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월 18일 북핵 폐기와 관련해 “새로운 방식이 매우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동안 미국이 요구해 왔던 ‘선 북핵 폐기 – 후 보상’ 방식을 포기하고 북한의 주장대로 ‘단계적 동시 조치’ 또는 ‘행동 대 행동’ 방식을 받아들이려는 걸로 해석된다.

북한이 10월 1일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사거리 2000km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했는데도 미국 안보라인은 침묵했다. 과거 북한이 SLBM을 발사했을 땐 비난 성명을 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는 등 난리를 피웠었다. 미 안보라인의 침묵은 트럼프의 ‘선 북핵 폐기 – 후 보상’ 방식 포기를 반영한 게 아닌가 불안케 한다.

북한은 북핵 폐기와 관련해 국제사회와 여려 차례 공동성명과 합의서들을 채택했다. 하지만 북한은 ‘행동 대 행동’ 방식에 따라 서방국가들로 부터 보상만 받아 챙기면서 핵무기를 개발해왔다. 북한은 이제 수소폭탄과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SLMB 까지 개발 완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년 전 북핵과 관련, 전 정권으로부터 “엉망진창된 상태를 물려받았다”면서 “그것을 내가 고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미국이 지난 25년간 북한과 대화를 했고 터무니없는 돈도 지불했다”며 “대화는 답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강력한 대북경제 제재에 들어갔다. 트럼프의 대북 제재로 북한 경제가 파탄돼 가자 다급해진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앞세워 트럼프와 작년 6월 싱가포르에 이어 올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정상회담 목적은 북핵 폐기에 있지 않다. ‘행동 대 행동’ 방식을 내세워 북핵 시설 중 노후 된 일부만 파기하고 그 대가로 전면적인 대북제제 해제를 얻어내려는데 있다. 김은 전면 제재해제 계책이 하노이 회담에서 먹혀들어가지 않자 연이은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로 트럼프를 겁박했다. 북한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보좌관의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요구대로 볼턴 보좌관을 해임시켰다. 이어 그는 “볼턴이 주장했던 ‘리비아식 방식’이 우리(북핵 문제)를 심하게 지연시켰다”며 “새로운 방식이 매우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의 ‘행동 대 행동’ 방식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트럼프가 내년 대선 승리를 의식한 나머지 김과의 핵 합의서를 얻어내기 위해 김에게 굴복한 게 아닌가 우려된다. 트럼프의 굴복은 그가 더 이상 무서운 호랑이가 아니라 토끼로 전락됐음을 반영한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뿐 아니라 이란 지도자들에게도 호랑이 아닌 토끼로 얕잡혔다. 이란은 트럼프의 경제제재에 맞서 호르무즈 해협에서 여러 척의 석유 운반선들을 나포하거나 폭격한 데 이어 미국의 드론마저 격파시켰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유시설도 파괴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군사 보복을 감행하지 못하고 엄포만 놓고 있다. 그는 시리아 북서부에 주둔해 있던 미군도 철수시켜 버렸다. 호랑이가 토끼로 퇴화되고 말았음을 반영한다. 트럼프가 내년 대선을 위해선 국지전이나 외교적 대결국면을 피하고 평화를 얻었다는 가짜 분위기 조성 절박감에 사로잡힌 탓이다.

만약 트럼프가 북한의 ‘행동 대 행동’ 방식에 굴복한다면, 지난 25년간 북에 속아온 실책을 뻔히 알면서도 되풀이하는 것밖에 안 된다. 북한에 제재를 풀어주고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주는 굴복이다. 이미 미국 내에선 내년 대선을 의식한 트럼프가 대북유화책으로 빠져 대북제재를 다 망가뜨렸다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북한의 ‘행동 대 행동’ 강요에 굴복한다면, 한국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반드시 ‘선 핵폐기 – 후 보상’ 원칙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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