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은 1994년에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세상에 내놨다. 시대를 풍미한 이념과 그 이념을 수단으로 삼던 국가가 허물어지고, 이념에 기대 살던 이들이 침묵하며 생활전선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시점이었다. 

시인은 과감하고 솔직한 시편들 속에 운동하던 시절에도 녹슬지 않은 자신의 모던한 기질과 도발적 언어를 뽐내며 지금까지 50만부를 팔아치웠다. 시대의 저물녘에 횡행하던 회고담 중에 가장 빛났고, 아마도 그 때가 시인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아니었을까. 

세월이 흘러 시인의 좋았던 시절도 지났다. 시인은 빈곤층이 되었고 국가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의 대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투(Me Too)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민족문학의 거인으로 불리던 ‘고은’ 시인을 성추행으로 고발하는 용기를 내기도 했다. 

시인의 화려한 잔치 뒤에는 여전히 치워야 할 잔치상이 남았고, 시인은 자신이 살던 시절에 먹고 남은 쓰레기를 치우려 고군분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시인의 삶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도 치욕스러운 경험이 있었고, 극복하지 못한 좌절을 체념으로 흘러 보낸 것들이 있었지만, 시인은 마주하는 용기를 내고 있다.

여의도에도 잔치가 끝나가고 있다. 20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의 계절이 지나갔고, 늦여름부터 여의도를 달구던 조국 정국은 마지막 불씨를 태우고 있다. 광화문의 태극기도, 여의도로 자리를 옮긴 서초동의 촛불도 곧 을씨년스러운 잔치의 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가까스로 40%에 걸친 지지율을 받아들고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여당은 줄곧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턱밑까지 치고 온 제1야당의 그림자가 두렵기만 하다. 보수야당은 낭떠러지에서 조국이란 돌부리를 잡고 기사회생했지만 상대방의 실책으로 인한 득점이기에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올해 벌어진 모든 정치 행사, 사건들은 내년 4월로 예정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민주정치에서 정치인과 정당들에 주어지는 권력은 선거에서 비롯되고, 정치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는 선거로 귀결된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21대 총선 결과는 여당의 우세가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대통령 지지도도 전국적으로 견고했고, 당 지지도 우세도 변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야당이 지리멸렬하면서 정부여당이 남북 문제 말고는 크게 아젠다를 선점하지 못하는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모든 것이 변했다. 총선까지 남은 6개월은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가깝게는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격발된 대치정국에 따른 결과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여당의 잔치가 너무 길게 이어졌다. 

박근혜 탄핵과 민주당 집권을 이끌어 낸 시대사적 잔치를 뒤로 하고 촛불들은 모두 자기 삶의 영역으로 돌아갔지만 정부여당은 집권의 기쁨에 겨워 너무 길게 뒤풀이를 이어오다 잔치 뒤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마주했다. 내년 총선은 87년 체제를 종식하고 17년 체제라는 새 질서를 완성하는 선거로 치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진보 개혁 세력의 잔치는 끝났다.

21대 총선에서 여·야는 걸친 것, 가진 것 없는 알몸으로 싸우게 될 것이지만 아직 정부여당이 이런 사실을 절실하게 자각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낙연 총리를 당으로 보내 총선을 지휘하게 하고, 김현미 장관을 총리로 내세우고, 전해철 의원을 법무부장관으로 검증 중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에 야권에서는 내심 박수를 치고 있다. 

여권의 분위기는 흉흉해지고 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막을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의욕도 부리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울어 가는 배에서 내리고자 하는 사람들만 눈에 보일 뿐이다.

시인은 노래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이라고. 여권에 지난 2년 반은 더 없이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고 이제는 상을 접어야 한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좋은 시절을 뒤로 하고 누군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