리 민초들은 무엇을 위해서 누구와 싸우게 된 것인가. 진보와 보수! 진영 논리가 과연 아군과 적군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17세기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리바이어던(Leviathan)’(1651) 시대로부터 한참을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의 시공간에 머물러 있다. 평등한 ‘자연권’을 가진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각자가 그 권리를 제약 없이 추구하면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이 된다는...

인간은 이러한 전쟁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 상호 간의 계약에 의해 절대적인 주권을 갖는 ‘리바이어던’이라고 하는 국가를 구축하게 된다. 이런 어지럽고 혼탁한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은 각자 살아남으려는 ‘자기보존욕’ 밖에 없고, 스스로 살아남으려는 본능으로 사람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계속하게 된다. 개인의 집합체인 국가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논리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정치인, 소위 이 시대의 지도자라고 자처해 온 위정자들은 스스로를 우물에 비추어 보라. 고전적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시대와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민초들을 ‘개돼지’가 맞다는 자조와 한탄으로 내몰고 ‘이판’ 아니면 ‘사판’ 식으로 선택의 여지없는 막다른 길로 내몰아 온 건 아닌지. 각 진영의 이익만을 관철하기 위해 스스로 내걸었던 ‘공약’도 내팽개친 채, 쉬운 ‘편가르기’식 정치놀음으로 위정자들 스스로 ‘진공상태’로 대한민국을 몰고 가는 건 아닌지.

그러나 분명히 명심하자. 무자비한 투쟁 상태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민초들은 ‘사회계약’에 입각한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고, 그것은 ‘절대군주제’ 옹호세력을 견제하는 가장 힘 센 수단이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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