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10월 초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정치권에선 귀국을 예상했다. 의외의 선택이라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다. 마침 바른미래 비당권파는 독자 세력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안 전 공동대표의 미국행은 불참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한국당과 통합, 또는 대안신당과 연대를 저울질하기 위한 잠행으로 점쳐지기도 했다.

안 전 공동대표의 등장은 드라마틱했다. ‘안철수현상’이 그렇다. 정치인 이름에 현상이 붙은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국민들은 안 전 공동대표에게 시작부터 큰 희망을 가졌다. 답답한 현실에서 그에게 탈출구 또는 메시아를 요구한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정치에 막 입문했을 뿐이다. 정치 신인이 감당하기에 국민들의 기대는 너무 컸다.

출발이 화려하고 거창했던 탓일까. 안 전 공동대표는 정치 행보를 하면 할수록 정치적 자산을 소모해갔다. 2012년 18대 대선이 첫 시험대였다. 단일화를 성급하게 꺼낸 바람에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 쪽으로 쓸림이 일어났다. 전략 부재 탓이다. 코너에 몰린 안 전 공동대표는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문 후보 지지 과정, 투표 직후 출국 과정도 깔끔하지 못했다. 많은 지지자들이 등을 돌렸다.

국민의당 창당은 2016년 총선을 불과 두 달 남겨두고 이루어졌다. 국민의당은 예상을 깨고 39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3김 이후 사실상 최초로 성공한 신당이었다. 호남과 젊은층이 안 전 공동대표의 미래가치를 높게 본 것이다. 민주당과 결별한 그는 손쉽게 재기에 성공했다.

탄핵과 함께 찾아온 때 이른 19대 대선은 두 번째 시험대가 됐다. 등락을 거듭하던 안 전 공동대표 지지율은 한때 민주당 문 후보를 위협하기도 했다. 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단일화 논란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문 후보는 촛불민심을 대표했다. 반문재인 단일화 논란은 촛불민심에 대항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젊은층과 호남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른정당과 합당이 세 번째 시험대였다. 바른미래당 창당은 호남의 배제, 젊은층과 거리, 보수화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정치적 자산을 소모해 버린 것이다. 안 전 공동대표는 서울시장에 출마 19.6%를 얻었다. 선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3위에 머물렀지만 완주했다. 국민의 기대가 아직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는 득표율이다.

바른미래 비당권파는 6개월이나 손학규 대표 퇴진운동을 벌였다. 당 혁신과 총선 준비가 명분이다. 정치권에선 비당권파의 당 장악과 보수통합에 나서기 위한 목적으로 본다. 손 대표 축출에 실패한 비당권파는 탈당과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다. 비당권파에게 안 전 공동대표가 절실한 이유다.

정치공작이 난무하던 독재 시기에는 탈당과 신당으로 거대 악에 맞섰다. 지금은 다르다. 일관성이 정치의 핵심 가치가 됐다. 비당권파의 신당은 명분도 부족하고 민의에도 반한다. 이런 신당 합류는 남은 정치적 자산마저 소모하게 할 것이다. 안 전 공동대표의 미국행은 잘한 결정이다.

대한민국은 미증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해결방안을 찾는 것은 안 전 공동대표의 소명이기도 하다. 현실정치와 떨어져 있을 때 ‘안철수의 정치’는 구체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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