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로 야당 압박, 동남권 신공항으로 PK 달래기

[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PK(부산·경남) 여론이 심상치 않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에 실망감을 느낀 지지층이 이탈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조 전 장관의 지지자들은 조 전 장관 사퇴의 책임을 민주당 지도부에 물으며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사법개혁으로 돌아선 민심 다잡기에 나섰다. 문 대통령도 최근 PK 지역을 찾는 등 ‘조국 사태’에 들끓는 TK(대구·경북) 지역을 뒤로하고 낙동강 벨트인 PK 지역 수성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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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흔들리는 PK 노려... “‘조국 사태’, 부산 시민들 더 큰 배신감 느꼈을 것”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퇴와 국회 시정연설 등의 영향으로 상승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24일 tbs의 의뢰로 실시한 10월 4주차 주중 집계(21~23일)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전주 대비 0.4%포인트 상승한 45.4%(매우 잘함 27.9%, 잘하는 편 17.5%)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1.9%포인트 하락한 50.4%(매우 잘못함 39.0%, 잘못하는 편 11.4%)를 기록했다. 긍정평가와의 격차는 5.0%포인트로 좁혀졌다. ‘모름/무응답’은 1.5%포인트 상승한 4.2%로 집계됐다.

민주당 지지율 PK서 하락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이번 조사는 지난 24일 법원이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앞으로 지지율이 하락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0.1% 상승한 39.9%로 조사됐다. 하지만 진보층, 30대와 40대, 20대, 충청권과 부산·울산·경남에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당은 1.5% 하락한 32.8%를 기록했고 진보층, 40대와 30대, 대구·경북에서 상승했다.

이번 조사는 무선 전화면접(10%)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방식, 무선(80%)·유선(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리얼미터는 19세 이상 유권자 2만5090명에게 통화를 시도한 결과 최종 1502명이 응답을 완료해 6.0%의 응답률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다.

‘조국 사태’로 TK 지역 민심이 한국당으로 돌아선 상황에서 PK 지역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이하를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며 ‘낙동강 벨트’마저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국당은 압도적인 TK 지역 민심을 등에 업고 최근 PK 지역 공략에 나섰다. 당 대표 특별 기구인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공정 리그) 지난 23일 부산을 찾아 대입 제도에 대한 지역 의견을 들었다. 한국당의 부산 방문을 두고 일각에서는 부산 출신인 조 전 장관과 조 전 장관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부정입학 의혹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자리에서 정용기 저스티스 리그 공동의장은 “우리가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저스티스 리그’를 구성했고, 6가지 제일 급한 일을 하자고 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가 대입제도를 공정하게 바꿔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조국 사태’를 보면서 얼마나 많이 분노했는가. 특히 부산 시민들은 더 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文, 부마항쟁 사과 PK 달래기 나서

PK 지역 여론이 심상치 않자 문재인 대통령이 달래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경남대 대운동장에서 열린 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그동안 국가가 피해자의 고통을 돌보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유신독재의 가혹한 폭력으로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 모두에게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를 대표해 현직 대통령으로서 공식 사과는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국가가 부마민주항쟁을 기리지 못하는 동안에도 부산과 창원 시민들은 줄기차게 항쟁기념일을 지켜 왔다”며 “부마민주항쟁은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이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부마항쟁의 의미를 강조한 데에는 지지층 이탈 우려가 있는 PK 지역 사수 의지를 내비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조 전 장관이 사퇴하자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를 방어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들며 민주당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 대통령 팬카페인 ‘젠틀재인’의 한 구성원은 ‘방금 민주당 부산시당에 전화했다’는 제목의 글에서 “겨우 2000원 내는 당비지만 민주당에 보탬 되기 싫어 1000원으로 내렸다. 이렇게라도 복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글에는 ‘나도 당비를 내렸다’, ‘부산 국회의원들에게 또 부산에서 의원할 생각 말라고 전하라고 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여론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여권은 검찰개혁을 통한 국면전환에 나섰다.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20일 오는 29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공수처 설치 법안만 우선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 대통령도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2020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검찰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감찰과 공평한 인사 등 검찰이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며 국회를 향해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 검찰개혁과 관련된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야당이 강하게 반발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이 정권, 그리고 여당의 공수처 집착이 산으로 가고 있다”며 “조국 임명 강행이 국민 앞에 무릎 꿇었듯 공수처 집착이 이 정권에 독이 될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오는 29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공수처 설치 등 검찰 개혁 법안을 상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우리에게 숙고의 시간이 끝나고 실행의 시간이 임박했단 것을 거듭 확인드린다”라고 야당을 압박했다. 이날 여야 교섭단체 3당 의원들이 검찰개혁 법안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상을 진행했지만 이견 차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이인영(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회의실에서 열린 검찰개혁특별위원회 3차 회의에서 박주민 공동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이인영(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회의실에서 열린 검찰개혁특별위원회 3차 회의에서 박주민 공동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與, 검찰개혁으로 국면전환 노려

