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수당’하면 단연 박원순 시장이 떠오른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겠다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 10만 명에게 월 50만 원씩 지급하는 현금성 복지정책을 내놓았다. 현재 실행하고 있는 청년수당의 대상자를 내년부터는 4배 이상으로 늘려 3년간 총 10만 명에게 3300억 원을 지급하고, 청년 1인 가구에 총 1000억 원가량의 월세도 지원하기로 했다.  

연간 32조 원 정도의 예산을 집행하는 서울시로서는 매년 1000억 원 정도의 부담은 별것 아닌지 몰라도 벌써부터 대선을 위한 선심성 예산 아니냐는 비판을 넘어 ‘현금 살포’라는 비아냥도 넘쳐난다. 예산이 적은 다른 지자체 거주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걱정되는 부분이고, 향후 표에 집착하는 지자체장들의 연쇄적인 현금복지 경쟁 ‘표퓰리즘’ 도미노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청년들의 어려운 환경을 감안하여 지급하는 수당 자체를 무조건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처럼 정확한 기준을 마련하여 일정한 수당을 지급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서울시 청년수당이 선심성 현금 살포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은 바로 ‘공정한 지급 기준’이다. 현재의 제도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신청자들의 ‘구직활동 계획서’를 심사하여 대상자를 선발하는 객관적인 과정이라도 거쳤지만, 앞으로는 기본요건을 갖춘 수당 신청자들에게는 예외 없이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경쟁적 현금복지 정책들이 단기적인 재정적자와 국민의 담세율 부담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늘어난 세 부담은 장차 고스란히 청년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박 시장은 ‘포퓰리즘’과 ‘표퓰리즘’의 비판을 의식해서 이번 정책은 ‘포퓰리즘’이 아닌 청년들의 현장 요구에 따른 ‘리얼리즘’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부족한 물적 자원을 배분하는 데 필수적인 ‘공정성’을 상실한 것에 대한 ‘억지춘향’이자 말장난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 시대 청년들은 이런 기준 아닌 기준을 진정으로 ‘공정’하다고 여긴단 말인가.

“‘육성사이다’는 당분간 긴 휴식에 들어가려 합니다.” 유명 개그우먼 김영희씨가 운영 중이던 팟캐스트 중단을 알리며 남긴 말이다. 김영희 씨는 풍자와 해학 위주의 팟캐스트에서 ‘금수저’를 주제로 한 대화를 하다가 “조국 딸 느낌 나요. 박탈감 느껴요”라는 말을 농담조로 했다가 비난이 계속되자 결국 방송 중단을 발표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호집회에 참석했던 개그맨 강성범 씨는 촛불문화제 무대에 올라 검찰 개혁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면서 ‘개념 개그맨’이라는 칭호도 얻고 박수도 받았다.

조국 사태로 인해 유명한 개그계 두 인물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린 경우다. 뜨겁게 떠오른 사회적 이슈를 풍자했던 개그우먼은 사과와 함께 방송을 중단해야 하고, 확실하고 화끈하게 한쪽 입장을 대변한 개그맨은 박수를 받는다면, 과연 이 시대 분노의 공통 코드인 ‘공정’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서구 선진국들마저 경기 불황과 취업난, 소득과 자산의 집중으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고 일부 국가들은 ‘미래 없는 청년’들의 분노가 현실로 표출되고 있다. 우리도 불황과 취업난 등으로 오랫동안 고개 숙이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해왔던 이 시대의 청년들이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분노의 정점으로 떠올랐다.  

조국 사태에서 똑똑히 보았듯이 그들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은 우리 청년들이 바라보고 기대했던 ‘정의, 공정’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우리 청년들도 분노할만 한 일에는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스스로 분연히 일어서지 않으면 ‘미래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부메랑이 날아와 청년, 그대들의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지 되묻게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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