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 [뉴시스]
강정호 [뉴시스]

강정호에 대한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인내심은 가히 눈물겨웠다. 

한창 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이성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어도 피츠버그는 그를 감쌌다. 그리고 그 일로 해서 그의 경기력이 저하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비시즌 때 한국에서 음주운전 사건을 일으켰으나 피츠버그는 그를 비판하기보다 걱정부터 했다. 그리고 그가 미국 취업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발 벗고 나서 그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피츠버그의 이 같은 노력은 마침내 긍정적인 결실을 맺게 했다. 한국은 아니지만 제3국을 통해 비자를 받는 데 성공한 것이다. 

2년 여를 방황하던 강정호는 2019년 다시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됐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피츠버그는 그를 마이너리그로 보내지 않고 곧바로 메이저리그 선수로 등록했다. 

피츠버그는 왜 이토록 강정호에 집착했을까. 중간에 포기할 만도 했는데 왜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않았을까.

간단하다. 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의 잠재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예상외의 활약을 펼쳤던 2015년과 2016년 시즌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큰 부상을 당한 후에도 더 나은 성적을 올렸던 사실을 피츠버그는 높이 샀다. 

다시 말해 피츠버그는 의리나 정 때문에 강정호를 붙잡은 게 아니다. 단지 팀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피츠버그는 강정호가 올 시즌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할 때도 그를 감쌌다. 곧 제 모습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강정호는 피츠버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홈런은 그런대로 쳐냈으나 타율이 1할대로 너무 낮았고, 특히 삼진을 너무 많이 당했다. 

피츠버그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언젠가는 반등하겠지 하며 기다리고 기다려줬으나 강정호가 끝내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자 결국 그를 시즌 중 방출했다.

졸지에 방출된 강정호는 갈 곳이 없어졌다. 어느 구단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행이도 밀워키 브루어스로부터 마이너리그 계약 제의가 들어왔으나 비자 문제가 또 그의 발목을 잡았다. 

지금 강정호는 국제 미아가 됐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었다. 이러다 선수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게 프로스포츠 세계의 생리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강정호처럼 도태된다. 

국가 간의 관계도 다를 게 없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게 국제사회 질서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한미동맹이 위태롭다. 한국과 미국 관계가 피츠버그-강정호의 관계와 비슷해 보인다. 

미국은 지금 한미동맹이라는 이유 하나로 인내하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미국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애써 눈감아주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니 반미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져도 참고 있다.

미국 방식의 대북 정책에 보조를 맞춰주지 않고 있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주한미국대사 관저가 반미주의자들에 의해 침입당했어도 겉으로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아직은 한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순간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국가 간의 관계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강자가 약자를 버리는 것이지, 약자가 강자를 버릴 수는 없다. 그러니 한국이 미국에 대해 언제까지 인내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 대한민국이 강정호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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