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지도부 ‘3선 물갈이’ 띄웠으나 ‘친황 체제’ 구축 비판

[일요서울 | 이기우 언론인] 이른바 ‘황교안-나경원 리스크’가 꿈틀대고 있다. 조국 사태로 자유한국당이 지지율 상승 등 반사이익을 얻고 있을지는 몰라도 당내 상당수 의원들은 ‘황교안-나경원’ 체제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이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수사 대상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 ‘조국 검증 TF 의원들에게 표창장 수여’, ‘당 강세지역 3선 이상 물갈이 필요’ 등이 쏟아지면서 당내 의원들이 비토 여론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사석에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바꾸고 싶다”, “내부의 5표를 얻기 위해 외부의 10표를 잃어서는 안 된다”며 인적 쇄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바람대로 될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대권을 노리는 황 대표로서는 인적 쇄신을 통해 ‘당 장악’에 나서고 싶지만 친박계, 비박계의 시선이 싸늘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황교안 한국당 대표 [뉴시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황교안 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교안·나경원 지지한 세력…보수 통합 부정적
-패스트트랙 검찰 수사 ‘공천가산점’…당내 분란만 남겨


“황교안 대표가 지지세력인 친박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자유한국당 당내 사정에 밝은 한 당직자가 진단한 한국당 현주소다. 그는 “황 대표는 ‘바지사장’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황 대표가 보수통합을 추진하려고 하자, 영남권 친박 의원들이 반발해, 황 대표가 보수통합에 대한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친박은 비박을 비박은 친박을

실제 황 대표와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보수통합을 위해 서로 만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 대표는 지난 16일 유 의원의 만남 제의에 "대화가 필요하면 대화하고 만남이 필요하면 만날 수 있고 회의가 필요하면 회의체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측이 만남에 호응하며 보수대통합 군불을 지폈다. 

그러나 일부 친박계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를 돌리며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황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친박계 김재원 의원은 “유승민이 주장하는 탄핵의 인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참으로 ‘유승민스러운’ 구역질 나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며 “한국당이 유승민의 얕은 꾀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통합도 대의가 아니라 소의에 불과한 때가 있다”고 비판적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 이면에는 친박계가 황 대표에게 ‘너무 나가지 말라’는 시그널을 주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황 대표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친박계에서는 “황 대표와 코드가 맞지 않으면 제3의 인물을 내세울 수도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이후 황 대표는 자기 희생까지 불사하겠다던 입장에서 보수 세력이 한데 모여야 한다는 원론적 수준으로 표현이 약화됐다. 황 대표는 지난 22일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대한민국을 살려내는 길에 헌법 가치를 존중하는 모든 자유민주 세력이 함께해야 한다”며 “대아(大我)를 위해 소아(小我)를 내려놓겠다는 자세를 갖는다면 대통합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반면, 비박계에서는 ‘친박계를 제압하라’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비박계는 중도보수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탈박화’를 거론하고 있다. 한국당 고정 지지층에다 조국 사태에 따른 중도층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한국당이 탄핵을 부정하기보다는 탄핵 문제를 역사의 판단에 맡기고, 외연 확대를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비박계 인사들의 보수통합은 ‘친박계 제거→중도보수 신당 창당’에 방점을 찍고 있다. 

실제 비박계에서는 20대 총선 당시 청와대의 총선 개입 등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에서 직을 맡았던 인사들이 ‘금배지’를 달고 혜택을 본 만큼, 자연스레 친박계 의원들이 ‘자기희생’을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물밑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의 책임 있는 자세가 내년 총선 승리에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당 한 관계자는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계 출신 인사들과 보수통합을 하면 문재인 정권과 싸움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바른미래당에서 한국당 출신이 아닌 보수 성향의 인사들도 한국당에 입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총선 승리와 대권 행보를 이어가려는 황 대표로서는 ‘친황세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한국당으로 출마하려는 검사출신의 한 인사는 “황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대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자기사람’을 심어야 한다는 취지로 건의했다”며 “인재영입 등을 통해 전략공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임 불가 등 위기 속 황교안-나경원 ‘동조’