여야가 협상에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 찬성 여론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21일 YTN ‘노종면의 더뉴스’ 의뢰로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 응답이 51.4%(매우 찬성 38.6%, 찬성하는 편 12.8%)로 반대 응답 41.2%(매우 반대 26.6%, 반대하는 편 14.6%)로, 찬성 여론이 10.2%p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모름·무응답’은 7.4%이다.

지지정당별로 민주당 지지층(찬성 93.5% vs 반대 3.6%)에서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자신을 진보 성향이라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서도 찬성 81.8% vs 반대 13.7%로 찬성 여론이 대다수이거나 절반 이상이었다.

이번 조사는 무선 전화 면접(10%)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리얼미터는 지난 18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8689명에 접촉해 최종 501명이 응답을 완료해 5.8%의 응답률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 (기사에 쓰인 모든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이 검찰개혁에 대해 야당을 압박하는 이유는 문 대통령의 공약과 조 전 장관이 사퇴하면서까지 내걸었던 사법개혁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 전 장관 사퇴로 비판을 받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가 당 지지 세력에게 압도적으로 찬성 여론이 높은 공수처 설치를 관철시켜 돌아선 문 대통령과 조 전 장관의 지지자들의 민심을 회복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셈이다.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촛불집회는 이미 서초동 앞에서 9차례 열렸고 지난 19일에는 여의도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이어갔다. 검찰개혁의 목소리는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구속되면서 커졌다. 정 교수의 구속이 발표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개혁 집회를 주도해 온 개싸움 국민운동본부(개국본) 다음 카페에는 ‘제11차 검찰개혁 공수처설치 여의도촛불문화제’ 알림 공지가 올라왔다. 이들은 “공수처 설치로 정치검찰, 사법적폐를 수사하고 개혁하자”고 밝혔다. 공지의 댓글에는 ‘부산 사람인데 참석하겠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등 참석을 알리는 댓글이 달렸다.

민주당은 검찰개혁과 더불어 PK 지역 민심회복을 위해 지역 숙원사업인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언급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대정부질문(경제분야)에서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인천공항의 제4활주로 공사가 오는 2022년 완공될 예정이기 때문에 이미 포화상태다. 동남권 신공항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라며 “부산·울산·경남에 엄청난 수요가 있고 인천공항이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대체 공항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부산·울산·경남의 조선산업이 산화되고 있는데 이렇게 된다면 첨단산업 유치가 안 된다. 인천공항이 첨단산업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항공화물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다”라며 “부산·울산·경남의 경제가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상징할 수 있는 동남권 신공항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의원의 대정부질문 발언은 부산광역시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홍보 영상으로까지 사용됐다. 송 의원의 지역구는 인천 계양구을로 PK 지역과 관계가 없다. 인천 국제공항 주변이 지역구인 송 의원은 평소에도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정부질문에서까지 동남권 신공항을 언급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지역구 의원이 부탁했거나 PK 지역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나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지난 22일에는 영남권 시민단체가 김해 신공항 건설 반대 및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을 주장하며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들은 김해신공항 재검증이 국무총리실 검증단으로 넘어간 지 약 4개월이 지나도록 진전을 보이지 않자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민주당이 앞으로 PK 지역 민심 회복을 위해 지역 숙원사업인 동남권 신공항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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