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서 일본 참여 배제해 ‘대회등급 승격 결정 철회’

김낙순 한국마사회장 [뉴시스]
김낙순 한국마사회장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올해 대한민국 외교의 화두는 단연 ‘일본’과 ‘불매운동’이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로 지난 여름께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은 범국민적 참여를 불러 일으켰다. 많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일본 여행을 취소했고, 일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처럼 역사적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단합해 행동에 나서는 것은 분명히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지자체나 기관이 나서서 불매운동을 주도하는 것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불매운동이 한창일 당시 서울 중구가 ‘NO JAPAN’ 배너를 내걸었다 비판 여론에 철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한국 마사회에서도 국제 대회를 개최하며 일본의 참여를 배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강석호 의원 “스포츠 정신을 저버린 행위”
경영실적평가 D등급·동물 실험까지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은 지난 17일 한국 마사회 국정감사에서 마사회가 반일 분위기에 편승해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경마대회에 일본 참여를 배제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그 결과로 한국 마사회가 국제경마연맹으로부터 대회등급 승격 결정을 철회당했다며 “스포츠맨 정신을 어긴 국제 망신”이라고 지적했다.
문제가 된 대회는 코리아컵·코리아스프린트다. 한국 마사회 주최로 지난 2016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한국 최초의 국제경마대회다. 국제경마연맹(IFHA)은 세계 경마시행국(PARTⅠ∼PARTⅢ)과 대상경주(GⅠ~GⅢ,L)의 등급을 매겨 관리하고 있다. 한국 경마는 PARTⅡ국가로 국제경주는 최하위에 해당하는 L등급인데, 지난 6월 아시아경마연맹(ARF)은 2019년 코리아컵·스프린트 경주에 한해서 PARTⅠ·GⅢ 등급 승격을 인정했다. 한국은 PARTⅡ 국가에 해당하지만 규정상 특정 경주가 국제인증 대상 경주의 요건을 2년 연속 충족할 경우 국가 승격과는 별개로 PARTⅠ 경주로 별도 인정이 가능하다. 코리아컵·코리아스프린트 대회는 이 요건을 충족해 등급 승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승격 두 달 만에 철회

그러나 지난 9월 8일 개최 예정이었던 2019 코리아컵·코리아스프린트 대회를 한 달여 앞둔 8월 10일, 한국 마사회는 한일관계 악화와 국민적 반일감정을 이유로 대회에 일본마 출전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마사회는 이 결정을 아시아경마연맹과 일본중앙경마회(JRA)에 통보했다.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악수가 됐다. 한국 마사회가 일본마 출전을 배제하며 대회의 국제인증 대상 경주 요건이 미충족된 것이다. 결국 아시아경마연맹은 지난 8월 23일 한국 마사회에게 PARTⅠ·GⅢ 경주승격 결정을 만장일치로 철회했음을 통보했다.
강 의원이 한국 마사회로부터 제출받은 ‘한일관계 변화에 따른 국제경주 일본마 선정여부 검토 및 후속조치’ 문서에 따르면 마사회는 ‘일본마 미선정 시 리스크 분석’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리스크 분석에 따르면 한국 마사회는 일본마 출전을 배제할 경우 ‘모든 Grade/Group 경주에는 경주마의 출생, 조교, 소유권과 관련해 지리적 조건에 기반 한 제한사항 없이 외국 경주마의 출전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국제경주 일반원칙(Open Competition)을 위배하게 될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한국 마사회는 일본마의 출전 배제 결정을 내렸다. 일본 경주마 없이 개최된 코리아컵에서 한국 경주마는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코리아스프린트의 경우에는 1위부터 7위까지를 모두 한국 경주마가 석권했다. 그러나 지난 3회 코리아컵 대회에서 모두 일본 경주마가 1위를 차지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회의 의미가 빛 바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경주마는 코리아스프린트 대회에서도 2회에 걸쳐 1위를 달성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한국의 유일한 국제 경주 대회에서 정치적, 외교적 이슈를 이유로 특정 국가의 참가를 배제하는 것은 선진국의 스포츠맨 정신을 저버린 것”이라면서 “국제경마연맹으로부터 대회의 등급 승격을 철회당한 사건은 우리나라 경마의 미래를 깎아내린 국제 망신”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스포츠계에서는 정치적 이슈에 기반 한 행위를 철저히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앞선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피켓을 들었다가 징계를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만큼 정치와 철저한 분리를 요구하는 스포츠계에서 반일 감정 등을 이유로 일본 경주마의 참가를 배제한 결정은 섣불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전통적으로 경마 강국인 일본이 한국에서 우승할 경우 경마장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을 우려한 조치라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한국 마사회는 경마팬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일본 경주마 참가와 관련한 설문 조사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사회는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국감서 ‘경고조치’ 받은 마사회…왜?

한국 마사회는 대회등급 승격 철회 외에도 국정감사를 통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 받았다. 이날 강석진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국 마사회가 기관평가 역사상 처음으로 D등급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기관평가는 행정 기관을 대상으로 업무의 추진 내용 및 집행 성과, 이를 추진하는 기관의 역량, 업무 추진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강 의원은 “(한국 마사회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유일한 공공기관으로 낙제점을 받았다”며 “작년도 경영평가 부진 원인을 살펴보니 총체적 난국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에 따르면 한국 마사회는 실적악화로 인해 매출액이 전년대비 -3.4%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32.1%까지 떨어졌다. 강 의원은 “재무성과 하락으로 재무예산운영성과는 당연히 D를 받았다”면서 “직원들의 보수 및 복리후생도 D, 삶의 질도 D를 받았다. 이정도 실적이면 김낙순 회장은 낙제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마사회는 또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고 동물실험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 마사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 마사회는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총 36건의 동물실험을 추진해 25건을 실시했다. 문제는 이 가운데 10건을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기 전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동물보호법 제25조 제3항은 ‘동물실험시행기관의 장은 동물실험을 하려면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0건의 실험은 시작 후 5일에서 한 달 반이 지나서야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았다. 윤 의원은 “윤리위 심의가 선행되지 않은 동물실험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불법사례가 드러난 만큼 '동물보호법'에 근거해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