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면서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월 중순이 넘어서야 대통령이 소집한 올해 첫 ‘경제장관회의’라니. 물론 요순시절에는 임금님이 누군지도 모르는 게 가장 태평성대라고 하듯이, 경기 상황이 좋을 때는 경제부총리 등이 주재하고 진두지휘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경제 상황이 요순시절 태평성대 상황인가. 그동안 조국대전에 얼마나 매몰되었던지를 반증하는 씁쓸한 장면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첫 경제장관회의에서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무엇보다 민간의 활력이 높아져야 경제가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경제난의 요인으로 세계경기 둔화로 인한 수출 부진과 투자감소 등 대외적 요인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그리고는 현 우리 경제가 역대 최고 고용률을 기록하는 등 현 정부가 선방하고 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외적 상황요인 핑계와 선방하고 있다는 자화자찬이.

앞으로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김재익 경제수석을 발탁하며 한 말이다. 이에 힘입었을까. 김재익은 ‘개혁경제’를 주창하면서 당시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을 OECD에 가입시킬 준비를 하면서 물가를 한 자릿수로 잡았고, 자동차와 반도체, IT 산업의 기틀을 다지면서 100억 달러 수출의 쾌거를 만들었다. 그 결과 (-)3.7%이었던 경제성장률을 12%의 성장률로 전환시켜 놓았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근 경제 상황 인식에 대한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경제위기를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에 대해 무책임하다. 사람들이 경제가 위기라고 의식해서 지출을 미루면 진짜로 경기가 나빠질 텐데, 그렇게 되면 피해를 입는 중소계층, 서민경제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지느냐”라고 브리핑 자리에서 언급하였다.

경제는 심리가 선행지수 역할을 하다 보니 과도한 ‘경제위기론’으로 인해 실제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는 측면을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작금의 경제 상황이 마치 ‘경제위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무책임에서 비롯되는 듯한 뉘앙스로 비쳐져서 청와대 경제수석의 인식과 발언이 오히려 더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정녕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주도성장’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아우성치는 현장의 서민들도 무책임한 것이란 말인가.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다!”라며 치고 나가던 시대와 너무나 대비되어 씁쓸하기만 하다.

대통령이 “우리는 경제와 민생에 힘을 모을 때”라며 지금이라도 민간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초유의 성장률 급락과 수출부진 등으로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매번 외부적인 상황을 주된 이유로 삼을 것이 아니라, ‘소득주도성장’ 등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정부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때다. ‘경제위기론’이 실제 위기를 초래할까 두려워 경제위기에 대한 예측에 입을 다물라고 할 때가 아니라, 이미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진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확한 대책을 수립해서 더 큰 위기를 막는 것이 중요한 때인 것이다.

두 달이 넘는 ‘조국 심판론’에 양극단으로 갈갈이 찢어진 대한민국! 그러나 그보다 훨씬 무서운 ‘호환마마’ 바이러스인 ‘경제 심판론’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다. ‘조국 심판론’은 대의이자 국가적인 어젠다지만, 경제는 국민 모두의 하루하루가 걸린 ‘생활’ 그 자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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