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이란 800년의 역사를 가진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을 말한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3천여 개 후통이 실핏줄처럼 뻗어 있다. 베이징 후통은 멀게는 원나라 건국 시기인 800년 전부터, 가깝게는 청나라 건국 이후인 400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거리다.

하지만 1980년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급격한 도시화를 거치면서 도심의 후통들은 속속 재개발되었고, 지금은 옛 정취를 잃은 곳이 많다. 지금 남아 있는 후통의 대부분은 동서 또는 남북으로 곧게 뻗어 있다. 애초부터 계획된 골목이었기에 재개발의 광풍 속에서도 길의 방향과 형태만큼은 잘 유지되고 있다.

한국인이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후통은 대부분 자금성을 중심으로 2환(環) 내에 몰려 있다. 권력과 부가 집중됐던 이곳에는 청말 중화민국 초기 대륙의 운명을 좌우했던 권세가들, 공산주의 혁명가들, 베이징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누구나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면 후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찾은 중국 역사 이야기

‘베이징’ 하면 곧바로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혹은 천안문 등을 떠올리는 한국인에게 ‘후퉁’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색다른 중국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다. 깊은 역사와 거대한 규모를 가진 후퉁의 매력에 끌린 저자는 중국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후퉁을 돌며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탐방했다.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재 중국 사회와 중국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한 도시가 아니다. 중국 관련 서적 한두 권 읽은 사람이 “중국은 이렇다”라고 단정 지어 말하지만, 평생 중국을 연구한 사람은 “아직 중국을 잘 모르겠다”라고 한다. 이런 도시를 ‘쉽게’ 보지 않고 ‘의미 있게’ 듣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 해답을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인 후통(胡同)에서 찾았다. 2년여 동안 주말마다 후통에 가서 가만히 귀    를 기울이니 중국의 역사와 민중들의 삶은 물론 한국인들의 발자국 소리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_본문 중에서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는 현장을 중시하는 현직 기자인 저자가 후퉁에서 만난 중국의 권세가들과 혁명가 그리고 민중들의 삶은 물론 중국 땅에서 조국을 위해 활약했던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오늘날의 중국을 말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아프고도 뜨거운 역사를 품은 후퉁. 이 책은 현재도 중국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후퉁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에 잠들어 있는 영웅 혹은 야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 독립운동가와 중국 혁명가의 발자취

무엇보다 우리가 베이징 후통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둥지를 틀고 일본의 탄압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의열단선언문’을 작성한 신채호가 신혼생활을 보낸 징스팡제 21호,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일본을 벌벌 떨게 한 김원봉이 머물렀던 의열단 본부, 독립투사들의 아버지라 불리며 물심양면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이회영이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마오얼 후퉁, 일제의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독립운동가들이 몸을 뉘였던 왕푸징 근처 셰허병원 등등… 좁은 골목길 곳곳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조국의 독립과 민중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활약했으며, 여기에는 불꽃같이 살다 스러져 간 그들의 마지막 자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당 이회영의 집에는 늘 독립투사들로 붐볐다. 우당의 동생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는 아예 얼마간 함께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외 안창호, 김규식, 조소앙, 조성환, 박용만, 김원봉, 이광, 송호성, 유석현, 이을규, 이정규, 정현섭, 김종진, 임경호 등도 베이징에 머물 당시 우당의 집을 찾았다. 매일 적게는 10명, 많을 때는 40명이 찾아왔었다고 한다. 우당의 아들 이규창은 “국내에서 조국 독립의 꿈을 품은 인물, 즉 청년들은 베이징에 오면 반드시 나의 부친을 뵈었고, 대체로 우리 집에 거주했다”라고 회고했다. 허우구러우위안 후통의 우당 집이 독립 운동가들의 집합 장소이자 망명객들의 사랑방, 독립운동 본부였던 셈이다. _본문 중에서

한때 권력과 부가 집중됐던 이 거리는 대륙의 운명을 좌우했던 권세가들,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품었던 야심과 꿈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5.4 운동은 대학생들이 주도했지만,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학생들을 지도한 인물은 베이징대 총장인 차이위안페이(蔡元培), 채원배였다. 중국 근대 교육의 선구자인 차이위안페이는 5.4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리다자오와 천두슈, 루쉰 등 당대의 사상가와 문학가들을 대거 베이징대 교수로 초빙해 베이징대를 신사상의 용광로로 만들어 놓았다. 차이위안페이 총장의 든든한 후원 아래 천두슈와 리다자오는 5.4 운동을 이끌었고, 이를 자양분 삼아 공산당 창당에 박차를 가했다. _본문 중에서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는 모르고 가면 무심코 지나쳤을 여행길에서 우리 선조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주고, 중국 현대사의 색다른 현장을 음미하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이창구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서울신문에 입사해 기자로 일하고 있다. 중국 특파원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이후 신문사 근처 중국어 학원 새벽반에 3년 6개월을 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중국 특파원으로 선발되어 2018년까지 베이징에서 지냈다. 기자 생활만으로는 중국을 자세히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았던 저자는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이해하고자 쉬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후통 곳곳을 돌아다녔다. 현장을 중시하는 기자로서 중국 민초들의 삶을 직접 보고 들었다. 그 이후로 후통을 통해 체험하고 느낀 중국과 중국인들의 모습을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로 풀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귀국 이후엔 편집국 사회부 부장을 맡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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