실제 황 대표는 줄곧 주변 인사들에게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고, 일부 의원들에도 인적 쇄신 중요성을 강조하며 ‘물갈이’에 방점을 뒀다. 이를테면 “내부의 5표를 얻기 위해 외부의 10표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황 대표는 당무감사 위원들을 전부 교체했다. 이번 당무감사는 과거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당무감사와는 다르게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협 운영 현황을 계령화된 수치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당원이나 주민 민심 청취, 한국당 출마자들과의 경쟁력은 얼마나 되는지, 한국당 출마자들을 대상으로 한 당협위원장 평가 등을 종합해 평가문으로 작성해 이달 말 당에 보고한다는 방침이다.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에 맞는 공천룰을 만들 가능성이 높고, 공천 물갈이 자료로 쓸 것으로 예상하며 당내에서 황 대표 측근 심기 작업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황 대표가 “인재영입을 통해 그 인사들을 각 선거구에 배치, 총선에서 승리하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는 인식이 정치권에서는 팽배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한국당 강세 지역 현역 의원들이 물갈이 중심에 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이러한 기류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최근 한국당 고위 관계자 발로 “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 3선 이상 현역의원에 대한 물갈이가 필요하다. 텃밭에서 쉽게 정치하려 하지 말고 당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험지’에 출마해 당세 확장에 나서야 한다”는 발언이 나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같은 발언의 배후가 나 원내대표가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8월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당의 혜택을 받은  다선 의원은 험지로 가야 한다”고 말한 것을 유추해 보면 나 원내대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 한 관계자는 “황 대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나 원내대표가 나서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투톱’의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 관계가 형성됐다는 얘기다. 

실제 나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패스트트랙 충돌에 가담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고 말했고, 이틀 뒤 황 대표도 “당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 대해 상응하는 평가를 하는 것은 마땅하다. 당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반드시 (공천 심사에)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원내대표 임기를 연장하기 위한 시도’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나 원내대표에게 무게를 실어줬다. 나 체제가 무너지면 황 대표 체제로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일부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패스트트랙 가산점 논란 출구전략 부재 드러내

그러나 ‘패스트트랙 공천 가산점’이 찬물을 끼얹었다. 친박계와 비박계 등에서 모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공천 가산점은) 나 원내대표 개인의 생각일 것”이라며 “공천은 공정하고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떤 후보를 내세워야 당선이 가능하고 국민 여망에 부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공천심사위원회가 판단할 몫”이라며 “특정인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충돌과정에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지 못한 친박계 한 의원도 “나 원내대표의 희망사항만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도 되지 않았는데 나 원내대표가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검찰 수사 명단에 올라오지 않은 나머지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 원내대표 비토론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가산점 발언’ 계기로 당내에서도 ‘나경원 연임’에서 ‘나경원 연임 불가’ 기류가 급격히 감지되고 있다는 얘기가 심상치 않게 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 원내대표 패스트트랙 가산점에 발언에 힘을 실어준 황 대표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한국당 친박계 의원은 “황 대표의 힘이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더 큰 힘이 없다”며 황 대표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6개월째 서울 광화문과 지역 집회에 참석했고, 집회 참석 사진을 시도당에 제출하는 등 당을 위해 헌신한 만큼, 이에 대한 가산점도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결국 공천 가산점이 남발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새 피 수혈을 원천적으로 막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당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황 대표는 “가산점을 생각해본 바 없다”고 하루 만에 번복했다. 

이와 함께 황교안-나경원’ 등 당 지도부가 ‘조국 사태’ 이후 뚜렷한 출구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역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반면, ‘물갈이’에 대해 한국당은 큰 틀의 공천 원칙조차 제시하지 못한 채 ‘민심과는 동 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황 대표가 ‘주변을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역풍을 맞고, 당대표직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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