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가 세종에 출마할 것 같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섣부르게 엉덩이를 들이밀었다가 정세균 전 국회의장에게 호된 꼴을 당한 정치1번지 종로가 유망한 출마지역으로 회자됐었다. 사람 좋은 정세균 전 의장이 결국 마음을 다스렸는지 종로에는 임종석이 출마하는 것으로 정리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총리가 총선에 출마하면서 여권의 선거전을 이끌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낙연 총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하나로 떠오른 이 총리는 정치권에 복귀할 시점을 지나고 있다. 이 총리에게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종로도 좋고,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사는 세종시도 좋다. 둘 다 이 총리에게는 여의도로 귀환할 수 있는 유력한 경유지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총리는 조국 장관 사태로 삭풍이 부는 여권에서 유일하게 꽃놀이패를 쥐고 흔들고 있다.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여권은 대선주자가 넘쳐났다. 과거 신한국당 시절 9룡 쟁투에 못지않은 대선 레이스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도 들렸다. 박원순, 안희정, 이재명 3강 체제에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몇몇 다크호스가 합류하면 다음 대선까지도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이 대세를 형성했다. 안희정의 몰락은 모든 걸 바꿨다. 상황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안희정은 퇴출됐고, 이재명도 태풍 앞에 촛불 신세에 놓였다. 박원순은 보이지 않는다.

이 총리는 현 여권에게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황홀한 덫’과 같은 존재다. 이 총리는 올 초에 대선 출마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황홀한 덫이긴 한데...”라면서 웃었다고 한다.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이 총리에게도 대선주자 지지도 1등은 더없이 달콤하고 황홀한 것 같다. 여권 주류 입장에서는 어떨까? 다른 의미에서 이들에게도 ‘이낙연’이란 존재는 ‘덫’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옆에 두고 쓰면 유용하지만 도구 이상으로 쓰일 수는 없는 덫.

여권에게 이 총리는 히든카드가 아니다. 이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전남지사에서 초대 총리로 깜짝 발탁되었을 때부터 여권이 여봐란 듯이 판에 깔아 놓은 ‘보이는 패’라고 할 수 있다. ‘히든카드’에는 필승의 각오가 담기지만 ‘보이는 패’에는 의도와 계산이 담긴다. 이 총리라는 패는 ‘호남주자’라는 상징성 때문에 의미가 있고, 그 이유로 한계를 노출한다. 여권 입장에서 ‘대권’이 호남에 달린 것은 진리에 가깝지만 그 이유로 호남 정치인은 대권과는 거리가 멀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총리는 페이스 메이커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에서는 정설에 가깝다. ‘이낙연’은 ‘김대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정치인도 DJ가 가지는 민주화의 상징성, 호남인들이 DJ에 투사한 절절한 한과 염원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노무현조차도, 아니 그 이후로 발견되는 정치인을 둘러싼 모든 열광은 DJ를 둘러 싼 아우라의 변주에 불과하다. 정동영이, 천정배가 실패한 것은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DJ의 그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박정희 이후,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호남은 변방이다. DJ라는 위대한 정치인조차 호남 출신이라는 ‘정치적 천형’ 때문에 대통령 권력을 쥐기 위해 충청 출신 JP와 손을 잡고 이인제라는 보수 분열의 혜택을 입어야만 가능했다. 지금 다시 DJ가 부활한다고 해도 반복되지 않을 기적에 가깝다. 이 총리가 호남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 총리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권이 이 총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히든카드 준비가 끝날 때까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이 총리는 자신에게 덧씌워진 의도에 순응하면서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황홀함에 취해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고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면, 결승선은 페이스 메이커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심중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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