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원장, ‘정치적 중립’ 요구되는데…임명 당시부터 ‘민주당원’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이 연구원 복무규정을 위반해 원장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국책연구원장은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자리이나 김 원장은 2015년부터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해 오다 올해 2월 탈당계를 제출했다. 그는 연구원장으로 임명될 당시인 지난해 4월에도 민주당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 원장의 탈당 시기도 논란이 됐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지난 3월 해당 기관 및 산화 연구기관의 임원을 상대로 당적 여부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김 원장은 이보다 조금 앞서 민주당을 탈당해 ‘관련 동향을 파악해 탈당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요서울이 단독 입수한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의 더불어민주당 탈당증명서. 그 옆에는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실로 발송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명의의 투서다.
일요서울이 단독 입수한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의 더불어민주당 탈당증명서. 그 옆에는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실로 발송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명의의 투서다.

- 성경륭 경사연 이사장 “진상조사단·법률자문팀 구성…김 원장, 직무정지 권고”
- 김유찬 “정관에 해당 규정 있다는 것 뒤늦게 알아”…‘신천회’ 출신 親與 성향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이하 조세연)이 임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적을 보유하고 있어 연구원 복무규정인 정치운동 금지에 위반돼 원장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세연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하 경사연)는 소속 국책연구원으로, 국가 조세·재정·공공기관 운영 관련 정책 수립을 지원한다.

현재 경사연은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산하에 법률자문팀을 별도 구성한 상태다. 이와 더불어 진상조사단 활동 기간 동안 김 원장에게 직무정지 권고를 내렸으나 김 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직무정지 권고는 강제성을 띠지 않기 때문이다. 

與野, 법-정관 해석 제각각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난 17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정부 출연 연구기관 국정감사에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출석한 김 원장에게 “취임 당시 민주당 당적을 갖고 있었느냐”며 “정관에 결격사유에 해당하는데 임명된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정관에 해당 규정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탈당했다”고 해명했다.

일요서울이 단독 입수한 김 원장의 탈당 증명서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5년 12월28일 민주당에 가입해 당적을 보유하다 올해 2월20일 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따라서 임명 당시인 지난해 4월에도 당적을 지닌 상태였던 것이다.

조세연 정관 제10조(임원의 결격사유)에 따르면 정당에 소속하고 있는 자는 연구원의 임원이 될 수 없다.

또 조세연 복무규정 제10조(정치운동 금지)는 직원(임원)은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국책기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앞서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투서를 전달 받고 조세연 측에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조세연은 이에 대해 지난 2일 ‘원장은 직원이 아니므로 복무규정 제10조 조항이 적용 안 된다’는 소명자료를 보냈다.

성경륭 경사연 이사장은 국정감사장에서 “정관에는 규정이 있지만 상위법인 정부 출연 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하 출연연법)에는 임원의 임면에 관해서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혼란이 발생한다”면서 “출연연법에는 정치적 중립의무만 있다”고 말했다.

출연연법 제31조2(정치적 중립)에 따르면 연구기관 및 연구회는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구성원이 돼서는 안 되며, 특히 그 사업을 수행할 때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 출연연법은 ‘정치적 중립’만을 명시하나 조세연의 정관은 ‘정당에 소속된 이는 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정당 가입이 곧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여당은 ‘정관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해석 차이를 보였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위법에 규정이 안 돼 있으면 정관을 개정해서 법의 취지에 맞추는 게 맞는 것”이라며 “정관에 있는 것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전혀 맞지 않다”고 밝혔다.

金, 당적 보유했었는데…전수조사엔 ‘해당 없음’

김 원장의 탈당 시기와 경사연 측의 자료 누락 의혹도 불거졌다.

경사연은 지난 3월4일 국무조정실 차원의 경사연과 산하 연구기관 원장 및 감사 등 임원을 상대로 한 당적 여부 전수조사를 요청받은 뒤 이튿날인 5일 전수조사 결과 자료를 국무조정실에 제출했다.

경사연은 조사 당시 임원들의 취임 전·후 당적 여부를 물었다. 그 결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A 비상임감사, 한국노동연구원의 B 전 비상임감사가 언급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A감사는 지난해 2월13일 비상임감사로 임명됐다. 그는 이전에 민주당 경기도당 관련 직책을 맡고 있었으나, 임명 하루 전날인 2월12일 당을 탈당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B 전 감사는 2018년 7월9일 임명됐다. 그러나 올해 3월 전수조사 과정에서 2004년부터 당시까지 민주당(열린우리당) 당적을 지닌 것이 드러나 그 달 10일 경사연 인사과 이사회에서 면직 처리했다.

하지만 김 원장의 경우 취임 전·후 당적란에 ‘해당 없음’으로 명시됐다. 전수조사 당시에 김 원장이 당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의 민주당 활동 전력은 기재돼야 하나 해당 결과 자료에 따르면 이 부분이 누락된 것이다. 

이후 경사연이 올해 6월 다시 실시한 임원 정당 가입 여부 전수조사에서도 김 원장은 취임 전·후 당적란에 ‘해당 없음’으로 표기됐다.

김 원장이 전수조사보다 약 1주일가량 먼저 탈당하면서 일각에서는 ‘김 원장이 사전에 관련 동향을 접수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김 원장의 탈당일이 올해 2월20일인데 경사연 차원의 정당가입 전수조사가 올해 3월에 실시됐다”며 “김 원장이 조사 이전에 동향을 듣고 탈당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의심 가는 대목”이라고 의구심을 내비쳤다.

이 밖에도 원장 임명 과정에서 연구원 차원의 면밀한 검토가 부재했고, 이후에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처벌 규정이 전무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김 원장의 경우 임명 당시 당적 보유자였음에도 불구, 임명 과정에서 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아 임명될 수 있었다는 견해다. 아울러 정관이나 연구원 복무규정 등을 통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규정만 있을 뿐, 이를 어겨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별도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 원장의 임명 배경에는 ‘전 정권 인사 몰아내기’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17년 당시 방하남 전 노동연구원장 등 임기를 만료하지 않은 국책기관 소속 연구원장들이 잇따라 사퇴를 표명하는 등 ‘물갈이’가 진행되자 전 정권 원장들이 사퇴 압박을 받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거론된 바 있다.

이와 달리 김 원장은 오랜 기간 민주당원으로 활동해 왔을 뿐 아니라 ‘신천회’ 활동 전력 등 친여 성향을 지닌 인물이라는 평가다.

자문교수단인 신천회는 일전에 소속 회원이던 조대엽 금융산업공익재단 이사장이 노동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세간에 알려진 바 있다. 이에 따라 김 원장 역시 ‘코드 인사’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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